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탐정 면접. 문을 열자 누군가의 머리가 굴러왔다. (고전 연극 풍)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다. 미니 쿠퍼는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외곽으로 빠져나왔다. 땅거미 진 도로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김민아가 조수석으로 눈을 돌렸다. 시트 사이로는 중단발의 펌이 삐져나와 살랑거리고 있었다. 또 다른 면접자였다. 새하얀 피부와 부드러워 보이는 살결은 가만히 보고 있자면 중성적이고도 경건한 분위기 속으로 사람을 끌어당겼다. 마치 어느 교회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속 천사처럼.
“아는 사이신가요?”
운전석에 앉은 면접관이 백미러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놀란 김민아는 횡설수설했다.
“아, 아뇨. 이 주변은 처음이라서요. 주변을 좀 둘러보고 있었어요. 면접관님이 면접 장소까지 태워다 준다는 얘기도 처음 들어보고….”
“하하.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걱정이 될 만도 하죠. 그래도 크게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전에 고지했듯 면접장으로 가는 것뿐이니까요. 뭐, 우리 사무소에 지원하실 정도면 이상한 곳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계실 테지만.”
면접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민아가 지원한 곳은 설립된 지 6년이 조금 넘은 탐정 사무소로, 동종 업계에선 나름 유망한 축에 속했다. 독특한 점을 꼽자면 뿌리에서부터 ‘구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었다는 것. 그 때문인지 평 또한 대체로 좋았다. 가뭄에 콩 나듯 악담을 퍼붓는 의뢰인들도 있었다지만 말이다.
“정 걱정이 되신다면 지금 차량을 돌려도 상관없습니다. 다른 면접자 분께선 오히려 좋아하실 것 같은데.”
김민아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니에요. 볼게요. 면접.”
“좋습니다. 지금 시간이… 저녁 7시 13분. 아직 좀 남았군요. 도착할 때까지 잠시 시간이나 때우도록 할까요.”
면접관이 차량의 전자시계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미니쿠퍼는 샛길로 빠져 으슥한 산길을 비집고 들었다.
“김민아 씨. 우리 탐정 사무소에선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면접의 시작인 것일까. 김민아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즉답했다.
“난해한 사건의 해결과 신원 미상의 협박범 추적 등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 살인사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귀사가 구원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만큼 피해자들의 사정을 면밀히 헤아리려 한다는 것도 말이에요.”
“잘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요. 간혹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하는 분들이 계셔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가벼운 마음이요?”
김민아가 되묻자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탐정이란 흥미로운 사건만 해결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입니다. 그 끝엔 막대한 부와 명예가 준비돼 있을 것이라 여기면서요. 그런 부류는 사건의 진상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금세 지치곤 하죠. 범인의 악랄함이나 피해자의 비통함 같은. 탐정이 맞닥뜨려야 하는 잔혹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예요. 얼마안가 떠나는 일도 빈번합니다.”
“잔혹한 현실… 이군요.”
김민아가 작게 되뇄다. 면접관은 짧게 콧김을 내쉬며 물었다.
“그렇다면 김민아 씨.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일을 오래 붙잡고 있을지 예상이 되십니까.”
“…글쎄요.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닐까요. 상처를 입어도 금세 회복하는 사람들처럼.”
김민아가 잠깐 고민하곤 답했다. 면접관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따진다면 반대일 겁니다. 잔혹한 현실에 일찍이 무너져버린, 이내는 진심으로 웃는 법조차 잊은 사람들. 가식으로 일궈낸 표정 속에 울분을 숨겨둔 사람들이죠. 그러면서도 남들은 자기처럼 아파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류요. 오지랖이 넓다고나 할까요. 물론 그들의 의지가 진정 정의를 표방하고 있는지, 정의를 명목으로 혐오를 배출하려 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탐정 일을 그만두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부류란 뜻입니다. 아, 구태여 말씀을 드리자면…”
면접관이 뜸을 들이곤 말을 이었다.
“저는 후자입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나, 그나마 의지하던 은사님께서도 범죄자에게 큰 화를 입으셨죠.”
후자라면 오지랖이 넓은 부류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혐오를 배출하려는 이들을 말하는 걸까. 다소 무거워진 주제에 김민아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몰랐다. 면접관은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김민아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김민아 씨께서는 그런 과거가 없는 것 같군요.”
“…저는 없습니다.”
“없는 게 좋은 겁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줄었으면 하는 마음에 탐정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그건 그렇고, 이거 너무 저희끼리만 떠든 게 아닐까 모르겠네요. 미안합니다. 최시온 씨.”
“괜찮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최시온이 담담하게 답했다. 외모와 어우러지는 진중한 느낌의 미성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성함이 독특하시군요. 시온, 시온. 이름을 듣고 있으면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라요. 시온에서 구원이 임하네. 혹시 모태신앙이신가요?”
“아뇨, 무교입니다.”
얘기를 들은 면접관이 입술 끝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공통점이 있었군요. 저도 신을 믿지 않는…. 미안합니다. 돌부리가 있었나 보네요.”
차체가 한번 크게 튕겨 올랐다. 면접관의 말 때문인지 백미러 아래로 길게 늘어진 묵주가 유독 강하게 흔들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면접관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얘기를 계속했다.
“아무튼 최시온 씨. 제가 기억하기로는 스물일곱 살인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취업을 하신 적은 없으시고요.”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따로 목표가 있어 취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목표라, 그래요. 이력서엔 분명 그렇게 적으셨죠. 그렇담 목표는 이제 접으신 상태입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범죄로 가족을 떠나보내신 적은?”
“저를 업어 키운 누나가 한 명 있었습니다. 열여덟 살 때 떠나보냈죠.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어렸을 적 여의었고, 동거를 하던 여자 친구와도 헤어져 지금은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그것 참 서글픈 일이군요. 허나 안 좋은 의도를 가지고 여쭙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그냥 말씀을 드린 것뿐이니.”
면접관이 수긍한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아는 자신들의 과거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두 사람에게 내심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좋습니다. 최시온 씨. 그럼 노파심에 하나만 더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편하신 대로 해주십시오. 아시다시피 저는 오늘 면접자로 이곳에 왔으니까요.”
어느덧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던 미니쿠퍼가 멈추었다. 두 갈래 길이었다. 정면엔 왼쪽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꽂혀 있었다.
“안타까운 과거가 있는 분들이 탐정 일을 오래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완벽한 건 아니죠.”
면접관은 안전벨트를 풀며 실내등을 켰다. 얼핏 보이는 최시온의 양 손바닥에는 붙이면 한 줄이 될 듯, 일자로 반듯하게 가로지르는 짙은 갈색의 봉합 수술 자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면접관은 최시온의 손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같은 부류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겠죠. 평소엔 평온해 보여도 범죄자만 마주쳤다하면 감정이 요동을 치거든요. 트라우마라고 하는 지긋지긋한 녀석 때문이죠. 시간이 흘러도 옅어질 줄 모르는 그 끔찍한 기억 말입니다. 이런 사정은 신출내기나 베테랑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제가 여쭙고자 하는 건 그것입니다. 최시온 씨께선 과연 범인을 앞에 두고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 혹여 혐오에 찌들어 범죄자에게 분풀이라도 하길 바라고 있는 건 아닙니까.”
무게를 잡아가며 나온 면접관의 발언. 그것은 비정상적이라고 여길 수 있을 만큼 극단적이었다. 세상에 분풀이나 하자고 탐정이 되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설령 맞다 한들 솔직하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있을까. 허나, 이어진 면접관의 이야기는 김민아에게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우스운 얘기지만 한 때 제가 그랬기에 여쭙는 겁니다. 치졸한 범죄,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들, 배출구를 찾지 못해 쌓여만 가는 혐오감. 이윽고 제 동력은 선량한 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보다 혐오감의 해소를 우선시하고 있었죠. 혐오에 눈이 멀어 낌새가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완력으로 찍어 누른 겁니다. 당연 그런 사고방식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크나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거든요. 계획범죄에 놀아나 피해자를 범인으로 몰고 말았죠. 피해자는… 피해자는 끝내 자살했습니다.”
면접관이 오른손을 펼쳐 목을 긁었다. 목에는 자잘한 손톱자국들이 그어져 있었다.
“목에 총을 겨눴어요. 죽기 전에 제게 그러더군요. 유순하게 살라고. 사건의 진상은 밝혀냈지만 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 사건을 잊지 못할 겁니다. 방금 제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 했던 걸 기억하십니까? 그럼에도 묵주를 걸고 다니는 건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면접관이 오른손을 옮겨 백미러에 걸린 묵주를 톡하고 건드렸다.
“사람은 항상 옳을 수 없거든요. 그게 누구든.”
얘기를 들은 최시온은 답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만?”
“다만 확실한 건 저는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경찰 수사에는 제약이 있지만 탐정은 비교적 덜하니까요. 특히나 심증만 있는 경우에는.”
“조사에 빠르게 돌입할 수 있어서라는 말씀이시군요.”
“저, 저도 그래요.”
듣고 있던 김민아가 끼어들었다.
“사연은 없다지만 마음만큼은 다른 면접자 분과 같아요. 저도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그러시군요. 두 분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뿐인 사람은 어디에나 있죠. 우리에겐 각오와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안타까운 과거사만을 지닌 분들도, 구원이란 슬로건에 맞춰 ‘남들을 돕고 싶다.’란 형식적인 지원동기를 적어 내신 분들도 아닌, 각오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면접관이 말하며 뒷좌석을 흘겨봤다. 김민아는 떨림 없는 눈으로 면접관을 응수했다.
“저는 진심이에요.”
“좋은 표정이군요. 어디 볼까요. 지금 시간이… 오후 7시 20분. 마침 시간도 적당히 지났겠다. 잡담은 이만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면접을 시작할 테니 모두 내려주십시오.”
면접관이 차량의 시동을 껐다. 그리곤 외투의 안주머니에서 보드마카 만한 손전등을 꺼내 김민아와 최시온에게 나누어주었다. 세 사람은 손전등으로 지면을 밝히며 차량에서 내렸다. 면접관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차분히 걸어 올랐다. 왼쪽으로 난 오르막길이었다.
“오늘로 딱 6년 전의 일입니다. 열대야가 시작될 무렵이었죠.”
면접관이 화제를 돌렸다. 두 사람은 그의 얘기를 경청하며 뒤를 따랐다.
“저는 20대 여성으로부터 사건 의뢰를 하나 받았습니다. 내용 자체는 간단했습니다. 동거 중인 남자친구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사람을 찾아달라는 것이었어요.”
“협박 편지 말씀이신가요?”
