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7

※ 매미와 챗GPT, 시련의 콜라보레이션 _제7장

by 중성녀의 가난시대

[제7장]


나무 위로 올라갈수록 껍질은 더 얇아졌고 가지는 가늘어졌다. 위의 세상은 더욱 투명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맑음은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되었다. 날개는 태어날 때부터 찢어져 있었고 펴지도 못한 채 벌어져 버린 상처처럼 비틀린 형체였다. 연약하고 흉한 막을 감추기 위해 몸을 낮추었다. 남은 하나라도 찢어진다면 아무도 나를 매미로 보지 않을 것이며 더는 위로 올라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숨을 죽인 채 조심스럽게 다시 나무를 따라 천천히 위로 움직였다. 그러나 섬뜩한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햇살을 가로지르는 검고 날카로운 형체. 바로 새였다. 내가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많은 매미들이 저들에 의해 추락하는 것을 많이 봤었기에 더욱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림자가 내 위를 덮는 순간 바람이 막히고 공기가 정지한 듯했다. 본능적으로 나무껍질에 몸을 붙였다. 그러나 그는 단숨에 나를 삼키지 않았다. 저 새는 내 옆 가지에 내려앉아 유유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눈동자에는 식지 않는 장난기에 맴돌았고 부리 끝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게 뭐야?”


내 찢어진 날개를 톡 건드리며 그는 말했다.


“망가진 비닐 조각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더욱 몸을 웅크리고 숨겼지만 새는 이미 나를 보고 있었다.


“참 우습다. 울려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그렇게나 간절했나?”


그는 비웃음 섞인 숨을 내뱉으며 나뭇가지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나의 몸을 더럽게 훑었다. 부끄러움보다 먼 저 든 것은 절망이었다.


“울기도 전에 끝나게 생겼구먼. “


겁먹은 나를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너는 울지 않아도 사라질 것 같아.”


그가 낄낄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리 없는 죽음, 너한테 딱이잖아.”


새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고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의 말은 예언 같았다. 이미 정해진 결말을 알고 있는 자가 그 결말을 음미하듯 들려주는 느낌. 그가 날아가고 난 뒤에도 내 등껍질 속에서 계속 울렸다. 바람은 다시 시원하게 불었지만 몸은 겨울 동상이라도 걸린 듯 쓰라리고 아렸다. 말 한마디가 바람보다 더 차갑고 매서웠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살려고 악을 지르는 울음이 아닌 서럽고 두려움에 흐르는 울음. 마음은 꾹꾹 짓눌렸고 날개는 다시 내 등 뒤로 접혔다.


‘울 수 있을까?’

‘아니 울어야만 하나?’


그 질문조차 이제는 공포로 변해 있었다.


기운 없이 다시 조심스럽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줄었고 바람도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희미한 끈적임이 느껴졌다. 숨을 들이켰을 땐 공기마저 조용히 떨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내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미세한 실 같은 것이 내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았을 때, 그제야 보였다. 음침하고 규칙적으로 엮어 놓은 세계. 투명한 줄이 나무의 틈마다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그 중심에 거미가 있었다. 검고 번들거리는 그의 눈은 나를 향해 있었다. 여덟 개의 눈동자, 그 눈은 보는 게 아니었다. 계산하고 분류하고 결정하는 눈이었다.


그의 아래, 거미줄에 매달린 매미 한 마리가 있었다. 이미 죽은 지 오래인 듯, 몸은 바짝 마르고 날개는 쭈그러진 채 허공에 멈춰 있었다. 거미는 그것을 씹으며 내게 말했다.


“무서운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다들 처음엔 그러더군. 특히 울음도 내기 전의 것들은.”


그는 조용히 익숙한 동작으로 실을 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너도 울려고 올라온 거겠지? 대부분 그렇더라고. 하지만 울기 전에 사라지기도 한단다.”


경고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나의 가능성에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떨궜다.


“울고 싶어요. 하지만 울 수가 없어요.”


떨림과 함께 말이 새어 나왔다. 가슴에서 올라온 작은 고백. 이해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없었다.


“몸 안 어딘가 간지럽고 뜨거운데 막상 꺼내려고 하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요.”


거미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울지 못하는 매미라...”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고 문장의 끝처럼 울렸다.


“그건 무가치하다는 뜻이야.”


거미는 줄 위를 한 번 더 걸었으며 동작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울 수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야. 이 세계에서 네 소리는 너의 생명인데 내지 못한다면 넌 이미 죽은 거지.”

“그래도 울고 싶어요. 언젠가는…”


그는 나의 말을 잘랐다.


“희망은 통계에 들지 않아.”


저 말은 나를 단숨에 꺼버렸다. 희망은 이 존재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움직이지도 말고 소리 내지도 마렴. 너는 내 계산 속에서 간신히 살아가면 돼.”


공포에 질린 나는 온몸을 떨며 실을 끊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줄이 다리를 찢었고 날개 가장자리가 실에 걸려 뜯겼다. 하지만 고통보다 더 울지 못한 채 조용히 걸려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를 등지고 달아났다. 거미는 다행히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시체로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식사를 이어갔다. 나는 계산표에 들지 않는 수치였다. 그가 흥미를 끊는 순간 나는 다시 나무로 올라갈 수 있는 존재, 존재할 수 있었다.


