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특별하고 애틋하다. 그렇다고 피아노를 잘 친다거나 얽힌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동시에 가장 슬픔을 주기도 한 그냥 삶의 일부분 같은 느낌이다.
유치원 못 간 대신 옆에 다가와 붙어 있던 피아노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형제도 불평이나 이의 제기 못하고 나의 허락을 받아야 칠 수 있었다. 나의 깜찍한 횡포는 체력 보강을 빌미로 팔 굽혀펴기 기합을 주던 오빠도 어쩌지를 못했다. 숨겨 놓은 열쇠를 찾으려고 애는 쓰면서도 머리 한 번 쥐어박는 사람이 없었다.
덩치 큰 오빠들을 꼼짝 못 하게 하고 기합을 멈추게 한 쾌감을 가져다준 피아노다.
기둥뿌리가 뽑힌다는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르쳐 주시던 피아노를 아버지가 하늘로 되가져 가셨다. 단순히 피아노만 가져가신 것이 아니라 꿈도 희망도 가지고 가셨다. 스스로 포기가 아니라 빼앗겼기 때문에 슬픈 악기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아니고 한 옥타브를 칠 수 없는 짧은 손가락이다.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혼나게 하고 맘대로 놀게 하지도 못하게 했다. 연습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도 연습 안 하고 왔다고 선생님께 혼나지 않아도 된다.
보통은 집을 장만하면 인테리어나 살림을 장만하지만, 아이들 예능 교육을 핑계를 대면서 남편의 반대에도 치지도 않는 피아노부터 샀다.
얄밉게 인생을 바꿔 놓았지만 아버지가 데려간 것을 되찾아 온 것 같아서 흐뭇했다.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남편의 불평을 잠재웠다. 일요일 아침이 되면 가족이 피아노에 들러 서서 “즐거운 우리 집” 노래를 부르며 영화 속 장면을 상상하면서 스스로 만족을 했다. 악기로 한마음이 되는 화목한 가족은 이런 것이다. 피아노를 사기를 잘 했다. 아마도 아이들이 크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이 함께 늙어 가는 피아노다. 이사 다닐 때마다 옮기기 힘들고 자리를 차지한다고 구시렁거리는 남편과 피아노 관리를 안 해서 절대 음감은 날아가 버렸다고 투덜거리는 딸이다. 어느새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긴 세월 동안 무심하게 방치하고 끌고 다니기만 한 피아노에 젊음을 주기로 했다. 조율을 했다. 이마에 주름살 펴듯 음 하나하나를 조여주고 매만지면서 아직도 너에게 관심이 많노라고 속삭여 주었다.
물건도 사람처럼 가꿔 주고 관심을 가져 주니 젊어졌다. 물건은 새것이요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는데 사람 같은 느낌이다. 요즘 나오는 피아노 소리보다 더 맑고 깨끗한 소리다.
오랜만에 앉아 본다. 오래전 남편과 어린 딸들이 피아노에 둘러서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을 상상하며 ‘홈 스위트 홈’을 연주해 본다. 두세 번 쳐 보니 곡이 살아난다. 굴곡 많은 세월을 함께해 준 아이는 내치지 않아서 고맙다는 인사로 “내쉴 곳은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라는 노래를 정겹게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