김민아가 물었다.
“맞아요, 협박 편지. ‘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연극을 할 자격이 없어.’ ‘마리 앙투아네트는 모함에 죽은 거야. 진실을 말해.’ 당시 남자친구의 직업은 인형사로, 쉽게 말해 꼭두각시 인형극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의뢰 당시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명을 벗었다는 가정으로 인형극을 진행하고 있었죠. 남자친구는 의뢰인을 안심시키려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애인을 극진히 아끼던 의뢰인은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고증을 따지고 드는 역사성애자의 불만이라 여겼기 때문인지 경찰 측에선 수사가 늦어졌어요. 이따금 역사를 소재로 하면 비난이 있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참다못한 의뢰인께서 결국 저를 찾아왔던 거였습니다.”
“역사성애자. 그래서 편지 내용이 그랬던 거군요.”
김민아가 호응했다. 듣고 있던 최시온은 물었다.
“범인은 금방 잡았나요. 그 역사성애자 말이에요.”
“생각보다 쉽게 잡았습니다. 범인도 바로 시인했어요.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된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면접관이 돌연 걸음을 멈추곤 뒤돌아섰다. 큰 키 때문에 가슴 위로는 빛이 닿질 않았다. 표정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목소리가 낮아졌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회식을 마친 남자친구가 날밤이 지나도록 연락이 닿질 않는 겁니다. 다 큰 어른이 하루 쯤 연락 안 되는 게 무슨 문제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다음 날 새벽 2시, 노크 소리와 함께 그녀의 집 앞에 놓인 편지 한 통으로 인해 상황은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편지 속엔 ‘마리 앙투아네트를 모함한 자에게 죽음을.’이란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이 동봉되어 있었어요.”
면접관이 왼 손바닥을 눕혀 그 위로 오른손 날이 닿게 했다.
“단두대 사진이었습니다. 어둑한 방에 덩그러니 놓인 단두대. 거기에 묶인 남자친구가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죠. 겁에 질려 창백해 진 얼굴로 말입니다.”
김민아가 침을 삼켰다.
“경찰 측에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곧장 범인을 잡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전날까지만 해도 곧잘 말하던 범인이 돌연 입을 닫아버렸죠. 오열하는 의뢰인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질 않았어요. 그랬던 범인이 입을 연 것은 편지가 도착하고 2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면접관이 오른손을 옮겨 우측을 가리켰다. 어느새 그들 앞에는 쇠로된 원통형의 문고리가 나타나 있었다. 두 사람이 문고리를 비추자 면접관은 자신의 손전등을 껐다.
“도심지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컨테이너 무덤이 있더랍니다. 거기에 남자친구를 붙잡아 놓았다 했죠. 워낙에 외진 곳이었던 지라 그곳의 지리를 아는 사람이라곤 그 근방에 사무소를 차린 저뿐이었습니다. 저는 경찰의 요청에 응해 길을 앞장섰어요. 일행 중에는 의뢰인과 범인도 있었죠. 범인이 의뢰인과 자신을 데려가야만 정확한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경사진 길을 뛰어오른 우리는 머지않아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범인이 말했던 컨테이너를 발견했을 땐 이번 사건도 일단락은 지었구나하고 안도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범인이 의뢰인에게 무어라 속삭이자 의뢰인이 울음을 터뜨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거든요.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린 순간, 우리를 맞이한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면접관이 문고리를 돌리며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연달아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진동했다. 어둑한 입구에선 축구공만한 크기의 동그란 물체가 작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김민아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남자친구의 머리였습니다.”
면접관은 허리를 숙여 남자친구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그가 머리에 대고 손가락을 튕기자 흰색의 중단발 가발과 함께 새빨간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건 마네킹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안의 상황은 당시 제가 맞닥뜨린 상황을 적절히 각색해 놓은 것이기도 하죠.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 사무소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면 이런 상황을 많이 접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무차별적인 살인보단 의미를 가진 살인을 다루는 곳이니까요. 그러니 마지막으로 여쭈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민아 씨. 그리고 최시온 씨.”
면접관이 한 명씩 눈을 마주쳤다.
“두 분께서는 아직도 우리 탐정 사무소에 들어올 마음이 있습니까?”
김민아와 최시온은 문턱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소름이 끼치는 잔악함과 어깨를 짓누르는 위압감이었다. 면접관이 말한 잔혹한 현실이란 이런 걸 뜻하는 거였을 터, 한동안 입을 떼지 못하던 김민아는 긴 침묵을 삼키고서야 입을 뗄 수 있었다.
“…할게요.”
최시온은 김민아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오시죠.”
면접관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들이며 벽면에 붙은 스위치를 눌렀다. 원반형 깡통을 두른 소형 백열등 하나가 어슴푸레하게 빛을 밝혔다. 백열등 아래로는 단두대가 놓여 있었다. 그 주변으론 구경꾼 마네킹들이 문 앞까지 일직선의 길을 터놓은 채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마치 광란의 도가니처럼. 순간 김민아의 머릿속에선 단 한 명의 인물이 스치고 지났다.
‘마리 앙투아네트.’
흰색의 중단발과, 추레한 드레스를 입은 채 목이 잘려나간 사형수. 그리고 열광하는 구경꾼들. 이 광경을 본 인물이라면 필시 마리 앙투아네트를 떠올릴 터였다.
“편지 도착 이후 남자친구를 발견하기까지는 약 3시간이 걸렸습니다. 현장에서 공범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죠. 다시 말해, 단두대는 ‘사람’이 아닌 ‘무언가’에 의해 작동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겁니다. 면접자님께서는 이번 면접에서 두 가지를 알아내시면 되는 겁니다. 단두대를 작동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범인은 어째서 이런 트릭을 만들어냈는가.”
면접관이 뒷주머니에서 면 장갑을 꺼내 두 사람에게 건넸다. 그리곤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 오후 8시인가요. 두 분께서 의논을 하셔도 상관없으니 답을 알아내시면 됩니다. 이상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면접관은 가장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방거리는 소리와 함께 핏물 위로 인 하얀 포말이 그의 발자취를 따랐다. 김민아는 장갑을 끼며 최시온에게 물었다.
“조사는 어떻게 할까요.”
“따로 하도록 하죠. 그게 효율적일 테니.”
“알겠어요. 뭐라도 찾으면 서로 부르도록 해요.”
두 사람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제한시간은 30분. 최시온은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며 단두대를 향해 곧장 걸어갔다. 반대로 김민아는 출입문 손잡이를 비추었다. 그녀는 힘겹게 열린 문고리와 연달아 난 부자연스러운 굉음이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이건….’
예상대로 손잡이에는 밧줄이 헐렁하게 두어 바퀴 감겨 있었다. 기다란 밧줄 하나가 손잡이를 경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쪽 끝은 천장으로 올라가 있었고, 반대쪽 끝은 바닥으로 내려가 있었다. 양끝 모두 뻗어있는 방향은 동일했다. 단두대 정면이었다.
김민아는 밧줄의 궤적을 따라 빛을 옮겼다. 빛은 구경꾼 마네킹들이 터놓은 외길을 지나 단두대 코앞에서 멈추었다. 어설프게 똬리를 튼 아래쪽 밧줄 끝이 바닥에 고인 액체 위에 놓여 있었다. 피로만 이루어졌다 생각하기엔 묽은 색감과 질감이었다. 그 주변으로는 잘려나간 마네킹의 손과 열 개의 꼭두각시, 짧은 매듭실들이 되는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 고인 액체는 출입구를 향할수록 양이 많았다.
김민아는 쪼그려 앉아 마네킹의 손을 들어봤다. 하얀 매듭실이 마구잡이로 달라붙어 있었다. 그 중 옆으로 삐져나온 실 한 가닥을 당겨보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매듭실이 뛰어올랐다. 그리곤 끊어졌다. 꼭두각시 위로도 실오라기가 걸쳐있는 걸로 봐선, 마네킹의 손과 꼭두각시가 매듭실로 연결되어 있던 듯 했다.
‘길이는 대개 두 뼘 내외야. 단두대와는 별 관련 없어 보이는데…. 어째서 이런 걸 가져다 둔 거지.’
의문이 든 김민아가 마네킹의 손을 뒤집어 보았다. 양손바닥엔 젓가락처럼 곧게 뻗친 자국이 파여 있었다. 기시감이 드는 가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상한 건 아니었다. 손에 실을 달고 사는 인형사에겐 썩 어울릴 법한 흉터였으니.
다음으론 꼭두각시들을 살폈다. 몇 몇은 개별로 떨어져 관절이 괴기하게 꺾여 있었고, 또 몇 몇은 좌우로 양팔을 벌린 채 손을 맞잡고 있었다. 김민아는 그 중 하나를 집어 앞뒤로 뒤집어 보았다. 목 부분의 휠을 따라 우는 얼굴이 회전했다. 께름칙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 외에 별다른 기능은 없었다.
‘의미를 가진 살인이라면… 상징성 때문에 가져다 둔 걸까. 널브러진 꼭두각시들은 인형사의 인생이 막을 내렸다는 걸 알려주는 거지. 그렇다면 이 밧줄은….’
김민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내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구경꾼 마네킹 사이를 비집어 실내의 가장자리를 둘러보았다. 이따금 손전등이 면접관의 다리를 비출 때면 그는 말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김민아는 면접관을 무시한 채 탐색을 계속했다. 간혹 바닥에선 쓰러진 마네킹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위치는 모두 단두대 뒤편이었다.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본 김민아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단두대 앞에선 두 개의 손전등 빛이 포개졌다. 먼저 조사를 마친 최시온은 그녀가 걸어온 방향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 뭐가 있나요?”
김민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있는 것이라곤 구경꾼 마네킹이 전부였다.
“…아뇨, 잠깐 다른 생각 중이었어요. 그것보다 뭔가 발견하신 모양이네요.”
김민아는 놀라하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아셨나요?”
“표정이 달라졌거든요. 특히 눈매가.”
“눈매요?”
“안 그래도 진한 인상이 더 또렷해졌어요.”
“칭찬인가요? 아무튼 무언가를 찾은 건 맞아요. 아직 일부분이겠지만.”
“저도 그래요. 단두대 칼날에 긴 밧줄 하나가 걸려 있더라고요.”
최시온이 말하며 단두대를 가리켰다. 그의 말처럼, 칼날의 나무블록과 연결된 기다란 밧줄 하나가 단두대의 윗동을 걸쳐 출입문을 향해 뻗어 있었다. 줄의 그림자를 따라가면 김민아가 확인했던 문고리를 지나 단두대 코앞, 즉, 둘이 멈춰선 자리에 도착했다. 그가 말한 긴 밧줄이란 문고리를 감고 있던 밧줄의 위쪽 끝이었다.
