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살자. 창의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면 대부분 망친다.
딸아이가 웬일인지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한다. 오랜만에 먹고 싶다는데 맛있게 끓여 주고 싶었다. 멸치와 다시마를 우린 물에 된장을 풀고 감자와 양파를 썰어 넣은 후 청양고추 하나를 큼직하게 잘라 넣었다. 마지막으로 두부를 넣었다. 이만하면 괜찮은 맛이다.
엄마 손맛이 최고라는 딸의 칭찬이 받고 싶었는지 아니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고 싶었는지 맛을 2% 더하기로 했다. 콩가루를 듬뿍 넣고 그것도 부족한 것 같아 먹을 때 들깻가루까지 넣었다. 최상의 맛을 상상하며 한 숟가락 떠먹어 보았다. 된장찌개는 텁텁하고 이상하게 구수한 맛이 나지 않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맛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이상한 맛이다.
"엄마는 새로운 걸 하면 꼭 그러더라, 그러니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힘을 북돋아 주던 아이들의 실망에 찬 소리다.
덥다고 찬 음식만 먹을 수 없고 가만있어도 땀이 나는데 불 앞에서 음식은 하기도 싫다. 망설이다 우족을 끓이기로 했다. 하루만 고생하면 더운 날 기력 보충을 할 수 있다. 얼마나 먹겠다고 더운데 나가서 사 먹지 궁상이냐고 한다. 오래 끓이면 "인"이 나와서 칼슘이 빠져나간다는데 사 먹는 것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매번 사 먹을 수는 없다. 가족을 위해서 이 정도 고생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루만 힘들면 여름내 지퍼 백에 얼려 놓고 하나씩 꺼내서 먹으면 간편하게 보신할 수 있다. 시원한 날을 골라서, 나눠 먹을 것이니까 더 맛있게 끓여야겠다.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서 월계수 잎만 넣고 끓였었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통후추도 넣었다. 그것도 듬뿍. 아무리 끓여도 국물이 보얗게 우러나지 않는다. 뽀얗기는커녕 검은빛이 돈다.
우족을 잘못 고른 것 같다. 잘하려고 신경을 쓰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실망만 준다. 이상한 색깔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생각해 보니 후추의 검은색이 우러난 것 같다. 원인을 알고 나니 안심이 된다. 매콤한 맛이 나는 검은빛 우족탕은 난생처음 먹어 본다.
며칠째 뒤늦은 장마에 장대비가 온다. 비 오는 날은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는데 덥지만 인심 쓰듯 김치전을 부쳤다. 오랜만에 먹는데 기왕이면 색다른 김치전을 맛 보여야겠다. 문득 아이들 말이 생각났지만 실패하면 어때 다시 만들면 되지. 긍정적 사고에 스스로 기특한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냉장고를 살펴보니 아로니아 가루가 눈에 띈다. 아로니아에는 항산화 물질이 있어 눈에 좋다는데 이번 기회에 많이 먹으려고 쏟아부었다. 반죽이 예쁜 보랏빛이다.
그런데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잠시 방에 갔다 온 사이에 까맣게 탔다. 아깝지만 버리고 다시 지켜 서서 금세 뒤집었는데 또 탔다. 불도 약한데 이상하다. 생각해 보니 아로니아 보랏빛 가루 때문에 타지 않아도 탄 것 같고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시간 조절을 할 수가 없다. 색상으로 익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이번에는 시간을 짧게 했더니 덜 익었는지 약간 밀가루 냄새가 나는 듯하다.
조금 떼어먹어 보니 김치 신맛과는 다른 새콤한 맛이 특이하다. 실망한 남편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그런데 남편이 만족한 얼굴로 맛있다고 한다. 무안해할까 봐 위안을 주려고 하는 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평소에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는 사람인지라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 여부를 떠나 맛있다고 먹어 주는 남편이 고맙다.
유명한 음식 대가들은 음식의 특성을 생각하면서 비법을 만들어 낸다. 나도 비법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지만 매번 빗나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성공한다는데 요리로 성공하기는 틀린 것 같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원인을 파악했으니 조만간 성공하지 않으려나? 위안을 해보지만 엉뚱한 창의력으로 아까운 재료만 버리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있는 대로 살자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