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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Aug 04. 2024

신유빈에게는 파리의 메달을, 나에게는 맞춤 트레이너를

탁구 고수를 찾습니다.

참 느리다. 이해력도 떨어진다.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하는 감각도 눈썰미도 없다. 학창 시절 느껴보지 못한 이 기분을 마흔 넘어 탁구를 배우며 알아가고 있다. 2019년 봄, 처음 탁구를 시작했지만, 코로나 등으로 멈춘 기간을 제외하면 실제 배운 기간은 4년이 돼 간다. 그동안 레슨도 꾸준히 받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사람들은 벌써 탁구 감각을 익히며 즐기고 있는데, 난 아직이다. ‘즐기는 탁구’가 소박한 소망이라 생각했건만, 제 보니 ‘원대한 소망’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탁구연습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다. 주중 2회 레슨을 받고, 레슨이 없는 날도 3일은 탁구장에 간다. 7일 중 적어도 5일을, 최소 2~3시간씩 탁구장에서 보내고 있으니 직장인에게는 꽤 많은 시간이다. 탁구장에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연습에 할애하고, 연습이 지칠 때쯤 게임 한번 하고 집으로 간다. 배우고 익히면 내 것이 되어야 하건만 아직도 초보 단계를 못 넘은 나는 도대체 지금까지 무얼 하고 있던 걸까.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단체 카톡방에 누군가 올려준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가슴에 쿵 와닿는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 같다. 쏟아붓는 연습시간과 꾸준한 레슨, 더디게만 보이는 실력, 나에게는 가성비 최악의 탁구다. 조금만 잡아주면 될 것 같은데. 40대 중반! 아직 체력은 괜찮다. 이제 말귀는 트여서 “이렇게 하세요” 하면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는 몸이 알아서 자동 동작이 나올 때까지 계속 연습해야 하는데 힘들다. ‘탁구 부진아’라고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그냥 나와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개인 코치처럼 주말마다 나와 함께 연습할 트레이너가 있으면 어떨까. 잠깐 레슨이 아닌 나를 쭉 지켜보면서 동작 하나하나 잡아줄 개인 트레이너. 이를테면 ‘탁구 과외’. 입시준비생도 아닌데 ‘과외’가 웬 말인가 하겠지만 그렇게라도 나의 탁구 생활이 윤택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트레이너님을 모시고 싶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간 탁구장에서 몇 달에 한 번도 얼굴 보기 어려운 고수 회원을 딱 마주쳤다. 오른손잡이긴 하지만 왼손으로도 탁구를 하는, 예전에 나와 왼손으로 겨눈 적 있던 회원이었다. ‘곰돌이 푸’처럼 뽈록 나온 배에 두루뭉술한 실루엣이 고수라는 사실을 의심쩍게 만들지만, 오래된 회원들 말로는 예전에는 탁구장에서 레슨 코치였다고 했다. 가끔 탁구장에 들려 한 번씩 초보 회원 공을 받아줄 때면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업을 바꿨고 탁구장에서 그를 보기 어렵다.


그는 그날도 잠시 들른 탁구장에서 다른 회원의 공을 받아주고 있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회원님!, 혹시 집중연습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주말 알 바 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주말 레슨요?” “네, 바로 저예요. 이제 정말 초보 벗고 싶은데 조금만 가르쳐주세요. 다 승급하고 저만 남았어요” 그는 내 말이 농담처럼 들렸는지 한마디 했다. “시간당 50만 원 줄 수 있어요?” 이런. 무슨 족집게 과외도 아니고. “5만 원도 아니고 50만 원요?” 내 표정이 사뭇 진지했나 보다. 그제야 진심인 줄 알았는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레슨비는 됐고, 생각해 볼게요.”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레슨비는 됐다는 말이 무슨 말이며, 생각해 본다는 것은 또 언제 답을 준다는 말인가. 그가 탁구장에 언제 올지 기약도 없는데. 잠시 후 탁구장을 나가는 그의 뒤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회원님! 꼭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그가 끄덕였다.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나는 트레이너가 있으면 좋겠다. 제자리에서 포어백 전환, 스텝을 뛰면서 포어백 전환, 오른손잡이인 내가 오른쪽으로 오는 공을 칠 수 있는 스텝을 내 몸이 익힐 때까지 매의 눈으로 나를 살펴줄 트레이너. 혼자서 반복연습이 필요하다면 그건 내가 하면 된다. 하지만 잘못된 동작으로 반복연습한다면 역효과다. 내 동작이 제대로 됐는지 지속해서 체크해 줄 나만의 트레이너가 필요하다.


내 인생에 탁구가 들어왔다. 즐기며 노는 탁구를 상상했지만 배울수록 어렵다는 탁구를 만나, 그래도 탁구가 전부인 듯 탁구를 덕질하며 쫓아다니는 일을 4년째 하고 있다. 조금만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이 될 듯 말 듯 밀당에 넘어가 끝내 다 주어버렸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제 좀 탁구가 나를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 좀 방법을 바꿔보자. 지금까지 했던 똑같은 방법을 계속하면서 탁구가 나를 봐주길 기대하기엔 나는 결코 시간 부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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