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있었던 두려움
필자는 형사재판에서 수천 명의 피고인들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기 위하여 남을 죽일 수도 있는 거짓말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가 살기 위하여, 내 가족이 살기 위하여
타인을 죽일 수도 있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필자가 경험한 대부분의 거짓말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했던 거짓말이었지만,
거짓말의 이유를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사례들도 있었다.
필자가 수원지법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하면서 항소심 사건을 담당했을 때 변론했던 피고인도 그랬다.
그 피고인은 1심에서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해서
증인들을 여러 명 불러 신문했지만
결국 유죄로 징역형이 선고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였다.
필자는 위 피고인의 항소심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필자는 위 피고인이 항소심에서도 1심에서와 같이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구치소로 접견을 갔다.
그런데,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만 다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1심에서 강력하게 억울함을 호소했던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피고인은 말했다.
“변호사님,
제가 1심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때 아내가 이혼을 하자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하면
이혼을 당해야 해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혼해서 혼자 남게 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1심 재판도중에
이혼도 했고 유죄가 선고되어 구속도 되었으니
이제 제가 붙잡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잘못을 모두 인정합니다.
그냥
형량이 몇 개월이라도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위 피고인의 말을 들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 그래서 거짓으로 무죄를 주장했구나.
그 피고인이 거짓으로 무죄를 주장했던 이유는
이혼으로 혼자 남겨지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른 것도,
범죄를 저지르고도 인정하지 않고 거짓으로 무죄를 주장하는 것도 모두 분명 잘못된 행동이며,
그에 따른 처벌을 받이야 할 것이다.
다만, 필자는 위 피고인의 변호인으로서
위 피고인이 느꼈던 두려움은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