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우면산을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산에 오르기 좋은 시기에는 주변 산책만 하다가 날씨가 더워져서 오르기 힘들어지면 오를 일이 많아진다. 새벽까지 내린 비로 나무 냄새가 싱그럽고 땅이 제법 축축한 것이 걷기가 좋다. 산은 짙은 초록색으로 물들고 이름 모르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남산 높이보다 낮아서 초보도 가볍게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산이 가파른 편이라 올라가기는 더 힘들고 높게 느껴졌다.
우면산 산사태 이후로 복원된 층계는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등산객을 반기는 층계로 가는 길 양쪽 옆에는 간간이 잘려 쌓여있는 통나무들이 있다.
산을 오르다가 문득 캐나다에 있는 캐필라노 협곡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캐필라노 협곡"은 캐나다 밴쿠버 북쪽에 아름드리 나무와 키 큰 나무로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아침부터 흐렸던 날씨는 캐필라노 협곡에 들어서자 부슬부슬 비로 바뀌어 옷을 적셨지만, 촉촉해진 나무가 뿜어내는 진한 자연의 향기에 금세 흠뻑 취했다. 게다가 숲속으로 들어가니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키가 큰 나무숲은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우산이 되어주었다.
숲 여기저기 폭우와 거센 바람에 쓰러져 있는 나무들은 이끼가 잔뜩 끼어있어 그대로 방치된 것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캐나다는 숲이 광범위해서 일일이 치울 수도 없거니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의 순리에 맡긴다고 한다. 하물며 도로 옆을 따라서 길게 늘어선 나무숲도 우리나라 산림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울창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엔 우리나라 산은 벌거숭이 민둥산이 많았다. 그래서 수업 중에 선생님은 외국의 예를 들어가며 산림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고 나무를 많이 심어서 우리도 푸른 산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식목일에는 나무를 심으러 가기도 하고 여름이 되면 창경궁으로 송충이를 잡으러 가기도 했다. 깡통을 한 손에 들고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징그러운 송충이를 잡았다.
지금은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벌거숭이 민둥산을 보기 힘들다. 여름에는 짙은 녹색으로 뒤덮었다가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이며 산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렇게 멋진 산은 많은 사람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대가이고 세월이 가져온 결과다
요즘 점점 미세 먼지와 황사로 오염된 날씨가 많아진다. 환기를 시키거나 외출 시에는 공기의 질이 어떤지 미세 먼지 여부를 확인한다.
마스크를 껴야 하는 날이 많아진 우리는 울창해진 숲에 감사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숲도 잘 가꿔서 우거진 아름드리 나무가 우산이 되어 주고, 수명을 다한 이끼 낀 나무도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었으면 좋겠다. 숲이 뿜어내는 맑고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힘든 줄 모르고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아름드리 나무가 우산이 되어주진 못해도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산이 가까이 있어 언제든지 오를 수 있으니 참 좋다. 언젠가는 이곳도 캐필라노 협곡의 숲처럼 아름드리 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빼곡이 자리잡게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