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도 탁구 대회는 많다. 탁구 수준인 승급을 인정받는 중요 대회는 일 년에 몇 번 없지만, 각종 대회로 보자면 매달 열린다. 그중 하나가 ‘여성탁구대회’다.
‘여성탁구대회’라고 해서 여성만 출전하는 건 아니다. 여성 회원을 중심으로 경기가 진행되지만, 혼성 게임이 있어 남자 회원도 함께한다. 이때 혼성 파트너는 자신의 수준과 차이가 크게 나면 안 된다. 1부를 관장 부수로 보면, 나의 경우 초보 9부여서 파트너는 7, 8부에서 섭외해야 한다.
올해도 ‘제9회 제주특별자치도 여성탁구연맹회장배 여성탁구대회’ 공지가 떴다. 벌써 옛이야기가 돼버린 작년 여성탁구대회를 생각하면 파트너를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혼성단체전은 2단 1복으로 진행된다. 2명이 단식과 복식을 한다. 복식은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야 한다. 내가 공을 치면 다음 공은 파트너가 친다. 상대가 공을 칠 수 있게 비켜줘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비키면 다음 공을 못 친다. 적당히 비켰다가 탁구대로 들어와야 한다. 각종 사인도 주고받는다. 내가 커트 서브 사인을 보내면 커트 서브를 넣어야 하고, 짧은 서브를 넣겠다고 하면 짧아야 한다.
만일 긴 서브를 보내겠다고 했는데 들어간 건 짧은 서브거나, 커트 서브를 넣겠다고 했는데 실제는 커트가 별로 없는 서브가 들어간다면 어떨까? 공도 못 치는 데 사인도 엉망이라면. 그것이 바로 내가 파트너를 부탁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였다.
보통은 같은 동호회 남성 회원을 섭외해 혼성팀을 꾸린다. 2단 1복 경기에서 일단 나의 단식 1패가 예상된다. 그렇다고 내가 복식을 잘할 수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파트너가 단식에서 이긴다고 해도 1승 2패로 예선 탈락이 뻔히 보인다. 이기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용기 내 혹시나 하고 부탁한 회원들은 대회 날 일이 있었다. 동호회 회원 수는 한정돼 있고, 파트너의 부수 제한도 있어 섭외할 수 있는 회원이 많지 않았다. “동호회 명단에는 있으니까 잘 나오지 않아도 부탁하면 해 줄 거 같은데요” 구장 동생이 말했지만, 알지도 못하는 회원에게 연락해 파트너를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나가지 말까? 그래도 대회에 나가야 복식 연습도 해보고 할 텐데’ 눈은 사무실 모니터에 꽂혀 있었지만, 생각은 여성대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사무실 반대편 끝에 앉은 동료의 뒤통수가 보였다. ‘아! 맞다’ 다른 동호회지만 탁구 치는 직원이었다. 부수도 7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성대회에 나가는지 말을 꺼냈다. 그는 여성대회 소식도 처음 듣는 기색이었다. 얼른 대회 일정을 말했다. 덧붙여 파트너가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너무나 빠르게 쿨한 제안이 들어왔다. “나랑 쳐도 괜찮으면 나랑 치자” , “정말! 나랑 치면 예선 탈락할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 “참가하는 데 의미가 있잖아, 동호회도 다른데 언제 너하고 복식을 쳐보겠냐. 좋아 괜찮아’ 그는 흔쾌히 내 짝꿍이 되었다.
우리는 한 주는 그 친구 동호회 탁구장에서 다른 한 주는 우리 탁구장에서 시간을 맞춰가며 연습했다. “평상시 탁구장도 잘 안 가는데 네 덕분에 요즘 주말에도 탁구장 가서 연습한다. 최근 들어 제일 연습 많이 하는 거 같아” 그의 얼굴에 뿌듯함이 묻어났다. 드디어 대회 날, 우리는 당당히 예선을 통과했고 본선에서 바로 아웃 됐다. 중요한 건 예선 통과였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서로 싱글벙글 웃으며 벤치로 돌아오는데 그 친구 동호회 여성 회원이 툭 말을 걸었다. “거기 동호회도 사람 많을 텐데, 왜 우리 동호회 사람을 데려가요?” “네에?” 나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홱 하니 지나가 버렸다. 처음부터 대답을 원했던 게 아니라는 듯.
‘그러게요, 저도 그러려고 한 건 아니라고요’
올해 여성대회는 우리구장 회원 중에서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까? 나와 기꺼이 짝꿍 해 줄 사람이 있을까?
저로 말씀드리면 파트너 진로방해는 기본이에요. 알아서 치셔야 해요. 뒤쪽으로 빠져야지 하다가도 공이 오면 반사적으로 공을 따라 움직여요. 어떤 때는 비키지도 않고 그 자리에 있기도 해요. 저의 서브 사인과 실제 서브가 일치할 확률은 60% 정도 되지요. 제 서브보다 상대 리시브를 보는 게 더 현명할지 몰라요. 찰나에 정신이 멈춰 공을 못 봐요. 훅하고 정신이 돌아오면 공 찾으러 급하게 쫓아가지요. 혹시라도 경기에 이기려는 마음이 있다면 불쾌지수가 높아질 수 있어요. 보살님 같은 넓은 마음이 필요하답니다.
이게 작년 이맘때 저예요. 지금은 쪼금 나아졌어요. 하지만, 기대는 위험합니다. 혹시 제 파트너 하실 생각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