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5년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된
사법고시 세대이다.
요즘은 로스쿨로 바뀌어서
신림동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지만,
사법고시 세대인 필자가 공부했던 시기에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학원 강의를 들으며 고시공부를 했었다.
고시생이 공부해야 하는 각 과목마다 인기 강사님이 계셨는데,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 강사님이 있다.
형사소송법을 강의하시던 변호사님이셨는데,
그 변호사님 강의가 워낙 재미있어서 아직도 가끔 20년 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이 생각난다.
그 당시에는 아직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이었는데,
(간통죄는 2015. 2. 26.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폐지되었다.
배우자 있는 자의 간통행위 및 그와의 상간행위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된 것) 제241조(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가 성적 자기 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적극)
헌법재판소 2015. 2. 26. 선고 2009헌바17,205,2010헌바194,2011헌바4,2012헌바57,255,411,2013헌바139,161,267,276,342,365,2014헌바53,464,2011헌가31,2014헌가4(병합) 전원재판부 [형법제241조위헌소원등]
간통죄는 친고죄였고, 이혼소송과도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간통죄를 공부할 때 함께 공부해야 하는 분량이 어마어마했었다.
그 변호사님이 강의시간에 간통죄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변호사로서 간통사건의 경찰조사에 동석했던 경험을 말씀해 주신 일이 기억난다.
그 변호사님은 간통죄로 조사를 받는 남녀가 손을 꼭 잡고 경찰서 안에 앉아 있는 모습을 말씀하시면서,
“정말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고 하셨다.
여자분의 남편이 가정폭력이 심해서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남편이 간통죄로 고소해서 경찰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사연도 말씀해 주셨다.
위 당시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시공부를 시작해서 세상 경험이 없던 필자는 위 변호사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다.
간통죄라는 범죄를 저지른 남녀가 손을 꼭 잡고 경찰서에 앉아 있는 것도,
"그 모습이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는 변호사님의 말씀도,
특히 “안쓰러웠다”는 표현도
모두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 당시에는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안쓰러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형사법정에서 수천 건의 형사사건을 변론하면서
필자의 생각도 변하게 되었다.
비록 일어난 일 자체는 처벌받아야 할 일일지라도,
모든 일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수십 년 동안 가정폭력을 당해 온 아내가 최후의 수단으로 남편을 살해했을 때는
적어도 그 수십 년 동안의 폭력을 홀로 감당해 온 아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기소되었지만,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보면
오히려 피해자라는 사람이 오랜 기간 동안
피고인을 괴롭혀 온 사람들인 경우도 많았기에
과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20년 전 형사소송법을 강의하셨던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사건에 대해 추정해 보면,
아내 입장에서는 수년 동안 폭력에 시달렸지만
남편의 폭력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20년 전에는 남편이 폭력을 행사한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경우도 드물었고,
설사 신고를 하더라도, 집안 문제라는 이유로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제재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아내로서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을 갔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 그제야 폭력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폭력을 가했던 남편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듯 아내에 대한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간통죄로 고소를 했을 것이다.
(과거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 배우자를 간통죄로 고소하기 위해서는 이혼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아내로서는 수년 동안 폭력을 당한 피해자였으나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폭력을 피해 도망가는 방법을 선택해서 그제야 폭력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고자 한 것이었는데,
결국은 간통죄를 범한 범죄자가 되어 이혼소송까지 당하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고시생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안쓰러웠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