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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Aug 26. 2023

지령 1호. 오름부 폭파!

우리 탁구장 최하위 부수인 초심부는 3명이다. 이름 하여 ‘오름부’. 최고 실력 그룹은 ‘백두부’다. 오름은 백두산에 비하면 언덕 정도라고 보면 된다. 오름부와 백두부 사이에는 금강부와 한라부가 있다. 오름부 셋의 목표는 동시에 승급해 금강부로 올라가는 거다. 그렇다. 우리의 소원은 하나! 오름부 폭파다.

         

오름부 폭파를 위해 우리는 주말마다 같이 연습한다. 때론 3명이 아니라 4명이 한다. 아이를 맡길 수 없을 때면 오름부 막내가 4살 귀여운 공주님을 구장에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주말 아침, 조용한 탁구장을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꼬마 공주가 기계와 연습하는 엄마를 보며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외친다. “엄마! 이겨라! 엄마! 이겨라!” 오름부 막내는 아기의 응원에 기계도 이길 수 있는 엄마가 된다.

     

주말 아침은 분주하다. 평일처럼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준비하고 사무실 대신 구장으로 출근한다. 땀 흘릴 것을 대비해 시원한 음료도 준비한다. 관장님이 제안한 대로 준비운동을 하고 스윙을 연습한다. 탁구대 주위를 빠르게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며 체온을 높인다. 기본 몸풀기가 끝나면 서브와 리시브를 연습한다. 할수록 어려운 것이 서브다.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여지없이 실수가 나온다. 헛스윙으로 공을 맞히지 못하거나 공이 하늘로 날아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고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며 다시 서브를 넣어 본다.

      

둘이 짝을 지어 연습도 한다. 내가 서브를 넣으면 다른 회원이 내 공을 받는다. 넘어온 공을 내가 다시 친다. 랠리는 여기까지다. 왜냐하면, 내 공이 안 들어갔으니까. 반대로 다른 회원이 서브를 넣고 내가 공을 받는다. 공이 나한테서 멈춘다. 왜냐하면, 서브를 못 받았으니까.

      

같은 초심부여서 세 명이 비슷한 듯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제일 불안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름부장과 오름부원 1인 2역을 나 혼자 할 수도 있다. 구장에 연습하러 갈 때마다 회원들은 내게 열심히 한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나의 초조함이 구장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듯하다. ‘실력이 안 되면 그대로 오름부에 남는 거지, 뭐 어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나만 남으면 단체전도 못 나가고, 그게 뭐야, 도대체 몇 년째야!’라는 생각이 휘몰아칠 때면 갑자기 서브 연습을 하다 말고 나도 모르게 탁구공을 팍 던져버린다.

     

‘내 서브는 왜 이렇게 뜰까? 내 공은 왜 이리 천천히 가는 거야?’ 서브 연습을 하다가 나한테 불만이다. 어느새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으로 빠진다. 탁구대 왼쪽으로 오는 공을 받다가 갑자기 오른쪽 끝으로 공이 들어오면 멍하니 공이 지나는 걸 바라본다. ‘발이라도 떼지’. 그렇다고 가운데로 오는 공을 잘 받는 것도 아니다. 가운데로 오면 오른팔과 공의 거리가 맞지 않아 스윙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발만 조금 움직이면 공 칠 공간이 확보될 텐데'

    

움직이지 못하는 것보다 더 최악인 게 있다. 상대 공을 볼 줄 모른다는 거다. 공이 상회전으로 오는지 하회전 인지, 반회전 반커트로 섞인 공인지, 무회전으로 오는지. 대충 내 생각대로 공을 치면 확률은 5대 5. 공이 높이 떠서 상대에게 찬스를 주거나 네트에 걸리거나, 마구리가 터지면 들어가거나. ‘내가 참 머리가 나쁘구나!’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름부 두 명은 늘 나를 응원한다. ‘괜찮아!’, ‘잘했어!’가 기본 멘트다. 제대로 된 스윙으로 공이 잘 들어갈 때도, 공을 날려 실수할 때도 그녀들은 늘 내 편이다. 소중한 그녀들 역시 내가 구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9월 대회까지 이제 한 달여 남았다. 집중력 부족과 머리 나쁨을 탓할 때가 아니다. 단체전을 함께 할 오름부 언니, 동생을 생각하며 불만 가득 소심해진 기분을 탁구대 끝으로 밀어내 본다. 우리에겐 지령이 있다. 오름부 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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