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을 읽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마음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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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상할 만큼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꼭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그냥 살아도 된다.

해야 할 것들, 지켜야 할 시간, 완성해야 할 계획들로 빼곡했던 마음속 지도 위에 조용히 연필로 ‘공백’이라는 여백을 그려 넣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왜일까.

왜 요즘의 나는, 이토록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은 걸까.

왜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자’는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드는 걸까.


한때는 삶을 쥐어짜듯 살았다.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 어딘가에 도달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밀어붙였고,

나는 루틴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훈련시켰다.

성과의 이름으로 나를 채찍질했고, 그렇게 꾸준히 밀어붙이며 만들어낸 리듬은

결국 내 몸에 자동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처럼 자리 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내게 꼭 필요했고, 충분히 보람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모든 반복과 강박조차도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토대였고, 어떤 단계에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성장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다음 흐름으로 옮겨와 있었다.

이제는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고,

나는 조금 더 여유를 품은 채 흐름에 나를 맡기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돌아보면, 무언가가 내게 찾아왔던 시점들은

언제나 내가 움켜쥐려 애쓸 때가 아니라,

마음에 틈과 여백이 생겼을 때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 여백조차,

과거 내가 치열하게 다해본 끝에 만들어진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도 필요했고,

지금 이렇게 힘을 내려놓고 흐름을 느끼는 시간도 꼭 필요한 것이다.

지금 나는 그 흐름을 타려 한다.

붙잡지 않고, 억지로 만들지 않고,

다만 지금 나에게 오는 리듬에 나를 실어본다.

마치 누군가 나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이제 됐어, 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구나” 하고 손을 내미는 듯한 순간.


그런 경험이 쌓이고 나니 이제는 안다.

모든 것을 내가 조정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환상이었다는 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뿐이고,

그 너머는 어쩌면 더 큰 흐름의 영역이라는 것을.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과는 다르다.

오히려 깊은 관찰과 신뢰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하루, 이 시간, 이 감정, 이 상황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 안에 나를 둬보는 것.

될 것은 될 것이고, 오지 않을 것은 애써 오지 않는다.

그 단순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안다.

이 흐름에 나를 놓아두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익숙했던 긴장, 손에 쥐고 있던 계획표,

미리 짜놓은 미래의 설계도들을 놓는다는 것은

마치 나를 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흐름에 스스로를 놓아두는 것.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삶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신뢰하려는 용기라는 것을.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흘러가게 두고, 다만 정직하게 머무는 하루.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충실한 하루.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이 ‘흐름에 맡긴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힘을 빼려 애쓰지만, 그 순간조차 나는 또다시 힘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마음 한켠에서는 여전히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조차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그곳에 온전히 닿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는 해보려 한다.

왜냐하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내 안의 흐름이 나를 그쪽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 흐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지의 그림자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름 속에서조차,

나는 오늘도 천천히, 흘러가 보려 한다.




https://medium.com/@irenekim1b/reading-the-flow-surrendering-to-its-rhythm-6593a3ec39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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