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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May 11. 2023

폭행치상사건 무죄 변론

자신만의 터지기 쉬운 풍선

1. 사건당사자들에 대한 설명

가. 피고인

나. 피해자

다. 목격자 A

2. 공소사실

3. 피고인의 주장(공소사실 부인)​


4.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대한 검토

5. 변론과정


6. 자신만의 터지기 쉬운 풍선


1. 사건당사자들에 대한 설명

가. 피고인

피고인은 미혼인 40대 후반의 직장을 다니는 남성이었다.

피고인에게는 본건 이전에 아무런 전과도 없었다.

피고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무심히 던진 말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았다.


나. 피해자

피해자는 50대 초반의 식당 여주인이었다. 혼자 일을 해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었고, 정도 많고 생활력도 강한 분 같았다.

다. 목격자 A

피고인과 기원에 함께 다니던 피고인의 친구이며, 사건당시 피고인,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런데, 사건당일 이후로 피고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피고인으로서는 A와 연락할 방법이 없었고, 이러한 사정을 재판부에 말씀드려서 검찰에서 A의 신원을 확보하여 A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2. 공소사실

피고인은 ~에 있는 피해자(여, 52세) 운영의 식당에서, 술을 먹다가 피해자로부터 영업시간이 종료되었으니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고 피해자와 시비가 되어 말다툼을 하던 중, 피해자의 몸을 손으로 밀쳐 바닥에 넘어 뜨려, 피해자로 하여금 바닥에 깨져 있는 술병에 팔을 베이도록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폭행을 가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치료일수를 알 수 없는 팔의 열상을 입게 하였다.



3. 피고인의 주장(공소사실 부인)

필자가 위 피고인의 1심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피고인은 필자에게,


“변호사님, 다 거짓말입니다.
피해자가 술병을 깨서
스스로 자신의 팔에 그은 거예요.”

라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피고인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1) 피고인은 사건당시 피해자의 계속되는 폭행을 참다못해 피해자를 민 사실은 있다.

2) 하지만, 피고인이 피해자를 밀었을 당시에 피해자는 넘어지지 않았고, 또한 위 당시 바닥에 술병이 깨져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3) 피고인은 공소사실처럼 술병이 깨져 있는 바닥에 넘어져 피해자의 팔이 술병에 베이는 과정을 목격한 사실도 없다.


사실 폭행이나 상해사건으로 재판받는 피고인들 중에는 “피해자가 자해를 했다”라고 주장하는 피고인들이 워낙 많았지만,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자해를 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증거를 확인해 보니,

‘자해를 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대한 검토

본건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다음과 같았다.


가. 맥주병 사진

: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져 흩어져 있었다.


나. 피해자의 왼팔에 입은 상처 사진

피해자의 왼팔에는 선명하게 길고 얕은 하나의 상처가 있었다.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져 흩어져 있던 맥주병 위로 피해자가 넘어져서 다쳤다면, 맥주병 파편들로 인하여 잔 상처들이 많이 생기는 것이 경험칙에 비추어 합당할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왼팔 사진 속 상처는 ‘선명하게 길고 얕은 하나의 상처’였다. 피해자의 팔에 난 상처는 공소사실과 달리, 누군가 깨진 맥주병을 피해자의 팔에 그어 발생한 상처에 더 가까웠다(만약, 피해자가 세워진 깨진 맥주병 조각 위에 넘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여러 잔 상처가 아닌 하나의 상처가 생길 수 있겠지만, 그 경우라도 사람의 무게 때문에 얕은 상처가 아닌 깊은 하나의 상처가 생기는 것이 경험칙에 합당할 것이다. 결국 깨진 맥주병 위로 넘어졌다는 공소사실과 하나의 길고 얕은 선명한 상처라는 증거 사진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다. 피해자 진술 번복


1) 현장출동보고서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 행위자들의 주장

=> 피해자는, “피고인이 맥주병을 깨서 자신의 팔을 긁어서 다쳤다”라고 주장


피고인은, 피해자가 뺨을 때리고 발로 다리를 찼다고 주장하며 ‘저 여자가 맥주병을 자기가 깨고 자해를 했다’고 주장.


