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영 변호사 Oct 16. 2024

사기 피해자가 처벌받은 이유는?

실제 형사법정에서 피고인들을 변론하다 보면,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순간적인 감정을 참지 못하여 오히려 형사재판을 받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사기 피해자는 왜 형사처벌을 받게 되었을까?




어느 날 피고인에게 모 회장이라는 자가 접근해서

'100억 원을 은행에 제시하면
200억 원을 투자받을 수 있다'

는 정보를 흘렸다.


"~역에 있는 00 은행 부행장을 알고 있다. 100억 원을 은행에 제시하면 200억 원을 투자받을 수 있다.

주말에 00 은행 뒷문을 열어놓고 00 은행 부행장이 기다리고 있으니 100억 원을 마련해서 00 은행을 방문하면,

주중에 투자계약서를 작성하고 200억 원을 입금해 주겠다."


모 회장은 피고인에게 00 은행 부행장을 소개해줬다.

피고인은 모 회장, 00 은행 부행장으로부터 명함도 받았다.


하지만, 피고인은 100억 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100억 원을 마련해 줄 대부업자 A를 만나게 되었다. A는 피고인에게

"내가 100억 원을 마련해 줄 테니
대신 비용 2천만 원을 달라"

고 했다.


피고인은 A로부터 '100억 원을 마련해 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도 받았다.


A는 그 주 일요일에 100억 원을 마련해 주기로 했고, 피고인과 A는 일요일 오후 3시 30분에 00 은행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피고인은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끌어모았다.

토요일에 A에게 500만 원을 입금했고, 일요일 오전에 700만 원을 입금했다.

A는 2천만 원을 모두 받을 때까지 피고인을 만나주지 않고 전화로 계속 돈만 요구했다.

A는 피고인으로부터 2천만 원을 모두 받았다.


피고인과 A는 일요일 오후 3시 30분에 00 은행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A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 4시 20분쯤에서야 나타난 A는

"오늘은 은행 시간이 지나서 못 해주니
다음날 해주겠다.

1천만 원을 더 입금해라"

고 했다.


피고인은 A에게

“약속대로 2천만 원을 받았으니
100억 원을 제시해 달라”

고 했다.


하지만 A는 2천만 원을 받고도 약속도 지키지 않았으면서 추가로 1천만 원을 더 요구하고, 오히려 피고인에게

“법대로 하라”

며 적반하장 격으로 나왔다.


피고인으로서는,

약속한 일요일 오후에 00 은행으로 가서 100억 원을 제시하고 200억 원을 투자받아야 하는데,

A가 약속한 2천만 원을 모두 받고도 피고인에게 100억 원을 제시해주지 않고, 오히려 1천만 원을 더 요구하고 다음날 해주겠다고 말하니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게다가 피고인에게 "법대로 하라"며 적반하장 격으로 나오니, 이 상황에서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화가 난 피고인은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A를 폭행했다. 피고인이 A를 폭행하는 장면은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A는 피고인을 폭행죄로 고소했다.


그리고 A는 수사기관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법치국가에서 마음대로 폭행을 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처벌을 원합니다"




A의 행동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자.

A는 처음부터 2천만 원을 받고도 100억 원을 제시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A는 처음부터 2천만 원을 편취하고, 피고인을 화나게 만들어 폭행을 유도해 처벌받게 하려고 계획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A는 대부업자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피고인에게 200억 원을 투자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흘린 모 회장이라는 자, 00 은행 부행장이라는 자들은 정말 회장이고 부행장이었을까?

100억 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던 피고인에게 때마침 대부업자 A를 소개해 준 지인과, 100억 원을 마련해 주겠다고 나타난 대부업자 A, 그리고 모 회장, 00 은행 부행장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까?




피고인은 2천만 원을 사기당한 것도 모자라 폭행죄로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첫째, 100억 원을 제시하면 200억 원이 생긴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믿은 것


둘째, 화를 참지 못하고 폭행을 가한 것이다.


1) 2천만 원을 사기당하고도 감정조절을 하지 못한 피고인은 폭행죄로 처벌 받았고,

2) 2천만 원을 주면 100억 원을 제시해 주겠다고 각서까지 작성해 준, 2천만 원을 모두 받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감정 조절을 잘했던 A는 처벌받지 않았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을 잘 파악하는 사기범들은

자신이 사기죄를 저질러 놓고
오히려 스스로 피해자가 되어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처벌받게 만들었다.



이전 11화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이유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