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연습 삼매경인 나에게 구장 동생이 던진 인사말에 자신 있게 대꾸했다. 예전 같으면 살짝 겸손한 표현을 던졌겠지만 이젠 그냥 말한다. 티가 나든 안 나든 열심히 하니까.
3월부터 다시 시작한 관장 레슨이 벌써 5개월째 접어들었다. 20분 레슨 시간 동안 특정 동작 하나를 두고 연습한다. 워낙 안 되는 거 투성이라 원 포인트 레슨이랄 것도 없지만 말이다. 스윙의 시작과 마무리 시점의 자세, 라켓 모양, 박자를 따라 움직이는 다리와 발의 모양 등 익혀야 할 것들이 많다. 어느새 숨이 목까지 차오르며 심장은 헐떡거린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으로 들어갈세라 땀을 닦고 등줄기로 땀이 주욱 흘러 속옷을 적시는 건 기본이다. 땀이 묻지 않게 라켓을 꽉 잡는다. 예전 ‘한숨의 추억’은 날려 버린 지 오래다.
탁구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푼다. 그다음 라켓을 잡고 전면 벽 거울을 보며 스윙 연습을 한다. 스윙 연습이 끝나면 로봇 기계 앞으로 간다. 속도와 회전 버튼을 내 속도에 맞추고 좀 전에 연습했던 스윙 폼으로 공을 쳐본다. 다리도 움직여 보고 팔도 신경 쓰며 뻗어 본다. 마지막은 서브 연습이다. 레슨실 비어있는 탁구대에 자리 잡고 커트 서브부터 횡 서브까지 공을 한 바구니씩 넣어본다.
가끔은 연습하는 것을 보고 고수 회원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일부러 공 살살 넘기는 거 아니죠? 이렇게 살살 공 넣는 거 백날 해도 실제 경기에서 못 써먹어요. 살짝 넘기기만 연습하는데 어떻게 실전에서 공이 세고 빠르게 나오겠어요. 실전처럼 연습해도 경기에서는 긴장돼서 그렇게 나오기 쉽지 않은데요”
고수의 조언대로 힘 있게 서브를 넣어본다. 실전이라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간다. 그래도 다시 넣어본다. 마지막 서브 연습이 끝나면 비로소 회원들과 함께 공을 친다. 이게 나의 탁구장 루틴이다.
그날 역시 레슨실 빈 탁구대에서 서브 연습을 하고 있었다. 레슨이 끝났는지 관장이 컴퓨터 앞 의자에 앉으며 툭 한마디 건넸다.
“회원님!한숨의 추억이 뭐예요?"
‘아! 내 블로그 글을 읽었구나.’ 그것은 레슨을 처음 시작한 시절 관장의 알 수 없는 한숨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내 기분을 적은 글이었다.
“아, 그거요. 읽으셨나 봐요. 기분 상하셨어요?”
슬며시 관장의 표정을 살폈다. 관장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내 질문에 대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서브를 위해 왼손에 올린 탁구공이 자꾸 흔들린다. 분명 서브는 넣고 있는데 내 머리와 눈과 귀는 탁구공이 아니라저편의 관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관장이 의자에서 일어나 레슨 탁구대로 걸어갔다. ‘많이 화났나? 설마, 아닐 거야’ 자꾸 서브가 엇나간다.
“1년만 버티세요” 흩어진 탁구공을 바구니에 담으며 관장이 무심한 듯 말했다. ‘1년? 뭘 말하는 걸까, 초보 탈출? 오름부(9부) 탈출?’ 관장의 대답에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1년이면 될까요?’라고 묻지 않았다. 무엇을 말했든 그는 분명 가능성 있는 기한을 말하는 거였다. 서브 넣는 오른손에 힘이 팍 들어갔다. ‘1년이라고? 그쯤이야. 지금까지도 버텼는데’
기한이 주는 의미는 내게 특별했다. 아기 태어나 스스로 목을 가누고, 앉고 드디어 서서 걸음마를 떼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생후 1년 전후에 이루어진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기만 걸음마를 떼는 건 아니다. 3~4kg으로 세상에 태어난 조그만 아기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되는 성장이다. 운동은 다르다. 똑같은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누구는 걸음마를 떼고 누구는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다행인 거다. 내 실력을 잘 아는 관장의 말이다.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은 충만해졌다.
주말 점심, 서브 연습을 하러 구장에 들렸다. 아무도 없는 구장에서 내 탁구공 소리를 벗 삼아 연습하고 있을 때 고수 회원 두 명이 들어왔다. 혼자 연습하는 나를 보며 반갑게 말을 건넨다.
“주말에도 나와서 연습하고 참 열심히 하네, 얼른 ‘한라부’ 올라와 나랑 복식 하게” 옆에 있던 회원이 한마디 보탰다. “그럼, 땀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열심히 하면 될 거야.”
‘진짜요? 저 아직 9부인데요. 한라부는 6부 돼야 하잖아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난 당당하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