불현듯 김민아의 머릿속에선 악랄하기 그지없는 범인의 초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껏 그녀가 만나온 음습하고 역한 이들의 집합체였다. 마치 악마와도 같은. 최시온은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김민아 씨.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단두대를 작동시킨 건 의뢰인이 아니었을까요.”
“의뢰인이요?”
“문을 열었을 때 굉음이 들렸잖아요. 칼날과 연결된 밧줄이 문고리에 감겨 있었고요. 문이 한 번에 열리지 않은 걸 보면…”
“어딘가에 밧줄 한 쪽을 고정해 놓고 있었다는 거군요. 문이 열리면 단두대가 작동하도록.”
“가령 피해자의 입에 밧줄을 물렸다거나, 손에 쥐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안 될 게 있나요.”
“그건 불가능한 얘기인걸요. 문을 연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한 거겠죠.”
“유도라고요?”
최시온이 반문했다. 김민아는 손전등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밧줄을 비추었다. 팽팽하게 당긴다면 단두대 정도는 쉬이 지나칠 만한 길이였다. 피해자에게 쥐어주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김민아는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최시온 씨는 40kg의 무게를 입에 물고 버틸 수 있나요.”
“40kg이요?”
김민아가 내려앉은 칼날의 나무블록을 쓸어 담았다. 전면에 걸쳐 크고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어 까끌거렸다. 손끝에선 수분감이 느껴졌다. 잠깐 멈칫한 그녀는 설명을 계속했다.
“칼날의 무게요. 자잘한 구멍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나갈 거예요. 그래야 목을 단칼에 썰지 않겠어요. 설령 손에 쥐어줬더라도 사람인 이상 부동자세로 몇 시간을 버티는 건 불가능해요. 단순히 줄을 연결했다고 해서 칼날의 무게가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굳이 이런 장치를 만들어낸 이유가 있다는 건데….”
“죄책감 때문이겠죠.”
“…역시 그럴까요.”
최시온이 알고 있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누군가 문을 세게 당겼다. 뒤이어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문 앞에는 잘려나간 피해자의 머리가 작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우연찮게도 단두대와 문손잡이는 밧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상황을 직면한 ‘누군가’는 단두대가 작동한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게 될 거예요. 당연히 그 누군가는 의뢰인을 상정해 둔 것일 테고요.”
“범인은 의뢰인이 동행하길 요구했으니 말이죠. 무어라 속삭였던 것도 의뢰인이 문을 열도록 유도를 했던 것이겠죠. 더 지체했다간 단두대가 작동해버릴 거란 식으로.”
김민아는 맞다고 답했다. 그녀는 손전등 빛을 옮겨 단두대 뒤편에 쓰러진 마네킹을 조사했다.
“아까 저 뒤 쪽에서 쓰러진 마네킹을 발견했어요. 실제로 범인은 밧줄을 피해자에게 쥐어준 것이 아니라, 단두대 뒤편에 놓인 구경꾼 마네킹에 걸어놨을 거예요. 구경꾼 마네킹이 쓰러지면서 나는 소리를 단두대가 작동해 난 소리로 착각하도록. 실제론 의뢰인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단두대가 작동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간으로 따지자면 2시간 안이 되겠네요.”
“2시간이요?”
최시온이 되물었다.
“네, 2시간. 편지가 도착한 후 범인이 입을 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에요. 생각해보면 그렇잖아요. 범인은 애초에 피해자를 죽일 작정으로 이런 정신 나간 장치를 만들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까요. 그럴 리 없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게 계획을 짰겠죠. 그러니 2시간은 피해자가 확정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시간인 거예요.”
김민아의 미간 위로 그림자가 깊어졌다.
“이곳은 경사진 지형이에요. 일찍이 잘려나간 머리는 구경꾼 마네킹들이 터놓은 외길을 따라 문 앞으로 굴러갔을 테죠. 이윽고 실성한 의뢰인이 문을 열었을 땐… 피칠갑 된 피해자의 머리가 의뢰인을 반겨주었을 거예요. 우리가 봤던 것처럼 말예요.”
“범인의 악의가 의뢰인에게까지 뻗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되겠군요.”
“피해자에겐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을, 의뢰인에겐 자기 손으로 애인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선사한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추악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정말 악마가 따로 없네요.”
“추악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감정 이입이라도 한 것일까. 최시온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곧 원래의 평온함을 찾고는 말했다.
“어쨌거나 남은 문제는 한 가지겠네요. 단두대를 정말로 작동시킨 것은 무엇인가.”
“이제 15분 지났어요. 조금만 더 주변을 찾아보도록 해요.”
“그러죠.”
두 사람은 현장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김민아는 단두대로, 최시온은 구경꾼 마네킹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핏기는 단두대 앞만 흥건했다. 출현은 목과 손에서만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혹 놓친 것이 있지는 않을까. 김민아는 발끝부터 시작해 마네킹의 전신을 차분히 훑어봤다. 누르스름한 드레스까지 뒤집어봤음에도 특이점은 없었다.
다음으로는 사형수를 고정하는 틀을 만져봤다. 속에 칼날이 들어올 공간을 비워 둔 나무 판때기였다. 단두대가 작동한 지금, 칼날이 고정 틀 안으로 쏙 들어가 있어, 고정 틀이 칼날의 나무블록을 받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마치 블록 쌓기 게임처럼.
‘틀과 칼날의 궤도가 같아서 그런 거구나.’
김민아는 중지를 굽혀 고정용 틀을 두드려봤다. “통, 통.”하며 가벼운 소리가 났다. 틀 우측으로는 옛날 학교 창고에서 종종 볼 수 있던 구식의 걸고리가 걸려 있었다. 녹이 슬어 있었으며, 걸고리에는 얇은 고리로 구성된 초록색 자물쇠가 맞물려 걸려 있었다. 그녀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한 손으로 팔짱을 낀 채 다른 손으로는 볼을 집었다.
흐음.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보았다. 날이 더운 탓이었을까. 짙은 갈색을 띠던 칼날의 나무블록이 수분을 잃어 점차 옅은 색감이 되고 있었다. 그러자 유독 눈에 띠는 물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꽈배기 모양. 밧줄 자국이야.’
그녀는 볼 살을 위로 집어 당겼다. 비틀어진 시선이 단두대 기둥에 꽂혔다. 또 그렇게 보고 있길 몇 분, 터벅거리며 발소리 하나가 다가왔다. 김민아는 눈초리로 검은자위를 굴렸다.
“아, 최시온 씨.”
최시온이었다. 김민아는 얼굴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마침 잘 왔어요. 혹시 아까 이거 보셨나요?”
김민아가 칼날의 나무블록을 가리켰다. 나무블록의 양 끝단에는 밧줄 모양의 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방금 발견한 꽈배기 모양의 밧줄 자국이었다.
“유독 이 자국만 오래 남아있더라고요.”
“단두대가 작동하면서 생긴 게 아닐까요. 밧줄이 튕겼다거나 하면서. 뿜어지는 핏기를 치댄 거죠.”
“그건 아닐 거예요. 밧줄은 처음에 살펴봤거든요. 핏물 위에 똬리를 튼 부분 말고는 건조했어요. 또 밧줄이 하난데 자국이 두 개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분명 다른 밧줄이 있었을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이걸 찾긴 했네요.”
최시온이 한참의 간격을 두어 답했다. 그는 품 안에서 성인 남성의 팔 정도 되는 길이의 짧은 밧줄을 꺼내 김민아에게 건넸다. 김민아는 건네받은 두 밧줄을 살펴봤다. 밧줄은 전체적으로 축축했고, 양 끝단엔 투명한 살얼음이 붙어 있었다.
“이건 어디서 찾으셨나요?”
“단두대 옆에서요.”
“처음 들어왔을 때 찾으신 건가요?”
“방금 전이요. 첫 번째 탐색이 끝난 후.”
“제가 찾을 땐 없었던 걸요.”
“원래 밤눈이 좋은 편이에요.”
김민아는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그렇군요. 아, 그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저것도 보신 건가요?”
이번엔 김민아가 한 손으로 백열등 빛을 가린 채, 단두대의 양측 기둥을 가리켰다. 빛이 약하게 닿는 밝은 면에는 얼룩이라도 진 것처럼 색이 진했다. 키가 작은 김민아의 입장에선 닿지 않을 높이였다.
“저건 처음 보네요.”
“최근엔 비도 안 왔는데… 이상하지 않나요? 바닥에 고인 핏물도 그렇고요. 피라고 보기엔 너무 묽고 양이 많잖아요.”
“한번 확인해 볼게요.”
최시온이 구두를 벗으며 단두대의 받침대를 밟고 올랐다. 까치발을 들어도 기둥 끝에는 닿지 않았다. 최시온은 제자리에서 점프해 단두대 윗동을 향해 몇 차례 손을 뻗었다. 손끝에 무엇이라도 닿은 것일까. 몇 번의 점프를 반복한 그의 표정은 미묘하게 변해있었다.
“뭐라도 있나요?”
“양쪽에 격자 홈이 하나 씩 있어요. 꼭 무언가를 끼워두려 틀을 만들어둔 것처럼. 벽돌 같은 것들이요. 윗부분으로 올라갈수록 수분기도 강하고요.”
최시온이 말하며 단두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김민아에게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장갑 표면에는 투명한 결정과 물기가 묻어있었다.
‘색도 없고, 냄새도 나질 않아. 별다른 특징은 없어 보이는데.’
김민아가 최시온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던 중 최시온이 난데없이 손바닥에 묻은 결정을 핥았다. 돌발행동에 놀란 김민아는 당장에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아니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정신 나갔어요? 위험한 거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위험한 거였다면 면접관님이 미리 말을 해줬을 거예요.”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면접관은 자신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최시온은 잘 접히지도 않는 뻑뻑한 손아귀를 가져다 김민아의 손을 풀었다.
“이건 평범한 물이에요. 그러니 이제 답은 확실히 나온 것 같은데…. 김민아 씨는 아닌가요?”
“…그건 그래요. 이것들만 있으면 범인이 2시간이 지나 입을 뗀 이유도, 단두대를 작동시킨 무언가도 알 수 있어요. 비정상적으로 묽은 피도 충분히 납득이 가고요.”
김민아는 손목시계를 살폈다. 남은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면접관은 달라진 둘의 낌새를 알아차리곤 물었다.
“벌써 알아내신 건가요? 생각보다 빠르군요.”
