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 인생의 맛이 달라진다.
직장인들의 로망이라고 하는 맥모닝!
대천으로 강의를 가는 길 아침에 맥모닝을 사먹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기중엔 이른 출근, 방학중엔 늦잠으로 이어지는 내 삶에 10시 반 전에만 먹을 수 있는 맥모닝은 일종의 작은 사치다.
텀블러를 준비해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모닝커피를 1/4만 남기고 옮겨담는다. 과천에서 지하철 타고, 용산역까지 기차타러 뛰어갈 때, 딱 넘치지 않는 적정분량이다.
눈앞에서 서울가는 지하철을 기분좋게 놓치고 종이 용기에 담긴 맥모닝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솔직히 커피를 전문으로 한다는 스타벅스 커피보다 맛있다. 카라멜 맛과 향긋한 향기가 도는 적당히 연한 커피맛이 기분좋다.
기차는 절대 놓치면 안된다. 출발 몇 분 전 간신히 기차에 올라 숨을 고르고, 한강을 기차로 건너며 한눈에 보이는 여의도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영등포와 신도림의 빌딩들을 바라보다 드디어 맥머핀을 꺼내 한 입 베어문다.
드디어 커피가 등장할 시간이다. 이 낭만적이고 멋진 아침식사에 뜨거운 커피가 빠질 수 없다.
아까 텀블러에 담아놨던 커피를 한모금 마시는데
어라?
이 맛이 아니다.
쓰다.
그것도 쓴맛이 길게 이어지며 기분나쁘게 지속된다.
합성세제와 화학약품을 맛보는 듯한 미묘함이 올라온다.
중국에서 제조되었고, 나의 게으름으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텀블러, 스테인레스 병맛이다.
종이맛이 훨씬 나았다.
맛을 좌우하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음식이 입을 통과하기 직전에 닿는 '도구'들의 맛이 있다.
심지어 와인도 와인테스팅 말고 '와인잔 테스팅'이 있다고 한다. 일회용 테이크아웃잔에 담긴 커피맛과 두툼한 머그컵에 담겨나오는 커피맛은 같은 커피라고 할지라도 정말로 다르다.
결혼식과 상가집에는 흔히 맥주와 함께 종이컵이 놓여있다. 종이컵에 맥주를 붓는 순간 기포가 과다하게 일어나면서 맥주의 청량함의 절반은 이미 사라진다. 거품이 꺼지고 난 후 양도 터무니 없이 작아져 한 번 놀라고, 그 미적지근한 온도에 한 번 더 놀란다. (내가 항상 냉동실에 항상 얼음잔을 준비해놓는 이유이다.) 이럴땐 차라리 눈치를 슬쩍 봐서 병을 직접 들고 병맛을 보는게 낫다.
가끔 정말로 종이맛을 볼 때도 있다. 샌드위치가 반으로 커팅된 부분을 씹다가 딸려오는 이질감에 질겅질겅 씹어 국물을 빨아낸 종이를 뱉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종이는 먹어도 몸에 그렇게 해롭지는 않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삼켜지지는 않는다.
종이맛과 병맛,
그 선택의 순간 인생 맛이 달라진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본체를 어떤 그릇에 담고 있는걸까..어떤 순간에는 본질보다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 중요하다. 과대포장도 이래서 나온다.
종이맛도 병맛도 아닌
좋은맛을 내는 그릇에 나를 오롯이 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