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라 Jun 30. 2024

캄캄한 밤입니다.

    

지난 6월, 탁구대회에서 개인전 예선탈락의 문제는 좌우 스텝 연결과 포핸드 스윙이었다. 탁구를 시작하면 처음 배우는 게 포핸드 스윙이다. 상대가 공을 왼쪽으로 보내다 오른쪽으로 보내면, 다리를 좌우 스텝으로 연결하며 포핸드 스윙을 해야 하는데, 난 엉거주춤 서서 다리와 팔이 따로 노는 레슨 몇 개월 차 초보 같은 느낌으로 치고 있었다. ‘아! 몇 년째야, 이 구멍을 어떻게 메꿀까!’

   

대회가 끝난 후, 열흘이 지났지만, 계속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경기 때 나오지 않는 동작이라면 아직 연습이 덜 된 거다. 고수 회원에게 그 부분만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볼까. 혼자서 연습이 힘드니 주말에 몇 시간씩 같이 연습할 트레이너를 찾아볼까. 안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미적미적 있을 수는 없었다. 뭔가 실행에 옮겨야 했다. 연습을 도와줄 사람을 구하는 게 문제였다. 내 경기를 봐왔던 오름부 언니와 탁구장의 다른 회원에게 어떤 방법이 좋을지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비슷했다. “일단 관장 레슨 때 포핸드 부분을 집중해서 가르쳐 달라고 하세요. 고수들도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한 달 동안도 같은 동작만 계속 받기도 하거든요.”, “일단 관장한테 포핸드 하는 거 다시 잡아 달라고 해봐. 탁구장에서 레슨 받는데 개인 트레이너 구하는 것도 그렇잖아. 집중 레슨 받고 반복하면서 연습하면 할 수 있을 거야. 개인 트레이너는 그 이후에 생각해 보자”


관장 레슨 날이다. 레슨실에 들어가자마자 회원들의 명쾌한 조언을 생각하며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관장에게 말했다. “관장님! 이번 대회 때 포핸드가 잘 안 됐어요. 앞으로 레슨 할 때 포핸드를 집중해서 배우고 싶어요. 될 때까지 계속요”


1초가 정말 1초인지 의심스러운 기나긴 몇 초가 지났다. 관장은 서늘하게 나를 바라봤다. “제가 지금까지 포핸드 안 가르쳐 줬어요?” 냉랭한 표정만큼이나 그의 말투는 딱딱하고 매서웠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며칠 동안 계속 고민했던 걸 말하는 건데.’ 관장은 내가 미처 말할 틈도 없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평소에 연습 얼마나 하세요? 10분은 하세요, 10분 못하면 5분은 하세요?” “아, 그래도 10분, 5분, 연습은 계속하는데…….” 예상치 못한 관장의 말에 머릿속이 하얘져 기어들어 가는 대답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내 표정과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다그침은 계속됐다. 다른 회원을 들먹이며 연습을 운운하는 모습에서 냉정하고 신랄한 그의 속내가 거짓 없이 드러나는 거 같았다. 마치 ‘내가 못 가르친 거야! 네가 연습을 안 하니까 못하는 거지! 대회에서 못 한 게 내 탓이야, 뭘 더 가르쳐 달라는 거야!.’ 그의 차가운 표정과 베일듯한 말투, 한심스럽다는 억양까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모든 시그널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런 무안과 모욕을 마주하면서 그곳에 있을 이유가 내겐 없었다. 라켓을 움켜잡고 레슨실을 나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탁구장이 즐거운 나지만, 이미 감정선이 날카로워진 내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동안 탁구가 재미있던 건 모르는 걸 알게 됐을 때 느끼는 신기함과 놀람, 멋진 플레이를 볼 때의 감탄과 감동 덕분이었다. 될 수는 없겠지만 할 수는 있는 일이라, 끊임없이 도전하면 언젠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힘이 났다. 하지만 머리로 안다고 몸이 바로 반응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애써도 온전하게 되지 않는 동작이 있다. 처음엔 내 부족함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적이 계속 반복되고 질책 수준까지 이르면 스스로 화가 나고 부끄러워진다. 탁구를 계속해야 하나, 소심해지고 망설여진다. 그러다 마침내 모멸감 같은 불편한 감정들이 떼로 달려든다. 그리고 마음에 자국을 남긴다. 보기 흉한 자국을.


레슨실을 나오자 눌러왔던 화가 폭발했다. “어떻게 하라고, 나도 안다고!” 화인지 설움인지 알 수 없는 눈물에 눈을 뜰 수 없었다. 가방을 챙기고 탁구장을 나왔다. 걱정돼서 나온 회원들과 근처 가게에 앉았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동안 미처 잠그지 못한 샤워기에서 물이 새어 나오듯 눈물이 계속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피가 솟아나는 상처를 지혈하듯 티슈를 한 움큼 잡고 눈가를 꾹 눌렀다. 매운 물은 계속 솟아났다.


주말이면 오름부 회원들과 연습하고, 잠시라도 시간이 되면 탁구장에 들려 연습했다. 최대한 시간을 많이 들이려고 노력했는데. 지난 대회는 예선탈락이었다. 안 되는 부분도 알고 극복해야 하는 것도 아는데. 잘하고 싶은데. 나도 실력을 올리고 싶은데. 집중연습이 필요했는데. 예상은 했지만, 막상 함께 연습했던 언니, 동생이 승급하고 오름부를 떠나니, 승급이 더 간절했는데. 내가 의지할 사람은 관장뿐이었는데. 탁구도 못 쳐서 서러운데, 오늘 더 캄캄한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혼자 남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