김민아는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긍정에 면접관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럼 들려주시겠습니까. 두 분의 추리가 무엇인지.”
“괜찮으시다면 제가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시온이 김민아에게 물었다. 김민아는 괜찮다고 답했다.
“그럼 최시온 씨의 추리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이견이 있다면 중간에 말씀해주십시오.”
면접관이 말했다. 최시온은 가벼운 목축임과 함께 추리의 물꼬를 텄다.
“우선 간단히 현장을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면접관님이 출입문을 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내부에선 커다란 굉음이 들렸습니다. 입구에선 피해자의 머리가 작게 약동하고 있었죠. 면접관님께서 백열등을 키자 단두대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주변에는 다양한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어요. 잘려나간 마네킹의 손, 꼭두각시, 매듭실. 이것들 자체로도 충분히 이목을 끌만하지만 정작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밧줄이었습니다. 네, 바로 이 밧줄입니다.”
최시온이 검지를 펴 단두대 칼날의 나무블록에서부터 연장돼, 단두대 윗동과 문고리를 지나 다시 단두대 앞을 향해 느슨하게 늘어진 밧줄을 차례로 가리켰다.
“팽팽하게 이어져 있었다면 직각 삼각형을 떠올리게 할 법한 구조입니다. 길이로 따진다면 피해자에게 쥐도록 했어도 충분할 정도에요. 하필 놓인 위치가 단두대 바로 앞이기도 하고요. 때문에 문을 연 누군가는 생각하게 될 겁니다. ‘단두대 칼날은 이 밧줄과 연결되어 있던 거구나. 내가 억지로 문을 열어서 피해자가 밧줄을 놓친 거구나.’ 하고. 일종의 줄다리기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치아에 물고 있든, 손으로 쥐고 있든, 사람의 신체라면 어디든 마찬가지겠죠. 40kg이나 되는 무게를 몇 시간 동안 들고 버틸 수 있을 사람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범인은 어째서 그런 트릭을 만들어낸 것입니까?”
“죄책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범인은 문을 열고 들어올 의뢰인에게 제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심어주려 했던 거예요.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기억에서 평생을 허덕이도록. …김민아 씨가 말씀하셨던 추악한 악마처럼 말이죠.”
최시온이 말하고는 입술을 짓물렀다. 면접관은 김민아에게 이견이 있는지 물었다. 김민아는 없다고 답했다.
“범인의 악의가 피해자에게 한정돼 있지 않았다는 말씀이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계속해보시겠습니까. 이번엔 김민아 씨가 이어서 말씀해보시죠.”
“그렇다면 남은 의문은 하나예요. 단두대는 과연 무엇에 의해 작동 되었는가.”
김민아가 최시온에게서 받은 짧은 밧줄을 들어 면접관에게 보였다.
“그 짧은 밧줄을 이용했다는 말인가요?”
“정확히는 얼음도 함께요.”
“어떤 식으로죠?”
“범인은 두 밧줄을 둥글게 말아 끝 부분만 물에 넣어 얼렸을 거예요. 완성된 얼음의 모양은 직육면체, 벽돌 형태였어요. 단두대 위쪽에 있는 격자 홈에 끼워 맞추도록 말이에요. 이후 얼음이 완성됐다면, 얼음과 칼날의 나무블록 사이에 단두대 윗동을 끼워놓고, 단두대를 조립하면 되는 거예요. 위에서부터 얼음-단두대 윗동-단두대 칼날-피해자 순이 되겠죠. 트릭은 그렇게 준비를 마쳤어요.”
김민아가 밧줄을 반으로 접어 칼날의 나무블록을 휘감는 시늉을 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단두대 윗동과 칼날의 나무블록을 넉넉하게 두를 길이였다.
“면접관님께서는 ‘범인은 편지가 발견된 후 2시간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어요. 사건 당시의 계절은 여름이었다고 하셨고요. 한여름의 2시간, 직면하는 백열등의 빛. 위 두 가지 조건이라면 제 아무리 큰 얼음이었다 할지라도 금이 가기엔 충분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음은 깨지기 시작할 거고, 얼마안가 칼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겠죠. 끝내 밧줄은 풀리고 말아요. 면접관님께서 제한 시간을 두신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닌가요. 얼음이 사라지기 전에 답을 찾아내라는…. 아마 피해자는 2시간이라는 단두대형의 집행 시간 동안, 얼음이 깨지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보다 죽음을 맞이했을 거예요. 그게 범인의 또 다른 의도였던 거죠. 피할 수 없는 죽음에서 느낄 극한의 심리적 고통과, 그 이후에 맞이하게 되는 비참하고도 쓸쓸한 최후요. 면접관님. 아까 범인을 역사성애자라고 하셨나요? 범인은 단순한 역사성애자가 아니에요. 이렇게 잔혹한 계획을 만들어낸 걸 보면 순수악, 그 자체일 테죠. 범인은 누군가의 고통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아무렇게나 악의를 뻗치는 추잡하고 간악한, 악마 같은 자식이라고요.”
“악마라…. 그렇군요. 최시온 씨는 부정하지 않으시나요?”
최시온이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위아래로 가볍게 턱짓을 했다. 면접관은 볼을 긁으며 시계를 살폈다. 남은 시간은 1분 남짓이었다.
“정리해보자면 문이 열리면서 머리가 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연출했던 것은 의뢰인에게 끔찍한 기억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실제 수법은 단두대의 윗동에 얼음을 고정시킨 후, 때가 되면 얼음이 녹아 밧줄이 칼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풀어지도록 만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의뢰인의 남자친구, 즉 피해자는 절망 끝에 사망하게 된 것이고요. 맞습니까?”
“단두대에서 물기가 묻어났어요. 바닥에 고인 액체는 피라고만 생각하기엔 너무 묽고, 양도 많았고요. 이런 정황이 범행에 얼음이 사용됐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흐음, 응당 합당한 추론이군요.”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아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미소도 잠깐이었다. 면접관은 돌연 둘의 추리를 부정해버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정만 합당한 것 입니다. 말씀하신 얼음 트릭은 실제론 불가능하니까요.”
“네? 그, 그럴 리가요. 그게 아니라면 달리 방법이 없는 걸요.”
김민아는 당황했다. 면접관은 물었다.
“김민아 씨. 키가 어느 정도입니까?”
“156cm입니다.”
“많이 작은 편이시군요. 뭐, 꼭 키 때문은 아니더라도 천장의 정확한 높이는 가늠하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백열등을 감싼 원반 모양의 접시 때문에 천장으로는 빛이 새질 않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손전등을 가져다 대기엔 밝은 편이라 필요성을 못 느끼셨을 테고.”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손전등 말입니다. 저기 컨테이너 가장자리에서부터 당겨와 백열등과 포개보시겠습니까.”
면접관의 요구에 김민아가 끝자락에서부터 빛을 당겨왔다. 눈살을 찌푸릴 법도 하건만 그녀는 눈을 감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윽고 똘망똘망한 동공이 포개지려는 두 빛을 담은 순간, 김민아는 면접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군요.”
단두대 윗동과 백열등 사이의 거리는 어림짐작건대 10cm 안팎. 김민아가 생각했던 거리보다 훨씬 가까웠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요. 말씀하신 대로 단두대 윗동에는 홈이 파여 있습니다. 직육면체의 얼음이 들어갈 공간이죠. 때문에 이 위치에 맞추지 않는다면 얼음은 애초에 둘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고정이 되질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홈에 맞는 얇은 얼음을 끼워 넣는다면…”
“무게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거예요. 10cm 두께의 얼음은 40kg을 버티기엔 너무 얇으니 말이에요.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깨져 버릴지 모를 일이에요.”
“그런 이유입니다. 2.7m 높이의 컨테이너와 비슷한 높이의 단두대. 둘 사이의 공간은 기껏해야 주먹 한 두 개가 들어갈 정도입니다. 그러니 얼음 트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만들어봤자 의미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접근 방식 자체는 훌륭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면접관은 손목을 비틀어 재차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8시 2분. 약속한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이제 끝인 것일까. 김민아는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면접관을 바라봤다. 면접관은 좁아진 눈꺼풀 틈으로 거뭇한 자위를 굴리고 있었다. 바닥을 차분히 훑어 본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자, 김민아 씨. 그럼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말을 들은 최시온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는 약간 고조된 목소리로 면접관에게 물었다.
“돌아가지 않는 건가요.”
“면접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약속한 30분은 이미 지났는데요.”
“저는 처음부터 대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기회는 아직 남아있단 뜻이죠.”
최시온은 말없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김민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치만 면접관님. 면접관님이 제한 시간을 두신 건 얼음 때문이 아니었나요? 이제 얼음도 모두 녹아 버렸는걸요. 제 접근 방식이 맞는다면 더 이상 시간을 주셔도 의미가 없을 거예요.”
“글쎄요. 어쩌면 얼음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아, 설마하니 추리하기가 버거워 그러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포기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저도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 말입니다. 어째 최시온 씨께서도 그 편을 더 좋아하실 것 같긴 하네요.”
“최시온 씨가요?”
“이젠 지치셨는지 포기하신 것처럼도 보이거든요.”
면접관이 눈짓을 하자 최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몸을 틀어 단두대에 기대 걸터앉았다. 김민아는 최시온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 그럼 저는 조금만 더 찾아볼게요.”
“좋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 낭비란 판단이 든다면 면접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면접관이 말하고는 다시 가장자리로 돌아갔다. 김민아는 손전등을 들어 자신이 놓친 것이 있는지 바닥을 빠르게 탐색했다. 얼음이 아니라면 뭐지. 얼음이 아니라면 범인이 2시간을 고집할 이유가 있었을까. 접근 방식이 훌륭하다 한 걸 보면 시간에 의미가 있는 건 틀림없는 것 같은데. 면접관이 대략적인 시간을 제시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바닥을 훑어 본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이진 않아. 그녀는 분명 놓친 것이 있었다. 필시 시간과 관련된.
‘단두대, 마네킹, 밧줄. 어디에도 이상한 건 없어.’
잔걸음을 따라 핏물 위로 수많은 파동이 일렁였다. 몇 번인가 단두대 주변을 돌아보았음에도 김민아의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새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간히 고개를 들어 면접관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왜인지 갑자기 입을 잠가버린 최시온 역시 별다른 도움은 되지 못할 듯 했다.
‘최시온 씨는 정말 포기한 걸까. 아까부터 가만히만 있네. …정신 차리자. 그래도 일단 면접이 먼저야.’