* 검거 후 행위자들의 소행 및 기타 자료

-피고인은, 피해자로부터 뺨을 맞아 생긴 상처가 있으며 자신은 피해자로부터 맞고도 참았는데 피해자가 자해를 하고서 자신에게 덮어 씌운다고 계속 주장함.


-피해자는 피고인이 맥주병을 휘둘러 왼쪽 팔을 다쳤으니 피고인을 처벌하여 달라고 진술하였으며 경찰관이 병원으로 가서 치료하라고 하자 처음에는 거부하다 사당지구대에 와서 119를 요청하여 중앙대병원으로 후송함.


2) 사건발생 10일 후 피해자의 경찰에서의 진술


=> 피해자는 사건발생 10일 후 ‘피고인에 대한 폭행사건의 피의자이자 피해자의 팔에 생긴 상처에 대한 피해자’로서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에는,


피해자가 넘어지기 전에 병이 먼저 바닥에 떨어지고 그 위로 넘어지면서 팔이 다친 것 같다고 진술을 번복하였다.



5. 변론과정


객관적 증거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져 흩어져 있는 맥주병 사진’과 ‘선명하게 길고 얕은 하나의 상처가 난 피해자의 왼쪽 팔 상처 사진’은 공소사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상처는 누군가 깨진 병으로 피해자의 팔에 그은 상처에 가까웠다.


깨진 맥주병을 피해자의 팔에 그은 사람이
피고인일까? 피해자일까?


피해자는 사건당일에는 ‘피고인이 맥주병을 깨서 자신의 팔을 긁어서 다쳤다”라고 주장하다가, 사건발생 10일 후 경찰에서는 “넘어지기 전에 병이 먼저 바닥에 떨어지고 그 위로 넘어지면서 팔이 다친 것 같다”라고 진술을 번복하였다.


필자의 경험상 진술을 번복한 피해자들이라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하면,

피해자의 주장에 신빙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아예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피해자에 대한 진술조서에 대해 ‘동의하고 입증취지를 부인’했다.


이 증거들은 모두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이었는 바, 필자의 경험상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자해를 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재판단계에서의 새로운 증거인 객관적 증인이 필요했다.


사건당시 피고인,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신,

피고인, 피해자와 알고 지낸 지인 A가 있었는데, 문제는 사건당일 이후로 A가 피고인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A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피고인은 A의 전화번호만 알고 있고 A가 피고인의 연락을 받지 않아 A의 증인 출석을 담보할 수 없었다.


재판부에서는 실체진실을 밝히기 위해 검사가 A와 피해자를 모두 증인으로 신청하는 것을 권유했고, A와 피해자가 검사 측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피해자는 예상한 대로

“공소사실과 같은 일이 있었고, 사건당일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피고인이 맥주병을 깨서 자신의 팔을 긁어서 다쳤다’고 말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A의 증언만이 남았다.

A는 피고인의 연락은 받지 않았지만, 검사 측 중인으로 법정에 출석해서 증언을 했다.


A는 사건당일 피고인에게도 실망하고, 피해자에게도 실망했기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아 피고인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오늘 출석하기 전에도 피고인과 연락한 사실이 없다고 중언했다.

-> A의 이러한 증언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 제삼자임을 확인시켜 줬기에, A의 증언에 신빙성이 높아졌다.


이제 A의 증언내용에 따라, 피해자가 자해를 힌 것인지,

공소사실 기재처럼 깨진 맥주병 위에 피해자가 넘어져서 생긴 상처인지가 결정될 것이었다.


A의 증언은 다음과 같았다.


사건당시에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싸움이 있었고, A가 이를 말리려고 하자


피고인이 A에게 “당신은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쳤다.

