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냄의 미학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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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를 하나의 과녁으로 떠올려본다. 원형의 중심을 향해 동심원을 그려가며 사람들을 배치해보는 일은 흡사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처럼 느껴진다. 이 과녁을 너무 많은 사람으로 채우지 말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삶의 지혜를 말하는 이들, 소위 '현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너무 빽빽하게 채운 과녁엔, 정말 중요한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 말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동안 내 과녁을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며 안도감을 느꼈다. 빈자리가 없는 것이 마치 외로움을 방지하는 방법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그 안도는 일시적일 뿐, 정작 깊은 울림을 주는 관계는 그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녁은 나의 것이다. 타인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원 안에 누구를 들일지, 누구를 내보낼지는 오직 나의 몫이다. 누군가가 스스로 나가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기대에 불과하다. 타인의 행동과 생각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과녁의 주인은 나다. 나의 결단과 판단만이 이 원을 정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비워냄은 때로는 용기이자 선택이다. 오래도록 과녁을 텅 비워두는 일은 어떤 이에게는 깨끗한 삶의 방식처럼 보일 수 있다. 자극도, 위험도 줄어들 테니까. 하지만 동시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변화도, 아무 교감도, 아무 성장도 없다. 깨끗함이 곧 고요함이 되고, 고요함은 정체가 된다. 그 과녁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되묻게 된다.


누군가를 과녁 안에 들이는 일은 갈등을 감수하는 일이다. 때로는 불편함이 생기고, 상처가 발생한다. 그러나 그 불완전한 순간들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 신뢰, 애정, 연결감, 그리고 사랑. 인간관계의 본질은 단절과 차단이 아닌, 충돌과 공존을 통해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돌이켜 보면 나는 오랜 시간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끊어내고, 차단하는 방식으로만 다루어왔다. 내 과녁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 인간관계였는지 되묻게 된다. 혹시 나는 더 높은 차원의 관계—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때로는 흔들리더라도 함께 성장하는 그런 깊은 인간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이제 나는 다시 과녁 앞에 선다. 빈자리 몇 개를 조심스럽게 남겨둔다. 그 자리가 언젠가 나의 삶을 바꿔줄 누군가를 위한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인간관계는 정리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다림의 예술이기도 하니까.


https://medium.com/@irenekim1b/%EF%B8%8F-the-aesthetics-of-emptying-9226b6ab96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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