수확이 없던 그녀는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조사해보기로 했다. 손전등 빛은 문고리부터 시작해 핏물, 얼마안가선 컨테이너의 구석과 천장을 훑고 단두대 코앞으로 돌아왔다. 내부를 전부 돌아봤음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그녀의 걸음을 따라 일어난 하얀색의 포말이 꼭두각시들에게 박음질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잠깐만.’
그때였다. 김민아가 놓쳐선 안 될 변화를 알아차리고 만 것은. 그 변화는 너무도 미비했으며 현장과도 잘 어울려, 자칫 잘못했다간 그 변화 자체를 자연스럽다고 밖에 여길 수 없는 것이었다. 커다래진 동공으로 핏물을 노려보던 김민아는 황급히 손전등을 들어 단두대 윗동을 비추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 분명 이런 의미였을 터, 역광이 돌아 칠흑 같던 윗동의 아랫면에는 U자 형의 자그마한 고리들이 균일한 간격으로 박혀있었다. 일순간 명확하고도 불온한 추리 하나가 그녀의 머리를 꿰뚫고 지났다. 김민아는 떨리는 손으로 꼭두각시와 마네킹의 손을 집어 앞뒤로 돌려보았다. 꼭두각시의 목에 달린 휠, 마네킹 손바닥에 남겨진 흉터, 우연이라 치부하던 기시감. 돌이켜보면 부자연스럽기만 했던 최시온과 면접관의 태도. 재차 반추해 보아도 그녀의 추리는 불온했다. 김민아는 불쾌함을 품은 채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최시온 씨.”
김민아가 최시온을 향해 천천히 눈길을 돌렸다. 축 처진 어깨는 비라도 맞은 것처럼 처량해보였다. 그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듣고 있어요.”
“인형극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조금은요.”
“그렇다면 보통 인형사가 실을 어디에 끼우는지 정도는 알고 계시겠네요.”
“조종대죠.”
“손에 끼우는 일은요?”
“그랬다간 실이 엉키고 말 거예요. 인형극은 세밀하고 복잡한 동작을 필요로 하니까.”
“확신할 수 있나요. 그도 그럴게 인형사는 비교적 생소한 직업이잖아요.”
“네.”
“…그건 분명 최시온 씨가 인형극을 해보신 적이 있기 때문이겠죠?”
“…글쎄요.”
면접이 끝났다 생각한 것일까. 최시온은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장갑을 뺐다. 백열등 빛을 반사한 수술 자국은 유달리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네킹의 손에 새겨진 자국과 동일한 모양에, 동일한 위치였다. 그녀의 불온한 추리는 확신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목표를 그만두신 거군요. 인형사요. 그런 손으론 더 이상 꼭두각시를 조종할 수 없었을 테니.”
“왜 그렇게 탐정에 목을 매는 거예요?”
고분고분 답하던 최시온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김민아 씨는 불미스러운 과거가 없잖아요. 면접관님이 몇 번이나 겁을 줬는데도 꾸역꾸역 하겠다고 남아있는 게 잘 이해가 가질 않아요.”
“그건 최시온 씨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아니면 면접관님이 시켜서 묻는 건가요.”
“….”
“제가 남을 돕고 싶다고 자기소개서에 적어둔 게 그렇게 진정성이 떨어져보였던 건가요. 그래서 당신한테 억지로 이런 일을 시킨 거예요? 제가 어떤 식으로 나오나 시험해보려고?”
“….”
“솔직히 말해주세요. 사실 최시온 씨는 그런 거 관심도 없잖아요.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지. 끔찍한 기억만 떠오르게 하는 이곳에서요.”
최시온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흘러내린 앞머리가 그의 얼굴을 가리니 독실한 신앙인이 기도를 드리는 듯한 실루엣이 생겨났다. 숙연해하는 최시온을 보며 김민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탐정에 목을 매냐고 물으셨죠. 기뻐서 그래요. 그냥 기뻐서…. 저는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전공을 살려 막 바로 토목회사에서 일했어요. 따지자면 안 그런 직장이 있겠냐만은 대화보단 윽박질이 먼저였고, 업무를 잘해내도 좋은 소리 한번 듣기 힘들었죠. 마초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유독 심했던 것도 같네요. 참자, 어딜 가든 똑같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3년을 다녔을까요. 문득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자존감은 떨어지고, 삶의 방향도 잃어버렸던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한 꼬마 아이를 만나게 됐어요.”
“꼬마요?”
최시온이 얼굴을 살짝 들어 올렸다. 김민아는 짧게 끄덕였다.
“꼬마요. 한 손에는 풍선을 쥔. 어린이 날이라고 어디선가 받아왔나 봐요. 신이나 혼자 방방 뛰다가 제 옆에서 넘어지고 말았어요. 아이가 놓친 풍선은 가로수에 걸렸죠. 엉엉 울더라고요. 아파서 우는 건지, 풍선을 놓쳐서 우는 건지, 뭔지는 나도 몰라요. 주변에서는 아이를 달래주는 사람 하나 없었어요. 그것 하나 때문에 경찰을 부를 수도 없잖아요. 당황한 저는 어찌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잠깐이지만 내 알바 아니란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리가 먼저 움직이더라고요. 초등학생 이후론 나무를 타본 적도 없으면서 곁가지를 부여잡고 가로수를 타고 있었죠. 어찌어찌 풍선을 갖고 내려오긴 했지만 발목이 나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때 그 꼬마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최시온이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웃었어요. 아주 환하게. 감사하다고 말하면서요. 그때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아, 난 남을 돕는 걸 좋아했었지. 하고. 그 순간만큼은 나는 아픈 것도 잊고 그 애를 따라 웃을 수 있었어요.”
“고작 그것 때문에요? 그때 그 꼬마가 웃어줘서 탐정이 되려한다고요?”
“좋아하는 걸 하겠다는데 거창한 계기가 필요한가요. 나는 남을 돕고 싶을 뿐이에요. 그 아이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사람을.”
“…역시 상당히 감성적이시네요. 탐정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슨 의미에요?”
“말 그대로예요. 저는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곳에서 일하지 않길 바랐으니까.”
“역시 당신은…”
“이자연 탐정님.”
최시온이 김민아의 말을 끊었다. 어둠 속에선 면접관이 걸어 나왔다.
“두 분께선 모두 결론을 내리신 듯 하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김민아 씨의 추리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면접관님. 그전에 약속 하나만 해주실 수 있나요.”
김민아가 면접관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 위로는 차츰 그림자가 드리웠다. 최시온을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에 면접관은 되물었다.
“약속 말씀이신가요?”
“제 물음에 거짓 없이 답해주세요. 피해자에 관한 질문이요.”
“안 될 건 없습니다. 추리만 맞는다면 선택권은 김민아 씨에게 있으니까요.”
답을 들은 김민아가 송곳니로 입술을 강하게 씹었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곤 추리를 시작했다.
“…남은 문제는 하나예요. 단두대를 작동시킨 것은 무엇인가. 첫 째로 생각했던 트릭은 연장된 밧줄. 문이 열림과 동시에 단두대가 작동한다. 끽해봐야 고정도르래 역할 밖에 못하는 단두대로는 40kg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었을 거예요. 고로 첫 번째 추리는 폐기해야 하죠.”
“두 번째로 제시하셨던 추리 역시 마찬가지였죠. 단두대 칼날을 고정하기엔 얼음이 너무 얇았으니까요.”
면접관이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알아낸 세 번째. 그것은 여기 바닥에 널브러진 도구들을 이용한 트릭이에요.”
김민아가 손에 들고 있던 꼭두각시를 앞으로 내밀었다. 꼭두각시의 팔다리가 맞부딪히며 끽끽거렸다.
“이것들만 있으면 단두대 칼날의 무게도, 작은 크기의 얼음도 문제가 되지 않아요.”
면접관은 흥미롭다는 듯 “흠”소리를 내며 자신의 턱을 더듬었다.
“알고 보면 간단한 원리였던 거예요. 범인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움직도르래였으니까. 무게를 분산시켜줄 움직도르래 말예요. 그리고 그 역할을 해주었던 게 이 꼭두각시들이에요.”
김민아가 휘청거리는 꼭두각시의 팔을 180도로 돌렸다. 삐거덕거리는 관절 소리와 함께 팔이 곧게 뻗친 채로 고정되었다. 김민아는 다른 꼭두각시들을 주워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양팔을 벌린 꼭두각시들은 마치 줄줄이 종이 인형처럼 한 줄로 나열돼 어깨동무를 한 형태가 되었다. 면접관은 물었다.
“그 인형들이 움직도르래 역할을 했다는 건가요.”
김민아는 그렇다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피해자의 직업이 인형사다 보니 꼭두각시를 가져다 둔 것이라 생각했어요. 몰락한 인형사를 상징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방금 말씀 드렸듯, 이 열 개의 꼭두각시는 칼날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용된 거였죠. 그래서 꼭두각시의 목 관절이 구체가 아닌, 타이어 휠의 형태였던 거예요.”
김민아가 인형을 눕혀 목의 휠이 보이도록 했다. 그리곤 단두대의 윗동을 가리켰다.
“단두대 윗동에 자그마한 고리들이 있었어요. 저게 고정 도르래 역할을, 꼭두각시가 움직도르래 역할을 나눠했다. 그로인해 40kg에 달하는 칼날의 무게는 20등분 됐겠죠. 고작 2kg이요. 2kg의 무게를 버틸 힘만 있으면 피해자에게 단두대 칼날을 들도록 할 수 있다는 얘기에요.”
“거중기처럼 사용했다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꼭두각시의 목에 달린 휠은 홈의 크기가 너무 작습니다. 아까 찾으신 짧은 밧줄을 끼우진 못할 거예요.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생각입니까.”
면접관이 김민아가 겨드랑이에 끼워둔 짧은 밧줄을 가리켜 지적했다. 김민아는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밧줄의 굵기는 상관없어요. 애초에 꼭두각시는 밧줄로 연결된 적이 없었으니.”
“다른 도구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래요, 다른 도구. 그건 바로 매듭실이에요.”
“글쎄요.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기 굴러다니는 실들을 좀 보십쇼. 저 짧은 매듭실들로는 단두대 칼날을 들어 올릴 수 없었을 겁니다.”
“저건 눈속임이에요. 실제로 매듭실은 단두대가 작동하기 직전까지도 한 줄로 연결되어 있었으니까요.”
“매듭실이 한 줄?”
“네, 한 줄. 범인은 피해자의 양 손에 한 줄로 이어진 매듭실을 묶어놨던 거예요.”
