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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Jun 28. 2023

100일 기도 대신 100일 연습

상대는 짧은 단발 개인전 단식 우승자. 그녀는 나의 반격에 당황하고 있었다. 편안했던 첫 세트와 달리 두 번째 세트에서는 불편한 공이 계속 그녀를 건드렸다. 점수가 벌어지려고 하면 따라잡고, 따라잡는가 싶으면 앞지르기를 몇 번 드디어 두 번째 세트를 내가 가져왔다. 그녀는 라켓을 꽉 잡았다.      


오늘 경기는 개인전 단식, 개인전 복식, 단체전 세 종류로 진행됐다. 첫 경기인 개인전 토너먼트 상대는 서브도 단순했고 '쑥' 하고 날아오는 공이 그리 공격적이지도 않았다. 엉거주춤 첫 세트를 내어줬지만, 2, 3세트를 이겼고, 4세트도 10대 7로 내가 앞섰다. 한 점이면 11점으로 나의 첫 승이 예견됐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연달아 2개의 서브 실수가 나왔다. 결국, 듀스까지 갔고 패했다. 5세트까지 이어졌지만 패했다. 앞 세트에서도 몇 번의 서브 실수가 있었다. 모두 같은 서브였다. 꼭 그 서브를 넣었어야 했을까. 아! 나의 뇌야! 나의 눈아! 나의 팔아! 나의 다리야! 너희들은 왜 그때 '잠시 멈춤'이었던 거니.  

    

다음은 복식경기다. 탁구 복식은 한 사람이 공을 치면 다음 공은 반드시 파트너가 쳐야 하기에 동선이 꼬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 복식경기가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는 파트너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고 움직이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첫 복식경기에서 우리는 최대한 몸을 움직이며 파트너가 공을 칠 수 있게 자리를 내어줬다.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며 5세트까지 갔고 우리가 이겼다. 오늘 나의 첫 승이었다. 하지만 토너먼트에서 아슬아슬한 점수 차이로 5세트까지 갔지만 졌다. 아쉬움이 길게 남을 만한 경기였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우리가 준비해 온 오름부(9부) 단체전이 남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단체전이다. 단체전은 3명이 3번의 단식경기로 진행된다. 첫 번째, 두 번째 선수가 이겨 2승을 하면 세 번째 선수는 경기 없이 그 팀은 토너먼트로 올라간다. 1, 2경기를 무조건 이기는 게 유리하기에 첫 팀과의 경기에서 1번은 오른손 에이스, 2번 왼손 에이스 회원을 넣고 나를 3번으로 넣었다. 계획대로 첫 팀과의 경기에서 우리 팀이 2승을 했다. 두 번째 경기 상대 팀은 오전에 치러진 개인전 단식 우승자가 있는 ‘한림탁구동호회’다. 선수 순서를 적은 오더지를 열어보니 세 번째 선수가 우승자였다. 개인전 결승전에서 내가 본 그녀는 안정적인 서브에 그보다 더 안정적인 디펜스와 공격력을 갖추고 있었다. 잘 들어간 서브가 그녀에게 칠만한 높이의 좋은 공을 만들어줬다. 결정적인 순간에 ’탁‘ 때리고, 바로 자세를 잡으며 공칠 준비를 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공을 연타로 ’딱‘ 공격했다. 그녀는 서두름 없이 박자를 잡으며 상대가 없는 빈 곳으로 공을 보내고 있었다. 우승자가 3번으로 빠졌기에 우리 팀이 1, 2경기 모두 이겨주면 이번에도 내가 경기에 뛸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한 명이 지고, 한 명이 이기면서 세 번째 선수인 내 경기가 진행됐다.      


오늘의 개인전 우승자, 짧은 단발 그녀가 꽉 잡은 라켓으로 서브를 보냈다. 나 역시 라켓을 꽉 잡고 자연스럽게 공을 받았다. 한두 번이면 끝났을 법한 랠리가 계속 이어졌다. 아슬아슬 넘어간 공이 다시 돌아오고, 질세라 공을 쫓아 움직이며 다시 넘겼다. 어떤 구질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공을 넘겼고, 또 넘겼다. 4세트, 내가 먼저 11점에 도달했다. 믿을 수 없는 5세트가 내게 왔다. 응원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고, 1, 2점을 왔다 갔다 하며 경기가 진행됐다. 마지막 2점을 남긴 상황, 상대 서브를 놓쳤다. 엉뚱한 리시브에 공은 날아갔고 같은 실수를 연이어서 하면서 진정 선방 끝에 패했다. 응원의 목소리도 우리의 단체전 우승의 기대도 순식간에 경기장 저 높은 천장까지 흩어졌다.      


힘차게 다짐했던 단체전이 이렇게 끝났다. 그렇게 바라고 기대하고 떨리고 두렵기까지 했던 <전도종별탁구대회>다. 5주간의 특별연습이 별 거랴마는 지금까지 오름부(9부) 셋이 주말 구장에서 마치 운동부 선수처럼 연습했던 일은 없었기에 그전 대회와 다른 특별한 기대가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개인 단식 우승자에게 말했다. “개인전 우승 축하드립니다. 잘하시던데요. 예전에 긴 머리를 말아서 위로 묶고 경기를 하셨던 거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짧게 자르셨어요?” “탁구 치려고요. 예전에 제가 이분하고 쳤는데 상대가 안 될 정도였거든요” 그녀는 우리 팀 동생을 가리켰다. 동생이 놀라며 말했다. “네? 저랑 쳤었다고요”, “네, 그때는 실력이 안 됐어요. 탁구에 미쳐서 머리도 자르고 탁구장에서만 살았어요. 열심히 했어요.” 동생은 기억을 못 했지만, 그녀는 그때의 기억을 이젠 회상하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우리 셋은 온몸에 힘이 빠진 듯 터벅터벅 벤치로 돌아오며 다들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우리도 머리 자를까? 구장에서 살았다잖아.’ 묵직한 침묵을 깨고 언니가 먼저 말했다. “오늘 내 플레이가 평상시처럼 나오질 않았어. 서브도 그렇고. 다음 대회가 9월이잖아. 나 100일 기도하러 갈까?” 사그라든 기대감과 짙은 아쉬움이 묻어있는 그녀의 나직한 말에 나는 힘 있게 톤 높여 대답했다. “수능 100일도 아니고, <도지사기 탁구대회> 대비 100일 기도요? 100일 기도 대신 100일 연습 어때요? 다시 주말마다 연습하는 거예요. 연습이 답이잖아요” 순간 표정 없던 여자 셋의 얼굴이 소리 없이 환해졌다. 모두가 정답을 알고 있지만, 모두가 풀어내지는 못하는 ‘연습’. 오늘따라 그 낯설고도 친숙한 짧은 단어가 대회의 여운만큼이나 오래 남아 우리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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