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에세이]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다녀와서

어느 수집가의 초대 – 故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국립중앙박물관

by 채유

어린 왕자나 모모와 같이 주기적으로 찾아서 읽는 책이나 영화처럼, 이건희 회장 기증전 또한 주기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가 되지 않을까. 이번 전시가 열리는 줄도 몰랐는데 친구로부터 같이 가자는 제안을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이미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기증전을 다녀왔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시간제한으로 3관을 미처 보지 못하고 쫓겨 나와야 했기 때문에 그때 제대로 보지 못한 작품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반갑게 수락했다.


전시를 다 보고 난 감상은, '정말 많다'였다. 괜히 제목에 수집가가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규모가 작년의 전시보다 서너 배는 된다고 느껴졌다. 그만큼 한 발 걸을 때마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든 회화, 조각, 유물, 가구, 도자기, 소품, 서적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전보다 시청각 자료도 더 많아져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추성부도, 범종, 경현당 갱재첩도 인상 깊게 관람했다. 물론 작품이 엄청 많은 만큼 후반부로 갈수록 체력도 떨어지고 집중력도 낮아졌다.

그리고 많다는 것은 단순히 작품의 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관람객도 해당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첫 기증전(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이 코로나 시국에 제일 통제가 엄격했던 만큼 조용하고 정갈하게 전시 관람이 가능했던 반면에, 이번 전시에서는 복잡한 인파 속 비매너에 조금 더 많이 치였다.


하도 볼거리가 많아서 관람이 끝나고도 큐레이션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유튜브에 올라온 전시 투어 영상(https://youtu.be/qvEl7QT4WjM)을 보고 어떤 의도로 전시를 한 건지 와닿았다. 특히 입구에서 만난 첫인상은 '초대'와 '집'이었는데, 그것이 정말 '수집가'라는 주인의 집으로 초대한다는 뉘앙스인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특히 건축적인 관점의 집, 문 등이 나오다가 인물이 주인공인 초상화와 가족, 사랑, 모정 등의 작품이 나열되었는데 이것이 따뜻한 환대를 연상한다는 의도였는지도 몰랐다... 아마도 나에게 '집'과 '가족', '사랑'은 연결되는 요소가 아니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시간대에는 초장의 길이 꽉 막혀서 발걸음을 떼기도, 작품을 잘 관람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1부에서는 집, 가족, 그리고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으로 마무리되는 정원까지, '가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공간을 엿볼 수 있었다. 장욱진의 <가족>, 김정숙의 <키스>,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 이중섭의 <현해탄>과 같은 작품들이 가족애와 모정 등 무형의 감성을 담았다. 그리고 책가도 병풍, 확대경, 주판이나 잔과 같은 가구와 소품들이 실제로 집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듯한 부피감을 더했다.

소리와 조명, 바닥의 영상까지 곁들여 포인트를 극대화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앞에서 잠시간 멍하니 그림을 보았던 이유는 어쩌면 앞에서 과도하게 집 구석구석을 안내하는 듯한 전시 구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복잡하고 바쁘게 두 눈에 담아야 했던 작품들은 분명 흥미로웠지만 역시 싱그럽게 자연을 표현한 그림 앞에서 평안을 느끼는 것이다.


2부는 테마에 꼭 걸맞게도 '수집품'의 향연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곱씹을만한 인상 깊은 작품들, 그리고 이전 기증전에서 봤지만 또 봐서 반가운 작품들이 여럿 있어서 1부를 보고 지친 기색이 쏙 들어갔던 것 같다.
이인문의 <소나무 아래에서 폭포를 보다>라는 작품은 먹의 농담과 은은한 채색을 통해 멋있는 소나무가 드리워진 경치 좋은 계곡에서 느긋하게 쉬며 힘차게 흘러가는 물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작은 크기에 비해 섬세한 표현이 공감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정도여서 기억에 남았다. 난과 새, 꽃, 돌을 담은 족자들도 다양했는데, 하나하나가 신중하면서도 무심한 듯한 붓놀림이 화가의 심경을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내가 방문한 6월에는 김홍도의 <추성부도>가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전 명품전에서 인왕제색도와 나란히 걸려 있던 것에 비해, 다른 작품과 분리된 공간에서 집중된 조명과 한편에 놓인 해설 영상을 보며 추성부도 그림 자체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이것이 큐레이션의 힘인가 싶었다. 영상에서 나오는 소리 덕분에 마른 가을 낙엽이 바람에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그림에 덧입혀지며 더 입체적인 감상을 할 수 있었다.
정광호의 <나뭇잎>은 작품 자체도 감탄스럽지만, 작품의 배치와 조명의 힘도 그 전달력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벽과의 설치 간격, 벽의 색깔, 조명은 어떤 각도에서 얼마나 떨어져서 비춰야 할지 여러 요소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달라질 테니까.
그리고 '나 청자 좋아하네'라고 무심코 깨달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도기와 토기류들도 만날 수 있었다. 유려한 곡선을 이루는 매끄러운 표면 위 비취색과 흰 학의 조합이라니, 정말 가슴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스크가 아니었으면 코 박고 보다가 전시 유리에 모공으로 된 비문도 남길 뻔했다.
고려시대 유물인 <범종>은 덩그러니 전시만 해뒀으면 그저 그런 전시품이었을 텐데, 종의 울림을 디지털화해서 시청각 배경을 둠으로써 차별성을 두었다. 음의 파동을 표현한 입자의 향연은 옛날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의 재생 화면을 떠오르게 했지만, '저 종은 어떤 소리가 날까?'의 호기심을 채우는 특색 있고 좋은 시도였다. 덕분에 범종의 녹과 문양, 부조 등도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방혜자의 <하늘과 땅>은 정원 형태의 그림이라는 것도 인상 깊었지만, 종이를 물들인 색깔과 선의 표현이 너무 강렬해서 보자마자 입을 딱 벌린 작품이었다. 웅장한 사이즈의 거실을 갖게 된다면 걸어두고 싶은 그림이랄까.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에서도 화사하고 영롱하게 빛이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감상과는 다르게 가운데 중심부가 땅을 의미하고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형태의 하늘을 표현했다는 설명은 첫인상과 대조되어 물음표로 남았지만.
이밖에도 이중섭의 <황소>, 권진규의 <손>, <일광삼존상>, 사경들, <수월관음도>, 김환기의 <산울림> 등 다시 만나서 반갑고 전시한다면 또 달려가고 싶은 작품들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섬세한 관찰력과 표현력, 상상력으로 화폭이나 조각에 사유를 담아 탄식을 자아내게도, 무상하게도 만드는 작품들을 이렇게 모아 온 안목이 정말 대단하다고 다시금 느껴지는 전시회였다. 매년 기념전을 열지도 모르니 귀를 쫑긋 세우고 내년에도 기다려봐야겠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이 바쁜 작품들을 한데 모아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기회였다.


권진규 <문>, 다기, 확대경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이중섭 <황소>, 이인문 <소나무 아래에서 폭포를 보다>
김홍도 <추성부도>
상감청자, 십장생도
방혜자 <하늘과 땅>
김환기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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