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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Jul 22. 2023

'한숨의 추억' 그 후

“언니! 열심히 하네요?”

“응, 나 항상 열심히 해”


서브 연습 삼매경인 나에게 구장 동생이 던진 인사말에 자신 있게 대꾸했다. 예전 같으면 살짝 겸손한 표현을 던졌겠지만 이젠 그냥 말한다. 티가 나든 안 나든 열심히 하니까.


3월부터 다시 시작한 관장 레슨이 벌써 5개월째 접어들었다. 20분 레슨 시간 동안 특정 동작 하나를 두고 연습한다. 워낙 안 되는 거 투성이라 원 포인트 레슨이랄 것도 없지만 말이다. 스윙의 시작과 마무리 시점의 자세, 라켓 모양, 박자를 따라 움직이는 다리와 발의 모양 등 익혀야 할 것들이 많다. 어느새 숨이 목까지 차오르며 심장은 헐떡거린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으로 들어갈세라 땀을 닦고 등줄기로 땀이 주욱 흘러 속옷을 적시는 건 기본이다. 땀이 묻지 않게 라켓을 꽉 잡는다. 예전 ‘한숨의 추억’은 날려 버린 지 오래다.


탁구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푼다. 그다음 라켓을 잡고 전면 벽 거울을 보며 스윙 연습을 한다. 스윙 연습이 끝나면 로봇 기계 앞으로 간다. 속도와 회전 버튼을 내 속도에 맞추고 좀 전에 연습했던 스윙 폼으로 공을 쳐본다. 다리도 움직여 보고 팔도 신경 쓰며 뻗어 본다. 마지막은 서브 연습이다. 레슨실 비어있는 탁구대에 자리 잡고 커트 서브부터 횡 서브까지 공을 한 바구니씩 넣어본다.


가끔은 연습하는 것을 보고 고수 회원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일부러 공 살살 넘기는 거 아니죠? 이렇게 살살 공 넣는 거 백날 해도 실제 경기에서 못 써먹어요. 살짝 넘기기만 연습하는데 어떻게 실전에서 공이 세고 빠르게 나오겠어요. 실전처럼 연습해도 경기에서는 긴장돼서 그렇게 나오기 쉽지 않은데요”

고수의 조언대로 힘 있게 서브를 넣어본다. 실전이라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간다. 그래도 다시 넣어본다. 마지막 서브 연습이 끝나면 비로소 회원들과 함께 공을 친다. 이게 나의 탁구장 루틴이다.


그날 역시 레슨실 빈 탁구대에서 서브 연습을 하고 있었다. 레슨이 끝났는지 관장이 컴퓨터 앞 의자에 앉으며 툭 한마디 건넸다.

“회원님! 한숨의 추억이 뭐예요?"

‘아! 내 블로그 글을 읽었구나.’ 그것은 레슨을 처음 시작한 시절 관장의 알 수 없는 한숨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내 기분을 적은 글이었다.

“아, 그거요. 읽으셨나 봐요. 기분 상하셨어요?”

슬며시 관장의 표정을 살폈다. 관장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내 질문에 대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서브를 위해 왼손에 올린 탁구공이 자꾸 흔들린다. 분명 서브는 넣고 있는데 내 머리와 눈과 귀는 탁구공이 아니라 저편의 관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관장이 의자에서 일어나 레슨 탁구대로 걸어갔다. ‘많이 화났나? 설마, 아닐 거야’ 자꾸 서브가 엇나간다.


“1년만 버티세요” 흩어진 탁구공을 바구니에 담으며 관장이 무심한 듯 말했다. ‘1년? 뭘 말하는 걸까, 초보 탈출? 오름부(9부) 탈출?’ 관장의 대답에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1년이면 될까요?’라고 묻지 않았다. 무엇을 말했든 그는 분명 가능성 있는 기한을 말하는 거였다. 서브 넣는 오른손에 힘이 팍 들어갔다. ‘1년이라고? 그쯤이야. 지금까지도 버텼는데’


기한이 주는 의미는 내게 특별했다. 아기 태어나 스스로 목을 가누고, 앉고 드디어 서서 걸음마를 떼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생후 1년 전후에 이루어진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기만 걸음마를 떼는 건 아니다. 3~4kg으로 세상에 태어난 조그만 아기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되는 성장이다. 운동은 다르다. 똑같은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누구는 걸음마를 떼고 누구는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다행인 거다. 내 실력을 잘 아는 관장의 말이다.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은 충만해졌다.


주말 점심, 서브 연습을 하러 구장에 들렸다. 아무도 없는 구장에서 내 탁구공 소리를 벗 삼아 연습하고 있을 때 고수 회원 두 명이 들어왔다. 혼자 연습하는 나를 보며 반갑게 말을 건넨다.

“주말에도 나와서 연습하고 참 열심히 하네, 얼른 ‘한라부’ 올라와 나랑 복식 하게” 옆에 있던 회원이 한마디 보탰다. “그럼, 땀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열심히 하면 될 거야.”

‘진짜요? 저 아직 9부인데요. 한라부는 6부 돼야 하잖아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난 당당하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혼자서도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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