거미줄에 찢긴 다리 하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나무껍질을 다시 기어올랐다. 남겨진 하나의 날개는 끈적한 실에 눌려 접혀 있었고 끝은 찢겨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흙먼지와 피 냄새가 목을 타고 올라왔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었다. 그때, 나무 틈 사이에 무언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순간 움찔했지만 그 생명은 곧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괜찮아? 많이 다친 것 같네.”


고개를 들어 찬찬히 저 생명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마귀였다. 얇지만 날카로운 손과 매서운 눈.


“누구세요?”

“나도 너처럼 여기 올라온 지 얼마 안 됐어. 그런데 몸이 많이 상했구나. 누가 그런 짓을 한 거니? “


그는 조용히 내 옆에 앉았다. 매끄럽고 조용한 말투. 눈빛엔 연민이 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저 말없이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마귀는 나의 찢긴 날개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만졌다.


“아프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선 다 그래. 처음 올라오면 다들 상처투성이야. 하지만 괜찮아, 울기만 하면 돼. 울음은 다 덮어주거든.”


그의 말은 위로처럼 들렸다. 그래서 더욱 안심이 되었고 몸을 기댈 수 있었다. 그는 내 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힘내. 너도 울 수 있어. 곧 날개가 펼쳐질 거야. 그러면 다 끝나거든.”


그러나 사마귀의 손이 나의 목 아래로 아주 미세하게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말이야.”


그의 음성이 변했다. 말끝이 갈라졌고 입가엔 얇은 미소가 번졌다.


“ 그 울음. 너한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


나를 껴안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마디마디가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날카롭게 내 몸을 눌려왔다.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있단다. 하지만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섬뜩한 얼굴로 바짝 다가왔다. 그의 두 눈은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췄고 그 안에 나보다 더 약한 존재들을 씹어 먹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왜 울고 싶은 거야? 그 울음 누구 들으라고 하는 거니?”


대답하지 못했다. 말이 나오지 않기도, 목을 조르고 있는 그의 손 때문이기도. 사마귀가 말하는 울음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처럼 들렸다.


“울지 마, 너 같은 애들은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게 세상엔 편하거든.”


조언이 아니었다. 경고였으며 위협이었다.


“아직 올라갈 준비도 안 됐잖아? 다리 하나 없고 날개도 반쪽인데”


그는 미소 지었다. 처음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연민은 사라지고 놀잇감 앞의 포식자 같은 장난기 어린 잔혹함이 가득했다. 힘든 몸을 일으켜 뒷걸음쳤지만 사마귀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는 내 고통을 충분히 맛보았다는 듯 천천히 돌아섰다.


“어디 가든 조심하렴, 여긴 울지 않으면 먹어버리거든.”


웃으며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은 다리는 후들거렸고 찢긴 날개는 바람에도 따가웠다. 위로로 다가와 내 울음의 가치를 묻고 찢는 자. 다시 조용히 잔잔한 바람을 들이쉬며 조용히 숨을 골랐다.


이제, 그 어떠한 손도 믿을 수 없었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다리는 여전히 절었고 한쪽 날개는 짖긴 채 마르지 않은 피에 달라붙어 있었다. 더 이상 숨기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모든 흔적이 상처였고 몸은 침묵 속에서 비명을 내고 있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자 공기가 달라졌다. 바람은 얇고 날카로웠고 이파리들 사이로 금속 같은 냄새가 퍼졌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으며 공중에서 무언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즈즈즈즈”


날카로운 날개 짓, 진동음. 익숙하기도 한 저 소리는 내 귀속을 파고들었다.


“그 꼴로 아직 남아 있네. 참 너도 독하구나?”


그의 말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말벌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의 찢긴 날개를 내려다봤다.


“쓸모가 없잖아, 그러데 왜 계속 여기에 있니?”


나는 썩지 못한 껍질 같았다. 고통은 더 이상 날카롭지 않았고 울지 못한다는 사실은 슬픔이 아닌 수치로 바뀌어 있었다.


“울 수도 없고 날 수도 없고, 넌 지금 무언가 흉내를 내는 중이야.”


그는 조용히 내 귓가에 속삭였다.


“울지 못하는 매미는 매미가 아니야, 소리 없는 죽음일 뿐이니깐.”


말벌의 말은 나의 미래일까, 내 안의 깊은 곳에 날카롭게 쿡쿡 찔렀다. 그는 반응 없는 나를 보며 흥미를 잃은 듯, 독침으로 툭툭 찌르며 사라졌다.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밤이었지만 어둠은 오지 않았으며 빛은 여전히 나무 위를 밝혀주었고 그 아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모두가 울고 있었다. 가지마다, 잎사귀마다, 다른 매미들의 울음이 쏟아졌다. 그 안에서 나는 없었다. 그저 그늘 속에 웅크린 소리 없는 작은 잔해일 뿐.


‘언젠가 울 수 있을 거야. “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지만 그건 지금 나에게 너무 먼 이야기였다.

이룰 수 없는 희망 사항이랄까.



이전 06화매미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