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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Apr 06. 2023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안쓰러울 수 있을까?

필자는 2005년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된

사법고시 세대이다.​


요즘은 로스쿨로 바뀌어서

신림동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지만,


사법고시 세대인 필자가 공부했던 시기에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학원 강의를 들으며 고시공부를 했었다.​


고시생이 공부해야 하는 각 과목마다 인기 강사님이 계셨는데,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 강사님이 있다.


형사소송법을 강의하시던 변호사님이셨는데,

그 변호사님 강의가 워낙 재미있어서 아직도 가끔 20년 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이 생각난다.

그 당시에는 아직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이었는데,

(간통죄는 2015. 2. 26.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폐지되었다.

배우자 있는 자의 간통행위 및 그와의 상간행위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된 것) 제241조(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가 성적 자기 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적극)

헌법재판소 2015. 2. 26. 선고 2009헌바17,205,2010헌바194,2011헌바4,2012헌바57,255,411,2013헌바139,161,267,276,342,365,2014헌바53,464,2011헌가31,2014헌가4(병합) 전원재판부 [형법제241조위헌소원등]

간통죄는 친고죄였고, 이혼소송과도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간통죄를 공부할 때 함께 공부해야 하는 분량이 어마어마했었다.


그 변호사님이 강의시간에 간통죄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변호사로서 간통사건의 경찰조사에 동석했던 경험을 말씀해 주신 일이 기억난다.

그 변호사님은 간통죄로 조사를 받는 남녀가 손을 꼭 잡고 경찰서 안에 앉아 있는 모습을 말씀하시면서,


“정말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고 하셨다.


여자분의 남편이 가정폭력이 심해서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남편이 간통죄로 고소해서 경찰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사연도 말씀해 주셨다.​


위 당시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시공부를 시작해서 세상 경험이 없던 필자는 위 변호사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다.


간통죄라는 범죄를 저지른 남녀가 손을 꼭 잡고 경찰서에 앉아 있는 것도,

"그 모습이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는 변호사님의 말씀도,

특히 “안쓰러웠다”는 표현도
모두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 당시에는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안쓰러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형사법정에서  수천 건의 형사사건을 변론하면서

필자의 생각도 변하게 되었다.

비록 일어난 일 자체는 처벌받아야 할 일일지라도,

모든 일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수십 년 동안 가정폭력을 당해 온 아내가 최후의 수단으로 남편을 살해했을 때는

적어도 그 수십 년 동안의 폭력을 홀로 감당해 온 아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기소되었지만,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보면

오히려 피해자라는 사람이 오랜 기간 동안
피고인을 괴롭혀 온 사람들인 경우도 많았기에
과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20년 전 형사소송법을 강의하셨던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사건에 대해 추정해 보면,

아내 입장에서는 수년 동안 폭력에 시달렸지만

남편의 폭력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20년 전에는 남편이 폭력을 행사한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경우도 드물었고,

설사 신고를 하더라도, 집안 문제라는 이유로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제재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아내로서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을 갔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 그제야 폭력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폭력을 가했던 남편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듯 아내에 대한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간통죄로 고소를 했을 것이다.

(과거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 배우자를 간통죄로 고소하기 위해서는 이혼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아내로서는 수년 동안 폭력을 당한 피해자였으나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폭력을 피해 도망가는 방법을 선택해서 그제야 폭력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고자 한 것이었는데,

결국은 간통죄를 범한 범죄자가 되어 이혼소송까지 당하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

이제는,

고시생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안쓰러웠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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