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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Mar 14. 2024

더 이상 뻐꾸기처럼 살지 않겠다.

마흔넷. 아직 늦지 않은 시작을 위하여

마흔넷. 많다면 많고 , 적다면 적다고 하기엔 조금 많은 나이.

요즘의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하고,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

그 좋아하는 맥주도 마다할 만큼 피곤하고 바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매달 들어오는 통장의 돈을 보면 흐뭇하고, 브런치에 올린 글에 라이킷이 찍히면 행복해진다. 거기에 구독자가 생겼다는 알림을 받으면 입이 헤벌쭉 벌어지곤 한다.


얼마 전 나의 일할 팔자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리며 이제는 내가 내 팔자를 사랑하게 된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나를 찾고 나의 삶을 선택해 살기 시작하면서 지긋지긋하기만 했던 나의 일할 팔자는 이제 행복한 삶의 일부가 되었다.


최근 글을 쓰며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주어진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갈 때 의욕이 생기고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그걸 깨닫는데 44년이 걸렸다.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건 뻐꾸기시계의 뻐꾸기처럼 살아가는 것과도 같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튀어나와 뻐꾹뻐꾹 소리를 내고는 다시 들어간다. 그걸 평생 반복한다. 이게 뻐꾸기의 조(鳥) 생이다. 

 하지만 우리는 뻐꾸기가 아니다. 나오고 싶을 때 문을 열고 나오는 되는 건데, 나는 그걸 깨닫는데 이렇게나 오래 걸렸다.


 물론 학교 다니며 공부하고, 대학을 나와 취직을 준비하고, 때 되면 결혼해서 사는 삶이 왜 아름답지 않겠는가.

 다만 그 삶이 내가 선택한 것이어야 했다. 그래야 내 삶을 더 아름답게 그리고 충만함을 느끼며 살 수 있다.

 시간이라는 물살에 휩쓸려 살아지는 대로 살다 보면 어느덧 '나'는 없어지고, 주어졌던 삶에 어울리는 '나라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물론 그렇게 영유하게 된 삶이 풍족하고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상황에 맞게 '만들어진 나'는 강하지 못하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삶에 대한 기준이 없고 기준이 없기 때문에 단단하게 중심을 잡기도 어렵다. 처음 삶을 선택했던 시작점의 미약함, 미진함에 대한 기억이 없으므로 작은 고난이라도 닥쳐서 무너지면 다시 시작점을 찾지 못하기 쉽다.

시작점은커녕 고난이라는 물속에 빠져 허우적 대기 십상이다.

 제일 끔찍한 건 죽기 전에서야 내가 왜 여기 있지? 난 왜 이렇게 살았을까? 하는 질문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흔한 말이고 어디선가 들어본 말들이다. 나도 무수히 들어봤고 읽어보았다. 하지만 진정 마음으로 이 사실을 깨닫는 데는 44년이 걸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생을 마치기 얼마 전이 아닌 인생의 중반 즈음에 알게 된 것이 어쩌면 내게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마흔넷. 많다면 많고 , 적다면 적다고 하기엔 조금 많은 나이이지만 나는 이제 꿈을 찾고 나의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노력 중이다. 비록 꿈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괜찮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죽기 전에 원 없이 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이전 글에서 나는 나의 일할 팔자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진짜 팔자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나는 내 팔자를 제대로 찾아가는데 44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뭐 어떤가, 별일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아직 내게 남아있는 시간도 그만큼이다.

나의 팔자를 실컷 즐기며 나의 남은 삶을 오롯이 나에게 쏟아붓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행복하게 글을 쓴다.

 마흔넷. 아직 늦지 않은 시작을 위하여





<사진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Aritha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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