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했던 기억이나 생각이 사진이라는 증명서를 통해 최근 일처럼 생생해진다.
오빠의 졸업식, 언니 그리고 나, 동생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사진에 엄마와 함께 빠지지 않고 사진을 찍어 주던 것이 있다. 엄마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짙은 녹색에 흰색이 섞여 있는 모직 숄과 바둑판 모양의 울퉁불퉁한 크고 작은 사각형 모양의 악어 등 가죽이 드러나 있는 가방이다. 모직 숄은 세월이 흐르면서 좀이 먹은 조그마한 구멍이 양모 털에 가려져 있다. 악어백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끈은 해어져 너덜너덜해지고 악어 머리는 길이 들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느 때부터인지 엄마의 모직 숄은 눈에 뜨이지 않았고 엄마의 분신처럼 따라다니던 악어 가방도 자취를 감췄다.
어느 날 보고 싶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연세가 들어서인지 엄마는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고 계셨다. 옷장을 정리하고 싶은데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정리를 해 달라고 하신다. 엄마가 시집올 때 신던 빨간 꽃 자수 신발과 아버지가 출장 갔다 사 왔다는 스카프, 큰 오빠가 첫 월급 타서 사 왔다는 스웨터까지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는 물건들이다. 하나씩 물건에 담긴 추억을 회상하는 엄마의 눈빛에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하나씩 다시 서랍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장롱 한쪽에 다소곳하게 놓여있는, 눈에 익은 반가운 가방이 있다. 어릴 때는 그리도 커 보이던 악어 가방이 이제 보니 어른 손바닥 세 개 크기보다도 작고 아담하다. 그리고 그 옆에 습자지처럼 얇은 종이에 싸인 것이 있어 풀어보니 엄마가 늘 들고 다니시던 가방과 똑같은, 사용한 흔적이 하나도 없는 악어 가방이었다.
"에구, 우리 엄마 웬 궁상. 새것이 있었는데도 왜 다 낡은 백만 들고 다니셨어요?"라고 한마디 하니까 낡은 백은 네가 가져가라고 하신다. 기왕 주시려면 새것을 달라고 하니 새것은 언니를 줄 것이라고 했다. 기분이 상해서 안 가지겠다고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5, 6년의 세월이 흐른 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는 엄마가 주려다 못 주셨던 끈 떨어진 악어 가방과 좀먹은 모직 숄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가지고 다니지도 않을 그 가방을 웬만한 가방 값에 달하는 돈을 주고 끈을 수리했다.
애달프던 마음이 세월이 흐르며 변했는지 끈이 고쳐진 가방을 보니 짜증이 난다. 언니한테 준 것처럼 새것도 아니고 끈만 새것인 가방이 뭐가 좋다고, 그것도 고쳐서 고이 모셔두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의 가방은 장롱과 재활용 주머니를 오갔다.
내 서랍에는 낡았지만 따뜻한 엄마의 모직 숄이 들어 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엄마의 숄은 나의 어깨와 무릎 덮개가 되기도 하고 방석이 되기도 한다. 추울 때 나를 포근하게 감싸며 따뜻하게 해 주고, 엄마의 체온을 느끼게 해 준다. 문득 어깨에 둘렀던 숄의 냄새가 코에 들어왔다. 엄마 냄새와 함께 어릴 적 재미있고 행복했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귀했던 치즈 한 조각과 달걀 반숙을 얻어먹으려고 아양을 떨며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녔던 기억 그리고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하늘색 꽃무늬 원피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섭섭했던 마음이 뒤늦게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낡았지만 엄마의 삶이 묻어 있는 것을 주고 싶으셨나 보다. “낡은 숄과 악어 가방”에 묻어 있는 손때와 추억이 좋다. 그래서 나는 가끔 무릎을 덮었던 숄의 냄새를 맡아본다. 모직 숄의 까칠까칠한 질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엄마의 손을 잡는 듯한 편안함과 곁에 있는 것처럼 따뜻한 숨결이 맞닿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나는 성장한 아이들의 엄마임에도 여전히 엄마의 체취를 그리워하고 좋아한다. 그래서 다 낡았지만, 엄마 냄새가 나는 “낡은 모직 숄과 악어 가방”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