김민아는 밧줄과 꼭두각시를 면접관에게 넘겼다. 그리곤 바닥을 나뒹굴던 마네킹의 다른 손 한 짝을 주워들었다. 면접관은 마네킹의 손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몰려든 미간은 김민아의 추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 흉터가 증거라는 겁니까? 그렇다면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습니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매듭실을 얼음에 묶어두는 편이 더 낫지 않았겠습니까. 두 번째 추리에서 말씀하신 짧은 밧줄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흉터도 남지 않았을 텐데요.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제부터 어폐가 있군요. 매듭실들이 원래 한 줄이었다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매듭실을 끊어놓은 겁니까. 현장에 공범은 없었잖아요.”
“그게 이번 트릭의 쟁점이었어요. 당연하게도 매듭실이 처음부터 저렇게 짧았을 거라 여기는 것. 저 짧은 길이만 보고는 매듭실과 단두대 트릭이 무관할 거라 자연스럽게 속단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매듭실 대부분이 물에 녹는 재질이라면 어떤가요? 그 때는 얘기가 달라지지 않나요.”
김민아가 허공에 대고 검지를 돌렸다. 손끝은 나선을 그렸다. 면접관은 왼쪽 눈썹을 구부리며 되물었다.
“말씀인즉…”
“범인은 평범한 실에 물에 녹는 실을 엮어 매듭실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흥미로운 발상이군요. 어디 계속 말씀해보시죠.”
김민아의 미간 위로 주름이 하나 생겨났다. 그녀는 손을 내리며 답했다.
“물에 녹는 실. 그건 시침질을 할 때 종종 사용되는 실이에요. 일정 시간 물에 닿으면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죠.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예상이 되시겠죠? 맞아요. 이 포말처럼 보이는 것들. 핏물 위를 떠도는 이 포말들이 아직 물에 완전히 잠기지 않아 녹지 못한 매듭실이라는 얘기에요. 만약 이런 성질을 가진 매듭실을 얼음에 묶어두었다간 어떻게 됐을 것 같나요. 분명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단두대가 작동했을 거예요. 피해자가 고통 받다 죽길 바랐을 범인이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 리 없잖아요. 그렇다면 이제 면접관님이 제한 시간을 두신 이유도 앞뒤가 들어맞게 돼요. 면접관님은 얼음이 아니라, 매듭실이 녹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게 될까봐 그러셨던 거예요. 아닌가요, 면접관님?”
김민아가 구두 굽의 앞코를 띄워 바닥에 강하게 찍었다. 파형을 따라 흰색의 포말이 퍼져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뜨문뜨문 남아있던 매듭실마저 넘실거리는 물에 닿으니 하얀 포말이 되었고, 이내는 붉은 핏물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잔잔해진 수면 위로는 얕게 파인 면접관의 보조개가 반사되었다. 김민아는 추리를 계속했다.
“짧은 밧줄은 얼음을 고정하기 위해 둔 게 맞았어요. 하지만 칼날을 고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크기가 작아도 상관없죠. 얼음은 매듭실에 물을 공급할 때까지 위치만 지키면 되니 말이에요. 실제 사건 당시 단두대의 구조는 위에서부터 얼음-단두대 윗동-꼭두각시-단두대 칼날-피해자 순. 시간이 지나 고정된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단두대 윗동에선 차츰 물이 흘러내렸겠죠. 윗동의 윗면을 지나 아랫면, 아랫면을 타고 U자형 고리. 고리를 적시곤 고리에 걸린 매듭실까지. 결국 얇아진 매듭실은 칼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다.”
김민아가 주먹을 들어 칼날의 나무블록을 내려쳤다. 자물쇠의 쇳소리가 내부를 울렸다.
“그 결과가 이거예요. 단두대가 작동해 피해자의 머리와 손을 잘라버리는 거죠. 바닥에는 머리와 손을 비롯해, 손에 연결해 두었던 매듭실과 꼭두각시들이 떨어지고 말 거예요. 이후에도 물방울은 계속해서 칼날의 나무블록을 향해 떨어졌을 테죠. 나무블록의 구멍을 경유하던 매듭실마저 물에 녹아 이음부가 끊어지게 된다면, 남은 매듭실은 경사를 따라 단두대 앞으로 떨어지고 말아요. 핏물에 잠겨 자취를 감추게 되겠죠. 마지막으로 잘려나간 머리는 외길을 따라 문 앞으로 굴러간다. 현장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매듭실에 엮어 사용한 같은 색상의 평범한 실과 도구들 뿐. 단두대의 트릭은 그렇게 완성된 거예요.”
김민아가 추리의 종지부를 찍었다. 면접관은 그녀에게 박수와 함께 찬사를 보냈다. 커다란 울림이 컨테이너를 가득 채웠다.
“대단하군요. 정확합니다. 대다수의 범죄 트릭은 완벽 범죄를 목표로 합니다. 범인은 범죄에서 한 발 물러나 이득만 보길 바란다거나, 범행 과정을 숨겨 피해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죠.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에서 벗어나려던 피해자와, 사랑하는 연인을 죽였다고 여기게 될 의뢰인. 심히 괴로웠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범인이 이런 트릭을 만들어낸 것이 헛수고는 아니었단 말입니다. 참고로 당시 현장에선 컨테이너 입구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실제였다면 진즉 녹은 매듭실이 산 속 어딘가로 흘러갔겠죠. 비도 많이 왔던 터라 증거를 찾기도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실제였다면’ 가정형의 문장에 김민아가 대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의 불온한 추리는 확신으로 바뀐 지 오래다. 김민아는 조금씩 억눌러왔던 불쾌함을 토해냈다.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중요한 건 아까 했던 약속이니까.”
“약속 말입니까?”
“시치미 떼지 마세요. 피해자에 관해 대답 해주기로 했잖아요.”
“아, 그랬죠. 피해자. 그래요, 어떤 게 궁금하신 겁니까.”
“피해자, 그러니까 의뢰인의 남자친구 말이에요. 그 사람은 아직… 살아있는 거죠.”
미뤄왔던 질문을 내뱉은 순간, 김민아는 이미 확신에 차 있으면서도, 자신이 틀렸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예상이 맞는다면, 진정 도움이 필요한 이를 알아봐주지 못 했다는 뜻이 될 테니. 나아가 그녀가 이자연이라는 인간을 경멸하게 되리라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아까 차에서 그러셨죠. 사람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물어볼게요. 그래서 대답은 뭔가요? 제가 맞은 건가요?”
“그게 궁금하셨던 겁니까?”
“대답이나 해줘요!”
“…과연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의뢰인의 남자친구, 그 사람은 아직까지 살아있어요. 그것도 아주 건강하게.”
면접관이 팔짱을 끼며 차분히 답했다. 언제나와 같이 평온한 그의 표정에 불쾌함은 순식간에 솟구쳐 올랐다. 김민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하! 아무래도 제가 사무소를 잘못 찾아왔나 보네요. 사무실이 그렇게 내세우던 구원에 동료 하나 포함돼 있지 않았다니. 이게 지금 사람이 할 짓이에요?”
면접관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는 김민아를 진정시키려 오른손을 펼쳐보였다.
“잠깐, 너무 흥분하신 것 같군요. 뭔가 오해가….”
“오해? 이제와 무슨 오해요?”
흥분한 김민아가 면접관의 말을 끊어버렸다.
“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최시온 씨가 피해자와 똑같이 여자친구와 동거를 했었다고 말한 걸요. 당연 그것 하나뿐이라면 이상할 건 없죠. 하지만 제가 확신하고 있는 건 비단 그것 하나 때문만이 아니에요. 범인 얘기만 나왔다하면 최시온 씨의 불편한 심경이 눈에 띄게 드러난 것. 비교적 생소한 인형극을 자세히도 알고 있었던 것. 모두 피해자가 가지고 있을 법한 특징들이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어요. 그건 바로 저 흉터에요.”
김민아가 잘려나간 마네킹의 손을 가리켰다.
“저 마네킹 손에 남아있는 흉터 말이에요. 최시온 씨의 수술자국과 똑 닮았잖아요. 이것도 우연이라고 말하실 생각이신가요? 그것 참 신기한 일이네요. 매듭실을 묶었다 한들 이렇게 크고 선명한 흉터가 남을 리 없는데.”
김민아의 추리에도 면접관의 무심한 표정은 변할 낌새가 보이질 않았다. 김민아는 답답한 마음에 블라우스의 제일 위 단추를 풀어헤쳤다. 그녀의 언성은 빠른 속도로 높아져 갔다.
“대단도 하시네요. 양심에 가책 따윈 느끼지도 않나 봐요. 끝까지 표정 하나 변하질 않다니. 가식이니 평온이니 떠들어 대던 건 자기가 무정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가요? 아, 아니면 설마 이정도 정황쯤은 아직 우연이라 둘러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면접관님. 어디 다른 우연들은 설명해 보실 수 있으신가요? 면접관님은 어째서 제가 면접을 포기하면 최시온 씨가 좋아할 거라고 말씀하셨던 거죠? 최시온 씨가 짧은 밧줄을 숨겼던 이유는? 마네킹의 흉터를 문제 삼지 않았던 이유는? 일부러 틀린 추리만 했던 건 최시온 씨가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려 은연중에 탈락을 유도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최시온 씨가 탈락을 해서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면접관님이 눈치를 주자 더 이상 방해를 하지 못했던 이유는요? 최시온 씨가 제게 이런 사무소에서 일하지 않길 바랐다고 말한 이유는 도대체 뭐죠?”
“….”
“면접관님도 아시잖아요. 답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건 바로 최시온 씨가 해당 사건의 피해자이자, 탐정 사무소의 직원이라는 뜻이에요. 최시온 씨는 상관인 당신의 요구에 응해 억지로 면접자 행세를 하며 저를 시험하고 있던 거라고요. 그것도 고통스러운 기억만 떠올리게 하는 이 끔찍한 장소에서. 면접관님. 면접관님은 정말 아직도 이 모든 게 우연이고, 오해라고 말할 생각이신가요?”
김민아의 목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풀리지 않는 답답함에 블라우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목소리는 극으로 치달았다.
“아뇨!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에요. 실제로 단두대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피해자였던 최시온 씨는 우리 눈앞에서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 손에 난 상처도 저 얇은 고정 틀을 벗어나려다 뒤늦게 단두대가 작동했다거나 하면서 생긴 것이겠죠. 면접관님. 면접관님은 도대체 제게 뭘 바라셨던 건가요. 제가 여기서 지금처럼 화를 내길 바라셨던 건가요? 남을 돕고 싶다고 적은 만큼 진정성을 보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이런 일쯤 대수로이 여기지 않길 바라셨던 건가요? 탐정이 마주할 현실은 더욱 잔혹할 테니?”
