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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Mar 28. 2023

변호사님, 합의하기로 했습니다.

교특법치사 양형부당 검사항소 사건의 항소 기각 변론

필자가 국선전담변호사로서 수천 건의 사건들을 변론해 오면서 가장 마음이 힘들었던 사건은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들이었다.

사망의 경위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경위가 어떠하든지 간에 피해자가 본건 사고로 생명의 잃었다는 점에 있어서 그 생명을 잃게 한 피고인을 변론하는 것이 힘겨운 것이 사실이다.

위 사건은 필자가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할 당시에 변론했던 사건이었다.


위 당시 필자는 항소심 재판부에서 사건을 배당받아 변론하고 있었다.

필자가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된 사건은

교통사고로 인해 마을버스에 탑승해 있던 할아버지가 사망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마을버스 기사인 바, 위 버스가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피해자에게 약 1억 원 상당의 보험금과 병원비가 지급되었지만 피고인이 형사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1심에서 피고인에게 금고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고, 검사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사건이었다.​


피고인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피고인은 사고 즉시 경찰과 119에 신고하고 피해자를 의자에 앉히는 등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구호조치를 취했다. 또한 피해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두 차례 방문하였으나, 피해자가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 면회를 하지 못하였고 피해자 가족들도 자리에 없어 만나지 못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후, 피해자 가족들에게 맞아 죽을 각오로 빈소를 찾아 조문하였다.

문제는 합의금이었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유족과 수차례 만남을 가졌고, 피고인이 마련할 수 있는 최대의 금원이 300만 원임을 말씀드렸지만, 피해자의 유족과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피고인은 공탁이라도 하려 하였지만, 공탁도 피해자 유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하여 공탁도 못하고 1심 재판을 받은 것이었다.


필자가 피고인과 접견을 하니,

피고인은 뭔가 힘이 많이 빠져 있는 상태로 보였다.


피고인은 마을버스 기사였는 바, 마을버스에서 2년을 일하면 시내버스로 이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고당시가 23개월 차로 마을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1개월만 더 운행하면 시내버스로 이직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누구보다 더 조심스럽게 운행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본건 교통사고로 인해 회사의 요청으로 사직을 해야 했고,

시내버스로 이직을 하여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고자 꿈꿔왔던 희망이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실업자가 되었다.​


직장을 잃은 후 일용직 막노동을 전전하던 중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A 대표로부터 건설현장 작업을 제의 받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 법원으로부터 항소심 재판 출석 통지를 받은 상황이라면서(기일이 2020년 4월로 지정되어 있었다),


“중국 현장을 다녀와야만 생활고를 해결하고 최소한의 합의금이라도 마련할 수 있으니 중국 현장을 다녀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필자는 피고인의 말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A대표의 연락처를 받아 통화를 했다.

위 A대표는 피고인을 신뢰하고 있었고 피고인의 말은 모두 사실로 확인되었다.


필자는 위 A대표에게 사실확인서와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라는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 신분증 사본을 부탁했고, A대표는 필자의 요청대로 서류를 준비해서 필자의 사무실로 발송했다.


필자는 피고인이 출국해야 하는 사정을 기재하고 위 서류들을 첨부해서 재판부에 기일연기신청서를 제출했다


다행히 재판부는 기일연기신청서를 받아들여주셔서 피고인은 중국으로 출국할 수 있었다.

기일은 2020. 8. 26.로 연기되었다.


그런데 중국으로 출장 가 있는 피고인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처음 예정은 2020. 4. 17. ~7. 15. 까지였는데,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한 자재 공급 지연 등의 사유로 중국 현지 작업이 지연되어 작업일정이 2020. 10. 15.로 연장되어 2020. 8. 26.로 예정된 기일에 출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재판부에서 또다시 기일을 연기해 주실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A대표의 사실확인서와 중국 비자 연장 확인서류 등을 첨부해서 기일연기를 신청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재판부는 기일을 연기해 주셨다.

기일이 2020. 10. 28.로 연기되었다.

피고인은 중국에서 일을 마치고 무사히 한국으로 입국했다.

이제 남은 건 피해자 유족과의 합의였다.

수천 건의 사건을 변론하고 수천 명의 피해자들과 통화를 해왔지만,

피해자와 합의를 위해 전화를 하는 순간은 항상 긴장된다.

특히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더욱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미 1심에서도 피고인이 수차례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위한 만남을 가졌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필자는 합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유족에게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는 생각으로 피해자의 유족에게 전화를 했다.

필자가 전화하여 피고인의 항소심 국선변호인이라는 신분을 밝혔다. 피해자의 유족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필자는 유족분에게 피해자분의 사망에 대해 죄송한 마음임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변호사님이 죄송할 것은 없지요"

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유족분께 피고인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고, 합의금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정을 전달했지만, 아직 유족분의 화가 누그러지지 않았고 피고인이 마련할 수 있는 합의금도 부족하여 합의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필자는 피고인에게  피해자 유족분에게 보내는 사과 편지를 작성해서 필자에게 보내달라고 했고,

피고인이 작성한 사과편지를 유족분께 전달해 드렸다.

항소심 공판기일에 결심을 하고, 선고기일이 2020. 12. 11.로 잡혔는데 피해자 유족으로부터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2020. 12. 8. 피고인으로부터
“합의해 주신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피고인이 피해자 유족분을 만났는데 피해자 유족분이 합의를 해 준다고 하셨다고 했다.

필자는 당장 피해자 유족분에게 전화를 했다.


피해자 유족분은 필자에게 말했다.

"변호사님, 합의하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아버님 돌아가시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마음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고,
제가 피고인을 만났는데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입고 있던 옷이 너무 얇은 것 같아서
제가 제 잠바를 피고인에게 주었습니다.
합의하기로 했으니 필요한 서류만 알려주세요.
변호사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다행이었다.


2020. 12. 9. 합의서를 작성하려 했지만, 이체한도초과로 인하여 합의하지 못했다.

선고기일 하루 전인 2020. 12. 10. 에 합의금을 지급하고 합의를 했고, 법원에 합의서를 제출했다.

2020. 12. 11. 검사의 항소가 기각되었다.

선고기일에 변호사는 참석하지 않는다.

피고인은 선고를 듣고 필자에게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메일을 보냈다.

변호사님께서 많이 애써 주신 덕분에

무사히 선고 공판을 마쳤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많이 도움 주시고 애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더  힘내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필자도 답메일을 보냈다.

잘 됐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텐데

잘 마무리되어 다행입니다.​

이제는 마음고생 그만하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2020년 봄에 필자에게 선정된 사건은

2020년 겨울에서야 잘 마무리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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