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머물 때 보이는 것들
이른 오전 6시 30분. 저희 집 앞에 보이는 나무에 햇살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띄어지는 시간입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괜히 애정이 가던, 매일을 지나치는 저 나무에는 5월의 싱그러움이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저 나무를 직접 만나지 못한 지 7일째.
아픈 것도 싫지만, 세 가족이 한 공간에 일주일 넘게 머물며 바깥을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게 참 무서웠습니다. 코로나 자가격리라는 것 말이죠.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주말이면 대부분 자가 키트를 검사하는데, 지난주 일요일 아주 아주 희미한 두 줄을 발견하고 남편에게 자가 키트 하나를 더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두 줄을 확인하고 월요일 아이는 확진을 받았고 우리의 격리는 시작되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옮겨져 아이부터 시작한 코로나. 저는 하루 이틀은 괜찮았어요. 어떻게든 안 걸려 보려고 남편은 독방 생활을 시작했고, 저는 kf94 마스크 두 개에 의사 선생님처럼 테이핑까지 해봤습니다. 내내 환기를 시킨다고 해도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5살과의 시간은 엄마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와버렸습니다.
다행인 것은 미라클모닝 챌린지 기간이고, 어린이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감사해지는 것들
확진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새벽 기상을 해야 하나. 부담스러워질 수 있던 시간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24시간 엄마로 지내야 할 시간에서 2시간은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빼올 수 있었습니다. 대신 아이와 낮잠을 꼭 챙겨 자기로 했어요.
잠을 자는 걸 워낙 싫어하는 아이라 잠과 건강에 관련된 모든 책들을 빼놓고 아이에게 잠을 설득시키기로 했어요. 그렇게 아이와 중간중간 수면 시간을 늘려가며 새벽의 내 시간 동안 평소처럼 책을 읽고 일을 해나갔습니다.
5월 첫 주 확진이라 가장 아쉬운 것이라면 가족의 행사를 제대로 치를 수 없다는 것. 당장 어린이날에 대한 이야기를 유치원에서부터 많이 들었던 아이는, 제 날을 챙기지 못해서인지 화를 많이 냈습니다.
대화하고 눈빛을 나누면 금방 이해하던 아이인데 많은 기대가 있었나 봅니다.
어린이날은 제대로 코로나 아픔이 시작된 날이었지만, 아이의 5살 어린이날을 그냥 보내줄 수가 없어 계획표를 짰습니다.
새벽 배송으로 얼른 주문한 쿠키 만들기 세트,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자연관찰 하기, 유치원에서 처럼 영어시간, 발레 시간을 갖고. 못 읽어주었던 책들도 한가득 쌓아두고 다 읽어주며 마구마구 신나게 놀아 주었습니다.
마음껏 업어주고 있는 힘껏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밖에서 뛰어 논 것만 못했겠지만 아이는 다행히 그다음 날부터 짜증이 서서히 줄었고, 저는 덕분에 하루 이틀 더 꽤 아픈 기분이지만 아이의 좋은 기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괜찮겠다 생각했어요.
다행히 이렇게 격리의 끝이 보입니다. 아이는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밖에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유치원은 며칠 있다 갈 계획이지만 밖에 나갈 수 있다는 신분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옵니다.
막막했던 격리의 끝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 이후로는 시간에 쫓겨 나누지 못했던 아이와의 시간을 충분히 채웠습니다. 덕분에 엄마 사랑해 사랑해를 참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위기 속에서 서로 웃음을 지으며 힘나게 해주는 방법을 하나 더 터득한 것 같고요.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힘듦도 꽤 있었지만 일주일을 지나고 보니 이 안에서 단단해진 우리 가족이 더 느껴집니다. 지쳐 있을 때 쉬어가라는 '코로나의 선물'이라는 말로 우리의 일주일을 정의 내리며.
이번 주는 코 끝에 스치는 바람 냄새, 그리고 얼굴에 쏟아지는 햇빛에 더욱 감사하며 지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