퇴근 후 주 3회 탁구 레슨을 받는다. 주말에도 빠지지 않고 구장에 가서 서브 연습을 한다. 온통 탁구뿐인 거 같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가끔 글도 쓴다. 예전에는 책을 읽고 서평을 주로 썼지만 요즘 쓰는 글들은 대부분 탁구 이야기다. 탁구 이야기를 쓸 때가 제일 신나고 재밌다.
탁구를 시작하면서 나의 글은 탁구 이야기로 채워졌다. 처음 탁구장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난 혼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글이 든든한 벗이 되었다. 처음에는 글을 쓰고도 비공개로 해두었던 것들을 차츰 공개로 전환하자 온라인 세상에도 친구들이 생겼다.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들이 나의 글에 공감하며 말을 걸어온다. 구속받지 않고 구속하지 않는 느슨한 연결. 어쩌면 그래서 그들이 더 편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탁구를 시작하기 전 내가 즐겨하는 일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거였다. 지금도 여전히 주말이면 책을 들고 카페에 가지만, 결국 마지막엔 탁구 유튜브를 보면서 나만의 시간을 마무리한다. ‘자세 낮추는 방법’부터 ‘공을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달려드는 단점 극복법’, ‘백핸드 횡서브 받는 방법’ 등 고차원적인 것까지 두루두루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면서 말이다.
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 없다.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좋아한다. 이상하게도 탁구장에서는 나의 ‘적당한 거리’의 기준이 점점 좁혀지는 것 같다. 구장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의 인사가 불편했던 것도 잠시, 이젠 가벼운 마음으로 화답한다. 온통 관심이 탁구에 있기에 사람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신경을 안 쓰니 불편할 것도 없다. 불편하지 않으니 대화가 편하다. 이건 무슨 이치인지. 구장 사람들이 궁금해지고 기다려진다. 때가 되면 바뀌는 계절처럼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연결되는 인연들이 내 삶의 밀도를 높인다. 가끔은 그곳 사람들과 맥주 한 잔의 여유를 가진다. 늦은 밤, 눈이 감기는 마법의 시간에도 사람과 있는 것이 즐거워질 때면 내가 정말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했었는지 의심스럽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에 탁구가 들어오면서 달라진 일상의 풍경이다. 탁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탁구장 사람들을 알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구장에서 알게 된 회원들은 내가 탁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니 몇 달 하고 그만두었다면 내 삶에 결코 들어오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내가 선택한 방향대로 어딘가 숨어 있던 인연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회원님’이라고 칭하며 구장에서 인사하는 사람들. 구장에서 스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쌓이니 제법 농담도 건네는 사이가 된다.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게 서서히 스며들며 연결돼 간다.
탁구는 나와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다양한 끈이다. 때론 두껍게, 때론 가벼이 연결되고 묶고, 묶였다 풀어지고 풀어진 걸 다시 매듭짓기도 한다. 어떤 끈은 제일 아래에서 내 몸을 지탱해 주는 탁구화의 끈처럼 절대 풀리지 않게 나비 모양으로 꼭 묶고 싶기도 하다. 나에겐 탁구가, 탁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