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이래.” 이 짧은 문장에서 집착은 시작된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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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해.”

“나는 이 시간에 일어나야 해.”

“나는 이걸 해야만 해.”


처음엔 방향을 잡기 위한 나침반 같은 문장이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준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점점 나를 조이는 틀이 되었다.

내가 만든 그 기준은 어느새 ‘집착’이 되었고, 그 집착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고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내 일상의 구석구석을 점령해갔다.


“내 생각은 이래.”

이 짧은 문장에서 집착은 시작된다.

고정된 생각을 붙잡는 그 순간부터, 나는 생각의 노예가 된다.

“나는 틀릴 리 없어”, “이건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해.”

그 틀에 현실이 어긋나는 순간, 내면의 충돌이 시작된다.

집착은 고정된 생각에서 비롯되고, 그 집착이 바로 고통을 낳는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반드시 이걸 해야 해.”

그런 고정관념들이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는다.


‘나는 원래~’라는 말은 정체성에 대한 집착이며, 예상이 빗나갈 때 좌절을 가져온다.

하지만 그 기대 자체가 허상이었음을 알게 되면, 외부 상황에 의한 감정의 파동도 줄어든다.

비집착과 무상의 통찰, 그것이 마음의 자유를 불러온다.




집착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이 문장에서 출발한 집착은, 나를 설명하고 규정짓는 역할을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이뤄야 하는지를 정의해버린다.

그리고 그 설정된 이미지에 현실이 어긋나는 순간, 불편함과 좌절, 분노가 나를 흔든다.


나는 그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감정마저도 내 탓이라 여기며 죄책감을 덧씌운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들, 정말 ‘나’였을까?

내가 만든 허상은, 나의 선택 같았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가 만든 '자기감옥'이었다.

누구에게 강요받은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안에 자발적으로 머물렀다.



나는 어떤 사상도 갖지 않기로 했다


나는 다짐한다.

“나는 아무런 사상도, 철학도 갖지 않겠다.”


정확히 말하면, 갖더라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생각을 갖는 건 괜찮다.

하지만 그것을 ‘진리’처럼 움켜쥐는 순간, 나는 내 자유를 잃는다.

생각은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게 된다.


나는 평온을 원했다.

흔들림 없이 고요한 내면.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평온을 원한다’는 마음조차도 또 다른 갈망이자 집착이라는 것을.


조용한 안정을 위한 애씀, 그 자체가 마음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의 나는, 흐르는 강가에 앉은 사람 같다.

맑고 투명한 물이 내 앞을 지나간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나는 자꾸 손을 뻗는다.

그 흐름을 쥐고 싶다. 붙잡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하지만 물은 언제나 그렇듯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쥐려 하면 할수록, 더 빠르게 흘러간다.

남는 건 싸늘한 허망함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통을 느낀다.

왜 이렇게 놓치기 쉬운지, 왜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지.


하지만 천천히 깨닫는다.

평온은 물을 쥘 때가 아니라, 그 흐름 속에 조용히 머무를 때 찾아온다.



아침이었다.

눈을 떴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깨어났을 뿐인데,

머릿속에 조용한 질문이 피어올랐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어야 했던 걸까?”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닐까?”


그 질문들은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반복되었다.


왜 깨어난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왜 시작에도 판단이 따라붙을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억지로 맞춘 알람도 없었고, 강박적인 계획도 없었다.

원하던 리듬에 따라 눈을 떴고, 몸은 평화로웠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그 평온은 설명되지 않았다.

마음이 가만했고, 몸이 편안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평온은 애써 얻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데서 온다는 걸.



원래’라는 말의 환상


나는 자주 되뇐다.

“원래라는 것은 없다.”


“나는 원래 이렇게 해야 했는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내 인생은 원래 이렇게 흘러가야 했는데.”


이런 문장들은 모두 내가 만든 서사다.

하지만 그 서사엔 작가도, 기획자도 없다.

나는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로 믿어온 것이다.


삶은 원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조금 달라져도, 어긋나도, 여전히 그것은 ‘나의 길’이다.



나는 흐름을 따라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아침이면 또다시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놓쳤다는 조급함, 더 잘해야 한다는 긴장이 따라온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꿀잠 잘 자고 일어났다. 감사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흐름을 따라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물처럼, 바람처럼,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 머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눈을 떴다.


어쩌면 조금 늦었고, 계획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


“꿀잠 잘 자고 일어났다. 감사하다.”


거기서 끝내는 연습.

더하지 않고, 덜어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고,

오늘 하루, 내가 나에게 가르쳐준 성찰이다.


“물의 흐름을 쥐려는 대신, 그 곁에 조용히 머물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삶은 나에게 평온이라는 선물을 건넨다.”



https://medium.com/@irenekim1b/to-the-one-trying-to-grasp-the-flow-of-water-33b8fe39ed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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