몰아붙이는 김민아를 향해 면접관은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달아오른 이마 위로 손바닥을 덮었다. 그리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면접관님. 저는 구원이란 슬로건이 마음에 들어서 이 곳에 지원한 것이었어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기 위해 지원한 거였다고요. 그런데 가까운 사람 하나 챙기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이용을 하다니요. 이런 건, 이런 건 절대 구원이 아니에요. 그냥 야비하고 비겁한 행동이지. 한낱 범죄자 따위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거란 말이에요.”
한바탕 성을 낸 김민아가 가까스로 고조된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면접관은 검은자위를 옮겨 눈초리에 가져다 두었다. 천장에서 내린 빛은 단두대에 기댄 최시온의 모습을 더욱 가냘파 보이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저보단 최시온 씨가 말씀을 하시는 게 좋겠군요. 최시온 씨.”
면접관이 최시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최시온은 접힌 허리를 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굼뜬 손길 하나가 단두대를 어루만지며 김민아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김민아 씨 말 대로에요. 의뢰인의 남자친구는 버젓이 살아있어요. 지금도 버젓이.”
“알아요. 최시온 씨, 그건 바로 당신…”
“아뇨, 아쉽게도 그건 제가 아니에요. 저는 그 따위 쓰레기가 아니니까.”
김민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시온의 대답은 다소 과격했다.
“따진다면 오히려 더한 쓰레기일지도 모르죠. 김민아 씨. 아까 범인을 더러 그러지 않았나요. 악마 같은 자식이라고. …예, 그래요. 단두대의 마리 앙투아네트. 이 참극을 꾸민 장본인은 바로 저란 얘기예요. 이건 자살한 누나를 위해 내가 울분을 참아가며 만든 장치거든요.”
최시온에게서 빠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치아를 강하게 물은 것이었다. 당황한 김민아의 입은 조금씩 벌어졌다.
“마, 말도 안 돼요. 그럼 단두대가 작동했다는 말인가요?”
“단두대는 저희가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비가 내려 선선한 날씨이기도 했거니와, 얼음이 빨리 녹을 것을 염려해 증류수와 순환냉각기를 이용해 얼음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순수하고 밀도가 높은 얼음은 녹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이자연 탐정이 끼어들었다.
“문을 연 순간 우리는 안도했습니다. 실제론 남자친구의 머리가 붙어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일은 기어코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자연 탐정이 왼손바닥 위로 오른손 날을 세워 천천히 내려찍었다.
“사람 여럿이 컨테이너 안으로 발을 옮기자 녹고 있던 매듭실이 하나 둘 끊어져버린 겁니다. 정말 찰나였죠.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최시온 씨, 혼자였습니다. 제 뒤에 있던 시온 씨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어요. 주변에 널린 마네킹 하나를 옆구리에 낀 채로요. 마치 창병이라도 된 것처럼 단두대 칼날과 속박된 피해자 사이에 마네킹을 꽂아 넣었습니다. 하지만 속이 텅 빈 마네킹으론 무거운 칼날을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최시온 씨는 계속해서 내려앉으려는 칼날을 막으려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들어 올리고 말았습니다. 한 발 늦게 저와 경찰들이 다른 마네킹을 들어 단두대에 끼워 넣긴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죠. 손바닥의 절단흔은 그렇게 생긴 것입니다.”
“그건 그 쓰레기를 살리기 위한 게 아니었어요.”
최시온의 목소리가 떨렸다. 부들거리는 손등 위로 힘줄이 굵게 올라섰다.
“자살한 누나가 생각났기 때문이지. 내 누나는, 피해자… 그러니까 의뢰인의 남자친구와 함께 인형극을 하던 동료였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연인이었죠. 두 사람은 문화 회관에서 주최하는 작은 콘서트에 초빙된 것이 첫 만남이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둘은 서로의 연극을 피드백 해주기로 했고 만남이 잦아지게 됐죠. 매일같이 얼굴을 보다보니 호감이 쌓이고 급속도로 거리가 가까워진 거예요. 누나는 그 인간을 만나고 오는 날이면 언제나 행복한 얼굴로 그 인간 얘기를 했어요. 좋은 사람을 만났다. 믿고 의지할 수 있다. 인형극을 할 때처럼 맑은 눈빛으로요. 언젠가 한 번은 저를 끼워 식사를 한 일도 있었죠. 멀끔하고 헌칠한 게 인상도 좋아보였어요. 누나처럼 행복을 거머쥐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그건 모두 가식이었더라고요.”
최시온이 콧김을 내쉬었다. 그는 중지를 굽혀 칼날의 나무블록을 두드렸다.
“의뢰인과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있더군요. 배짱도 좋게 같은 지역에서. 패스트푸드 점에서 저녁을 먹던 저는 우연찮게 그 둘의 얘기를 엿들었어요. 누나의 인기만 어떻게 빼돌리면 그딴 재미없는 여자랑은 끝일 거라고 시시덕거리고 있던 때였죠. 당시 우리 누나는 세밀한 연기와 감정 전달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응이 좋았거든요. 지역 내에선 인기를 거의 독식했다 싶을 정도로 말이에요.”
두드림의 간격이 짧아졌다.
“나는 곧장 누나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전했어요. 누나는 믿지 않았죠. 도리어 제게 화를 내더군요. 사람을 착각한 거라는 둥, 왜 그런 얘기를 잘못 들어서 자기를 힘들 게 하냐는 둥. 누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거예요. 그 쓰레기 자식은 누나에게 있어 이미 애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안식처였으니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저를 업어 키우는 통에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누나에게는 그 쓰레기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보금자리나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나는 그 이후로 누나에게 남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못 했어요. 말해봤자 서로에게 상처만 될 테니. 그러니 누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저를 대했죠. 하지만 그날 이후로 누나는 망가져갔어요.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초췌해지고, 머리는 하얗게 새기 시작했죠. 집안에 틀어박혀서 간간히 통화만 하지 밖으로 나오지도 않더라고요. 언젠가 두 사람이 헤어진 거냐고 돌려 물어본 적이 있어요. 밖에 나가서 친구라도 좀 만나야하지 않겠냐고. 남자친구랑 통화만 하면 충분하대요. 헤어지지 않았다는 뜻이죠. 몇 달 동안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헤어지지 않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참. 그러던 어느 날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할 때였죠.”
두드림이 갑자기 멈추었다.
“누나가 저를 부르더라고요. 짧은 단발을 하고는 예전처럼 아주 해맑고 따스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이별을 한 여자들은 머리를 자른다는 말이 있잖아요. 나는 누나가 실연을 받아들이기로 한 줄 알았어요. 누나는 제게 말했죠.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데 참 얄궂은 일이죠. 누나는… 그 다음 날 투신했거든요.”
최시온이 주먹을 쥐어 긴 간격으로 단두대를 두드렸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난간에 목이 걸려 두 동강이 났어요. 단두대에 목이 잘린 것처럼…. 유서 같은 건 없었어요. 그나마 죽기 전에 쓴 것이라고 해봤자 ‘단두대의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미발표 대본 하나가 전부였죠. 결말을 몇 차례나 수정했는지 끝부분이 너덜너덜해진 대본 한 편이요. 누나답지 않게 비극적인 결말이었어요. 정말 낯설더라고요. 누나는 보는 관중들도 행복해졌으면 한다는 마음에 언제나 해피엔딩을 고집했으니까요.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요. 낯선 감각을 뒤로 하고 누나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어요. 경찰에게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누나가 투신한 이유를 알아냈다면서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예술인 커뮤니티에서 누나를 대상으로 한 악의적인 소문들이 떠돌고 있었대요.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웠네, 동료들의 아이디어를 빼앗았네, 정치질을 했네.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사람들이 개떼마냥 달려들어선 누나를 물어뜯고 있더랍니다. 얼마안가 경찰은 무분별한 악플에 시달려 누나가 뛰어내렸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앞뒤를 자르고 본다면 분명한 사실이겠죠. 하지만 말이에요. 그건 너무 결과론적인 해석이에요. 분명 시작한 사람이 있었을 테니까요. 나는 따로 소문의 근원지를 조사했어요. 진실은 가깝더군요. 양다리를 걸친 사실에 직업을 잃을까 걱정했던 남자친구가 선수를 쳤던 거예요. 누나가 임자 있는 사람을 꼬드기려 했다고. 소문은 거기서부터 시작해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거였어요.”
주먹질의 간격이 짧아졌다. 목소리에 울먹임이 묻어났다.
“누나는 착한 사람이지 바보가 아니에요. 공연을 하던 중 남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 정도는 진즉 눈치 챘죠. 그래서인지 처음엔 남자친구에게 상의도 했더라고요. 근데 그 쓰레기가 뭐라 했는지 알아요? 지금 해명해봤자 화만 부추길 거다. 분위기가 누그러질 때까지만 집에서 몸을 사리자. 잠잠해지면 나와서 같이 오해를 풀자. 이딴 식으로 둘러대기만 했어요. 삭제된 메신저의 문구들이 다 이딴 것뿐이었다고요. 결국 누나는 그 쓰레기의 말을 믿고 집안에 틀어박혀 시간만 보내고 있던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악착같이 홀로 버티고 있던 누나는 보고야 말았던 거예요.”
최시온이 있는 힘껏 단두대를 후려쳤다. 단두대에 누워있는 목 없는 마네킹이 움찔거렸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 망할 놈의 예술인 커뮤니티에서 보고야 말았다고요! 의뢰인과 남자친구가 행복하다는 듯 끌어안고 있는 사진을 말이에요. 이 사진에서도, 저 사진에서도 행복에 겨워 웃고 있었죠. 우리 누나는 머리가 하얗게 새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자기들은 행복하대! 그 착한 사람이 지들 때문에 그렇게 망가졌는데 자기들은 행복하대! 심지어는 그날 했던 인형극의 제목이 뭐였는지 알아요? 단두대의 마리 앙투아네트! 하! 김민아 씨. 그거 압니까? 놈은 누나와 다르게 역사를 소재로 인형극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하필 누나가 준비했던 인형극과 같은 제목이라니? 그런데도 하필 같은 소재를 사용하다니? 이쯤 되면 사건의 전말이 예상 되지 않아요? 그 정신 나간 자식이 누나의 대본까지 그대로 베껴다 연극을 하고 있었다고! 아니, 말은 바로 해야겠지. 놈의 결말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명을 벗는다는 내용이었으니까. 누나가 고쳐 쓴 결말처럼, 오명을 뒤집어 쓴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오른다는 내용이 아니라. 그 순간 머리가 핑 돌더군요. 나는 그제야 그날 느꼈던 낯선 감각의 정체를 깨쳤어요. 누나답지 않았던 비극적인 결말. 놈답지 않은 인형극. 누나가 쓴 ‘단두대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원래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누나는 말예요, 내 누나는! 그 녀석의 손길을 절실히 기다렸던 거라고. 기다림 끝에 오명이 풀리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던 거라고. 그런데도 놈은! 그 사실을 외면한 채 누나의 연극만 베껴 썼단 말입니다. 누나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짐작이나 가요? 꾸역꾸역 담아둔 감정은 살아생전 시원하게 뱉어보질 못했어. 기껏해야 주인공에게 자신의 심정을 투영해 대본으로 깔짝여본 게 전부라고! 그토록 좋아하던 인형극마저 누나와 함께 비극으로 끝을 맺은 마당에, 당신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걸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냐는 말입니다! 예?”
