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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정원 May 08. 2023

상처와 공감하기

 대부분의 사람은 상처 하나 정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지난 상처를 기억하고 가슴에 담고 산다는 것은 바위 돌을 가슴에 얹고 사는 것과 같기에 잊고 살려고 애쓴다. 어떤 사실을 잊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슬픈 일이지만 잊는다는 것이 어쩌면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커다란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수능 시험을 보기 위해서 학교로 들어가는 큰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지난 일이 머리를 스친다. 

 주말 부부로 집으로 오던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었다.  그 사고로 가족의 의미와 아이들의 진학 문제를 놓고 고민을 했다.  가족은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무리하게 고등학교 2학년 아이를 대전으로 전학을 시켰다. 교과 차이와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몹시 힘들어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부모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가족 사랑이라는 굴레 속에 밀어 희생을 강요하고 상처를 준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떠올라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힘든 시간을 잘 견디어 준 아이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대견하다는 생각과 함께 왕따를 당하거나 잘못되지 않을까 그동안 노심초사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던 생각들은 실타래처럼 엉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엄마의 사춘기를 아이도 그대로 겪게 만든 것 같은 미안함과 죄책감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수험생을 위한 미사 시간 내내 고장 난 브레이크처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주책없이 시험 보는 날 아침에 청승을 떨고 있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어려운 일이 닥칠 것이다. 단지 일찍 또는 늦게 오는지 차이일 뿐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어떤 어려운 상황이 생겨도 이 힘들었던 시기를 생각하면 아이가 잘 이겨 낼 것이라 애써 위안을 해 본다.


 고생을 모르고 편안하게 살았던 나의 학창시절은 천식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돌아가셨다는 슬픔 보다도 어쩌면 아버지 부재로 인해 변화될 삶이 더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힘들었던 시간에 가족은 서로 보듬고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시간으로 각자의 아픔을 감당하기에도 어려웠다.

 누구에게도 이해나 위로받지 못하고 도리어 배려심이 없는 선생님의 행동으로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에서 하루 아침에 불쌍한 아이로 학교에 알려지고 말았다. 별 것 아닐 수도 있었지만 잘난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았다. 지나간 힘들었던 시간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문득 떠 올랐다. 유쾌한 추억이 아니어서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텅 비지는 썰렁한 느낌이 들며 우울해졌다.  재미있었던 추억이 많았기에 슬픈 생각은 애써 하지 않으며 잊고 살았다.


                                                                                                                               @픽사베이

 모든 일을 기억하고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며 글이나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이미 마음 정리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어처구니없게도 사춘기 소녀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처음으로 자기 연민에 빠져버렸다. 그 당시에는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린 사춘기 소녀가 받은 상처와 감당하기 힘들었을 변화된 환경과 일들이 가엾고 불쌍해서 가슴이 저리다.


 힘들었던 시기를 통해서 사람 인심을 보았고 자립심을 키웠으며 역지사지의 생각도 하게 되었다. 형태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닥치는 여러 유형의 시련은 극복하는 자세에 따라서 좌절하기도 하고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시련의 순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다면 버려지는 시간이 되지만 극복을 잘한다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어려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힘든 때가 지나면 즐거울 때가 오고 즐거운 때가 있으면 힘들 때가 오기도 한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언제 어떤 변수의 일들이 생길지도 모르고 소중한 것일수록 치러야 하는 대가는 크다. 나는 살아온 시간에 대한 후회가 되거나 확신이 없을 때는 두 손으로 자신을 꼭 안아주며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사랑의 말을 속삭여 준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어. 그 정도면 성실하게 잘 살았단다. 고맙고 애썼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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