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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Jul 07. 2023

나의 글은 나와 닮지 않았다

나의 탁구 이야기는 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안으로 말리는 스윙에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 대회 때마다 탁구장에 뇌를 두고 온 듯한 플레이에도 난 늘 희망과 격려, 응원의 메시지를 나에게 전한다. 혹시나 그 희망을 누군가 가져갈세라 꽁꽁 엮어 글로 남긴다. 나의 탁구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자 내 안의 불안한 아이에게 할머니가 들려주는 부드럽고 다정한 옛이야기 이기도 하다.     


지난 6월 수원에서 열린 전국탁구 오픈대회에서 관장이 개인전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회원 한 분이 그 소식을 듣고 오름부에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 오름부도 일단 제주도 1위 한번 찍고, 육지 도장 깨러 갑시다” 오름부(9부)는 구장 최하위 그룹이다. 희망을 품은 메시지인 걸 알았지만, 내 마음은 아니었다. ‘제주도 1등도 어려운데, 무슨 육지 도장을 깨러 가? 말이 되는 소리야!’ 간단히 답글을 달았다. “그만 웃기시지요” 내 답글 뒤로 오름부 회원들의 으싸으싸 의지를 다지는 희망의 답글이 이어졌다.      


이제쯤이면 회원들의 격려와 응원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난 1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작년 9월, 지금보다 더 안 되는 동작으로 탁구 초심부 단체전 경기에 참여했을 때다. 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멍한 플레이를 하다 3경기 모두 전패했다.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동호회 회원이 “다음에는 전승하실 겁니다.”는 말로 위로를 건넸다. ‘오늘 3패 했다고요. 그것도 상대도 안 되게. 어떻게 이 수준으로 1승도 아니고 전승을 하냐고요?’ 미소는 지었지만 나는 그의 격려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탁구장에서 안되는 동작을 물어보며 연습하는 나에게 구장 회원이 메시지를 전했다. “1부가 되는 그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머리는 '그냥 인사야'라고 했지만 내 감정은 롤러코스터처럼 순식간에 수직 낙하했다. 관장이 1부다. 딴 나라 이야기 같은 공허한 격려가 거슬렸다. 당장 8부로 승급도 어렵지만, 같은 9부 회원들과 게임도 안 되는 실력이었다. “1부요?” 나의 싸늘한 억양에 당황한 그가 말했다. “왜 그러세요, 탁구인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말인데요. 유튜브에서도 많이 얘기하잖아요. ‘1부가 되는 그날까지’ ”  


‘미친 새끼, 난 탁구인이 아니어서 그런 거 모르니까 너나 탁구인 해라. 별나라 얘기 같은 그런 말이 나한테 격려라고 생각하니? 그런 말은 딴 사람한테나 하라고.' 나의 과격한 마음의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다만, 내 안의 화를 잠재우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

     

그의 말은 분명 선의의 격려였다. 응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민낯이었다. 편견과 옹졸함으로 똘똘 뭉쳐 감정의 폭풍에 휩쓸린 나의 진짜 모습이었다.     

 

나의 글은 나와 닮지 않았다. 땀 흘리며 연습하면 언젠가 나아질 거란 믿음도 내 글 속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한다. 난, 내 안의 조급하고 불안한 아이를 달래려 글을 쓴다. 글 속의 내가 되기를 기대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누구의 응원이나 희망의 말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넌 실력이 안 되잖아. 그 말을 믿어?’ 가끔은 멍하니 공치는 내 모습이 불쌍해 보인다. 내 글은 믿음으로 쌓아 올린 성탑이 아니라 지친 내가 숨기 위한 은신처 같다.     


할머니의 머리맡 이야기처럼 따뜻희망을 전하는 내 글을 나는 닮고 싶다. 닮고 싶은 내 모습이 내 글 속에 있다. 내 글 속에 있는 용감한 나도 나고, 내 글 밖에 불안한 아이도 나다. 그래서 나의 글은 진실이 되기도 하고 때론 거짓이 되기도 한다. 내 안의 여린 아이에게 할머니가 들려주는 부드럽고 다정한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할머니의 포근한 온기로 나약하고 예민한 그 아이를 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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