“아니, 경찰은 그럼…”
김민아가 말끝을 흐렸다. 흥분한 최시온은 김민아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경찰? 경찰이라고? 어이가 없군. 원흉은 걔네 둘이지만 스노볼을 굴린 건 구경꾼들이야.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정당한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령 치르게 한다면? 걔들이 진짜 잘못했다고 생각이나 할까? 아니, 절대 아니지. 걔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 별별 핑계만 댈 뿐이야. 자기는 휘둘렸을 뿐이다. 나는 아무생각이 없었다.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다. 내가 소문의 근원을 좇았을 때도 그 따위 말만 해댔다고. 놈들은 내뱉을 줄만 알지 책임을 질 줄은 몰라!”
“그렇다면 아까 차에서 말씀하신 목표라는 건…”
김민아의 말에 최시온이 고개를 낮추었다. 드디어 마주하게 된 최시온의 표정엔 어둠이 깔려 있었다. 깊고도 짙은 어둠. 그것은 경건한 천사와는 동떨어진, 복수를 갈망하는 악마의 표정이었다.
“김민아 씨. 그 똑똑한 머리로 생각해봐요. 경찰에 말한다고 해서 놈들이 반성할 리 없어요. 아파하지도 않아요. 특히나 주동자였던 그 둘은 더 할 테지. 그럼 남은 건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건 복수예요. 우리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놈들에게 잊지 못할 고통을 안겨주면 되는 거라고.”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비수가 되어 김민아의 어깻죽지를 조금씩 파고들었다. 밀려오는 통증에 김민아가 작게 신음했다.
“처음엔 협박 편지를 보냈어요. 주변에서부터 차근차근 그 둘의 숨통을 조이려 했죠. 의뢰인과는 달리 남자친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더군요. 그 쓰레기한테는 이전부터 종종 그런 류의 편지가 왔으니까요. 누나의 팬이라고 떠들어대는 놈들한테서 말이에요. 머저리 같은 놈들이지. 지들이 누나를 비난하던 놈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지 2주 쯤 지났을 때에요. 마침내 복수의 날이 다가왔죠. 그 날은 문화회관에서 하는 공연이 끝나는 날이었어요. 놈은 공연이 끝나는 날이면 몸을 가누지 못할 때까지 술을 마셔댔거든요. 귀가를 할 때면 꼭 대리기사를 불렀죠. 저는 대리기사인 척 접근해 그 쓰레기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어요. 여자 친구가 기다릴 거라는 둥, 집에 빨리 가야한다는 둥. 뒷좌석에서 헛소리를 지껄일 때면 당장에라도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지만, 역시 그래선 안 됐어요. 놈은 살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버티고 버티다 비참하고 쓸쓸하게 죽어야 했으니까. 그래, 맞아요. 우리 누나보다 더욱 고통스럽고 끔찍하게. 나는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참아내고 놈을 단두대에 묶었어요. 놈이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할 때쯤 머리채를 잡아다 끌어올렸죠. 그리곤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 물었어요. 네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 아느냐고. 그랬더니 뭐라 했는지 알아요?”
최시온이 피식하고는 웃었다. 마주친 눈에는 초점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질겁한 얼굴로 괴성을 지르더군요.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 뛰어내린 건 네 누나 아니냐. 그게 내가 시킨 거냐. 네 누나 때문에 아직까지도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정말 힘들다. …하 참, 그게 시발 사람 새끼가 할 말이에요? 그게 진짜 사람 입에서 튀어나올 말이냐고요. 이봐요, 김민아 씨. 아까 뭐라고 그랬죠. 추악하다고? 맞아요. 나는 추악해요. 그럼 물어 봅시다. 누나 같이 이용만 당하는 사람들은 어쩌라는 겁니까. 남겨진 사람들은 어쩌라는 겁니까. 등신같이 당하고만 살아야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당한 게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날더러 뭘 어쨌어야 했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예? 김민아 씨. 가만히 듣고 있지만 말고 뭐라도 대답을 좀 해봐요. 그 잘난 머리로 뭐라도 방법을 말해보라고! 예!”
최시온의 하얀 자위 위로 실핏줄이 뻗어 나와 덮기 시작했다. 충혈된 눈동자는 김민아를 찢어발길 듯 노려보고 있었다. 이자연 탐정은 김민아가 아파하는 것을 보며 최시온의 팔뚝을 살며시 쥐었다. 그리곤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최시온의 양손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의 눈은 서서히 초점을 찾았다.
“…살인이 옳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그때의 난 정당한 죗값을 치르려 했어요. 미성년자임을 앞세워 죗값을 회피하기도 싫었고, 우발적인 범행이나 취기를 핑계로 감형을 바라지도 않았죠. 그랬다간 누나를 괴롭히던 놈들과 같은 꼴이니까. 사리분별도 못하면서 누나를 비난하는 데 미쳐있던 저 구경꾼들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악착같이 참아왔던 거예요. 그래서 이자연 탐정님이 처음 저를 찾아왔을 때도 협박 편지에 대해 순순히 인정했던 거고요. 내 복수는 무엇보다도 그 둘을 우선시하고 있었으니까.”
이자연 탐정은 담담히 말했다.
“제가 최시온 씨를 찾아내지 않았더라도 최시온 씨는 분명 멈췄을 겁니다. 최시온 씨는 순수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요. 그랬기에 실제로는 피해자의 위치도 빨리 알려준 거 아닙니까.”
최시온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 남자한테 빠진 멍청한 여자의 눈빛을. 애달프게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 그건 그 쓰레기를 바라보던 내 누나와도 같았어요. 앞으론 볼 수 없는 누나를 닮은…. 그리고 한편으론…”
최시온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는 작게 흐느끼며 김민아를 바라봤다.
“당신하고도 닮았죠. 꿈을 좇는 사람의 눈빛 말예요. 떨림 없이 밝고, 언제나 제자리를 지킬 것 같은 그런 눈빛. 그래서 저는 당신 같은 사람이 탐정이 되지 않길 바랐어요. 당신도 언젠가 잔혹한 사건에 치여 눈을 멀고 말 테니. …하지만 역시 그래선 안 되겠죠. 내가 여기서 당신을 멈춰 세운다면, 순수했던 누나의 행복을 짓밟아 버리고 마는 꼴이 되잖아.”
“….”
넋이 나간 김민아를 보며 이자연 탐정은 덧붙였다.
“…이번 면접은 최시온 씨가 주도했던 거였습니다. 면접을 핑계로 대긴 했지만, 당신이 중도 포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에 이런 자리를 만들어낸 거였죠. 자기소개서를 읽었을 때부터 순박한 마음씨가 드러났거든요. 흥미와 명예보단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씨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동조했다는 것도 부정은 못 합니다. 당신의 능력을 알고 싶기도 했거니와, 탐정이 직면해야 하는 범죄의 이면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죠. 범인의 악랄함과 피해자의 슬픔. 그 이면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범인의 말 못할 사정과 피해자의 비열한 속내 같은…. 여기 계신 최시온 씨는 실제로 6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나온 전과범입니다. 범죄자가 무조건적으로 악하고, 피해자가 언제나 선하다는 선입견을 한번 틀어주지 않는 이상, 김민아 씨가 최시온 씨의 사연을 들어주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죠. 그렇다한들 범죄자란 낙인은 최시온 씨가 짊어져야 할 죗값이기에 불평은 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이 탐정이 되고자 한다면 그의 사정을 한 번쯤은 들어주셨으면 했습니다. 우리들 탐정이 상대하고, 이해해야 하는 건 순수악도, 절대선도 아닌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하니까.”
“…의뢰인과 남자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김민아의 물음에 이자연 탐정이 고개를 저었다. 표정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잔혹한 현실을 만나게 될 거라고. 둘은 얼마 전 식을 올린 후 서로를 위하며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종종 인터넷을 통해 우리 사무소에 비난을 남기기도 하죠. 사건 직후 제가 그들을 비판했거든요. 소송을 위한 자료 수집에도 일조했고요. 그들도 법의 심판을 받긴 했습니다만, 최시온 씨에 비하면 하잘 것 없을 정도로 미약했습니다. 정말 안타깝고도 불쾌한 일이에요. 그럼에도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탐정이란 사건의 잔상을 떠안고 정진해야하는 직업이니. 김민아 씨. 단언컨대 앞으로 만나게 될 사건들은 이보다 비극적이고도 치가 떨릴 이야기일 겁니다. 우리가 내세우는 구원이란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지 않으니까요. 하나의 사건에 얽힌 관계자들의 감정과 과거.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헤아려 범죄를 저지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의 일은 누군가의 더러운 속내를 억지로 들춰야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멸시받고, 모욕당하고, 화를 입는 일도 부지기수에요.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간을 불신하게 될 수도 있죠. 그러니 김민아 씨. 포기하겠다고 하셔도 말리진 않겠습니다. 이제 선택권은 당신께 있어요.”
김민아는 하염없이 최시온을 올려다봤다. 백열등을 받아 은은하게 비치는 은색의 중단발은 본래의 색감이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중성적인 외모는 피해자의 슬픔과 범인의 악랄함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의 그는 그저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어느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천사도, 더럽고 추악한 초상들의 집합체인 악마도 아닌,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명의 인간.
“자. 그럼 이제 결정해 주시겠습니까.”
김민아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부드러운 천 조각이 붉게 상기된 최시온의 뺨을 어루만졌다. 상처 받은 이의 눈물은 손이 데일 듯 뜨거웠고, 가슴 깊이 묵혀둔 사연은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김민아는 바짝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저는….”
답을 들은 이자연 탐정의 입가엔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가 번졌다. 며칠 후, 이자연 탐정 사무소에는 새로운 책상 하나가 들어왔다. 명패의 이름은 김민아. 세 번째 동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