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타악기 북의 일종인 드럼은 연주에 꼭 있어야 하는 악기는 아니지만, 박자를 맞춰 주며 연주의 격을 한층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양손으로 쿵쿵 울리며 북을 치고 가끔 심벌즈도 한 번씩 쨍 울려주며,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발을 밟아주면 저음의 드럼 소리가 웅장하게 퍼져 나가며 시선을 끈다. 연주자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드럼 치는 움직임에 온몸이 흔들거리면 마치 박자에 맞춰서 춤을 추는 것 같다. 보고 있기만 해도 저절로 흥이 나고 어깨가 들썩여진다. 복잡한 머릿속이 북의 쿵쿵거리는 소리와 심벌즈가 갑자기 쨍하는 소리를 내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다.
흥이 많아서인지, 때리는 본능이 잠재해 있어선지 타악기를 치면 신나고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 좋다. 그래서 난타와 드럼 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나도 꼭 드럼을 쳐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며칠 전 딸이 느닷없이 "엄마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라고 묻는 소리에 순간 당황했다. 갑자기 세 가지 소원을 말해 보라는 천사의 질문처럼 들렸다. 상상 속 질문이 현실이 되어 물어본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순간 망설여졌다. 그러나 천사의 질문이 아니라 신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치는 말로 ‘드럼 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몇 년간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희망 사항이 갑자기 실현될 줄은 몰랐다.
드럼 체험을 예약해놨다고 아빠와 둘이 다녀오라고 한다. 어차피 예약했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치면 되는데 생각과 달리 입에서는 “뭐 하려고 했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딸의 주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헤아려 주지 않고, 하고 싶다고 해서 해 주면 꼭 한 번씩 튕긴다고 핀잔을 준다.
드럼에 관심이 없는 남편 대신 딸과 드럼 체험을 갔다. 드럼 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한쪽 벽면에 늘어선 방음 연주실 조명이 노래방 같다. 붉은색 조명과 방음 된 작은 연주실에 드럼 세트와 전자 피아노가 놓여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설렌다.
드럼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잘 할 수 있을지 어린애처럼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크기가 클수록 낮은 소리, 작을수록 높은 소리가 나는, 크기와 깊이가 다른 탐이라고 부르는 북이 4개가 있고 크기가 다른 심벌즈 3개가 있다. 중앙에는 베이스 드럼 역할을 하는 울림통 중에서 가장 크고 낮은 음고를 내는, 페달을 이용해 발로 밟아 연주하는 킥 드럼(kick drum)이 있다. 마음대로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제대로 배워서 쳐야 한다고 스틱 잡는 방법부터 가르쳐 준다.
손과 발을 이용해서 북과 심벌즈 치는 순서와 리듬을 익혀야 한다. 드디어 실전이 시작됐다. “쿵,찌,따,찌” 4박자 리듬에 맞춰서 기본 연습을 했다. 왼손부터 치는 “쿵”은 오른손이 자꾸 먼저 나가고 “따”에서 손과 발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한쪽씩 잊어버린다. 한 몸에 붙어 있으면서도 서로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높낮이가 다른 북을 치고 심벌즈를 오른쪽으로 쨍쨍 소리를 내며 돌아가면서 치니 조금씩 그럴듯해진다.
전인권 님의 "걱정하지 말아요, 그대" 음악에 맞춰서 연습한 리듬으로 드럼을 쳤다. 머리와 손과 발이 따로 놀고 잘 맞지를 않는다. 귀는 음악을 듣고, 입은 열심히 “쿵,찌,따,찌” 소리를 내며 박자를 맞춰 본다. 무슨 일인지 잘한다는 소리만 들으면 순간 박자를 놓치고 만다. 예전에는 딸에게 잘한다고 칭찬을 해 주기만 하면 실수를 해서 핀잔을 주었는데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딸은 엄마 잘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엄마보다 나은 딸이다.
스트레스 풀려다 도리어 각자 노는 손발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다. 한 번에 마스터할 정도로 쉽다면 누구인들 못 할까 위안을 한다. “쿵,찌,따,찌”를 되뇐다. 문득, 있는 듯 없는 듯 연주의 격을 높여주는 드럼처럼, 격조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