A는 이 말을 듣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다시는 피고인과 연락하지 않을 생각으로 주점 밖으로 나갔는데,


피해자가 나가는 A를 끌고 들어와서 주점 입구쯤에 잠시 서 있게 되었다.


새벽이고 주점내부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점 통로 쪽에서 “너 이 새끼, 오늘 죽었어!”라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자의 소리가 들렸고(위 당시 주점 안에 있는 여성은 피해자뿐이었다.), 잠시 후 맥주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주점이 소란스러워졌다고 했다.


A는 그 소리를 듣고 그대로 주점 밖을 나왔고, 그 후로 법정에 출석하기 전까지 피고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자와 A의 증언들을 마치고 결심을 했다.

몇 주후에 열린 선고기일에,

피고인에 대한 상해의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위 사건은 무죄로 확정되었다.


6. 자신만의 터지기 쉬운 풍선


피해자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피고인에 따르면,

피고인이 위 주점에서 A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피해자가 갑자기 “oo 씨, 기원 사람들이 자기 보고 싸가지 없다고 하는 거 알아”라고 말했고, 피고인은 평소 유일한 안식처로 생각하는 기원에서 친하게 지낸 A앞에서 위와 같이 근거 없는 소리를 들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피해자와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했다(피고인은 위 주점 근처에 위치한 기원을 약 7~8년 동안 다니고 있는 바, 위 기원은 혼자 사는 피고인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롭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가는 피고인의 유일한 마음의 위안처이자 기분전환 장소였다. 피고인은 위 기원에서 막내이자 분위기 메이커로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친분을 쌓아왔는데, 위와 같은 말을 들으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이 화가 치밀었던 것 같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갑자기 “oo 씨, 기원 사람들이 자기 보고 싸가지 없다고 하는 거 알아”라고 말했다고 했지만,


피해자가 이 말을 하기 전에 피고인이 무심코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느낄 정도의 말을 했거나, 사건당일 전부터 피고인이 무심히 던진 말들이 피해자에게 상처가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형사사건을 변론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저 사람이 그 말을 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필자가 경험한 세상에서는​
‘갑자기’도 ‘우연히’도 없었다.


피해자는 이혼 후 혼자 딸을 양육하기 위해서 식당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었겠지만(스스로는 전혀 느끼지 못했겠지만),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발언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피고인은 A가 식당을 나간 이유가 A가 같이 엮이면 미안하니까 피고인이 A에게 ”먼저 들어가라 “고 하자,

A가 서둘러 위 바를 나갔고,

A가 피고인의 연락을 받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지만,


힘들게 법정에 출석한 A의 증언에 따르면,

A는 피고인이 “당신은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쳤을 때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피고인과의 관계를 끊을 결심을 하고 주점 밖으로 나간 것이고, 연락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피고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피고인과 피해자가 쌍방 폭행으로 수사를 받았지만,

피고인은 그래도 2년 넘게 가던 단골집이고 치료도 원만하게 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또한, 남한테 악하게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피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였기에 피해자는 폭행으로 기소되지 않은 것이었다.

피고인 스스로에게는 타인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무심코 한 그 말들로 인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해서 죄를 뒤집어씌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거나

관계를 끊을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주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본건은

피고인, 피해자, A 모두
‘타인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나 중요했던 부분에 대해
타인이 무심코 던진 말에
마음의 상처를 받아 발생한 사건‘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리 모두는

남들은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터지기 쉬운 풍선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무심코 던진 그 말이 칼이 되어

다른 사람의 터지기 쉬운 풍선을 건드려 터트려버리면,


그 파장은 거짓말을 해서 죄를 뒤집어 씌우고 싶게 만들 수도 있고,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관계를 끊게 만들 수도 있었다.



다행히

피고인이 하지 않은 일로 처벌받지는 않게 되었지만,

피고인은 두 사람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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