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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Feb 26. 2024

죽 끓이는 갱년기

나의 슬기로운 갱년기 생활

아침엔 그리도 소담하게 눈이 내리더니 오후가 되니까 해가 반짝해서 눈이 부신다.

무슨 날씨가 이렇담? 하며 차 한잔을 들고 거실 큰 창 앞에 서서 눈부신 햇살을 한껏 받아본다.

날씨 변덕이 꼭 나를 보는 것 같다.

이제 갱년기가 왔는지 화가 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고 부글부글 끓다가도 금세 식어버려선 어느새 나를 반성하고 있다. 그러다 지금처럼 해를 받고 있으면 어느새 이렇게 평온해진다. 내가 봐도 이상한 데 남이 보면 '저 사람 참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이군." 하고 생각하게 생겼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죽이 끓을 때 어떻길래 이렇게 엉망인 상황에 인용이 되는 걸까.


잠시 죽 끓이는 걸 상상해 본다.

물과 불린 쌀을 냄비에 넣고 불 위에 올린다. 그런데 끓기 시작하자마자 하얀 거품이 후루룩 넘쳐버린다.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넘치기 전에 물을 붓거나 불을 줄여야 한다. 잠시 가라앉았던 죽이 다시 끓기 시작하면 이번엔 뜨거운 물거품이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몇 번이나 손에 거품이 튈 위험을 감수하다 보면 결국 걸쭉한 죽의 모습이 드러난다. 하지만 끝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냄비 바닥에 눌러 버린 죽을 박박 긁어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맞네. 언제 끓어 넘칠지 어디로 튈지 몰라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그 죽 끓는 상태가 요즘 나다.

 아이와 한참을 잘 놀다가도 갑자기 화가 솟구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아이가 말 안 듣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렇게 화를 낼 일도 아닌데,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화가 나를 장악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사춘기보다 무서운 갱년기라던데.. 아직 완경이 온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도 어느덧 40대 중반. 슬슬 나도 갱년기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갑작스럽게 찾아온 감정 변화에 나 자신도 당황스럽고 그 시간이 지나면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화내고 고집 피워도 '원래 저럴 때야. 시간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어른들의 이해라도 받을 수 있지, 갱년기는 '다 큰 어른이 왜 저래? 나잇값 좀 하지' 하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나도 그렇게 비난하고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당해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의 비난을 받았던 그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던다는 걸. 사춘기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인생의 단계이듯, 갱년기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인생의 또 다른 단계일 뿐이라는 걸. 그리고 누구나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제 난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앞서는 날이다.


나의 걱정에는 나에게 일어날 변화에 대한 걱정과 함께 남들에게 보일 나의 모습에 대한 걱정도 포함된다.

사춘기는 호르몬 변화가 생겨서 그런 거래. 하고 다들 이해해 주려고 노력한다.

저기, 갱년기도 호르몬 변화가 생겨서 그런 거입니다만.. 저도 이해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춘기는 새로운 호르몬이 몸을 장악하기 시작하며 생기는 변화의 시기라면, 갱년기는 몸을 장악했던 호르몬이 줄어들기 시작하며 생기는 변화의 시기라는 점이다.


 둘 다 급격한 신체의 변화에 몸도 마음도 힘든 기간이다. 하지만 솔직히 사춘기 아이들은 잃는 게 별로 없다. 물론 그들은 아니라고 반박하 갰지만 어쨌든 그들은 점점 총명해지고 빛나는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반면 갱년기는 점점 노화해 가는 과정이라 얻는 것 보던 잃는 게 많다. 총명했던 기억력은 자꾸 깜박거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유지되던 날씬한 몸에 어느덧 두툼한 뱃살이 잡혀간다.

 새로운 몸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이 힘들지 몰라도, 그 정신적인 상실감에 있어서는 갱년기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냥 좀 이해해 주면 안 되냐! 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현실적으로 갱년기 여성들이 이해를 받기엔 무리가 많다.

 흔히들 사춘기와 갱년기 모두 가족들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고 말하지만 생각해 보라.

사춘기 시절의 보호자는 부모다. 자식이 무슨 짓을 해도 받아줄 수밖에 없는 게 부모이며 자식들에겐 평생 을이 되는 게 부모다. 그런 부모가 보호자다. 당연히 이해받고 존중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갱년기는 어떠한가? 그들의 옆에는 보호자라기보다는 내가 보호해야 할 것 같은 남편과 자식들이 있다. 하물며 자녀들은 사춘기 청소년인 경우도 많다. 그들은 갱년기 엄마나 아내를 이해해 주고 지지해 주기보다는 엄마가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바랄 때가 더 많다. 이때까지 그렇게 살아오기도 했고.

 그래서 종종 엄마들은 폭발하고, 남은 가족들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네 엄마 이상해.', '엄만 요즘 말만 하면 짜증이야.' (이것들아, 나라고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 집의 문제는 약간 다른데 있다. 우리 집에는 사춘기는커녕 아직 아기티가 남아있는 다섯 살짜리 꼬맹이가 있다. 남편은 그렇다 쳐도 이 꼬맹이에게 엄마가 갱년기이니 이해해 줘! 하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린이집 방학이라며 소파에 누워 여유를 즐기는 다섯 살짜리를 보며 일찌감치 이해받는 걸 포기한 나는 대신 나에게 책을 선물했다.


'요즘 언니들의 갱년기'

'사춘기 딸 갱년기 엄마는 성숙해지는 중입니다'


서점에 갔다가 제목에 반해서 냉큼 두 권을 다 사 왔다. 나는 중고 서점 탐방을 즐기는 편인데 중고서점에서 풍기는 특유의 오래된 종이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래되고 눅눅한 종이 냄새가 마음을 설레게 할 때면 중고서점에 잊지 못할 추억이라도 있는 거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아쉽지만 그런 기억은 없다.) 나 갱년기 아냐? 하고 살짝 우울했던 기분은 책냄새와 구입한 책의 묵직함을 느끼며 금세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역시 갱년기 맞나 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가 젊음이라는 꽃을 피워내는 과정이라면 갱년기란 젊음이라는 만발했던 꽃이 지고 대신 성숙이라는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흔한 죽 한 그릇이 완성되는 데에도 끊임없이 저어주어야 하는  정성이 들어가는데 내 인생이 제대로 된 열매를 맺으려면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할 것인가.  

 그 과정을 가족이 도와줄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도움이 필수는 아닐 것이다. 결국 인생의 과정을 감당하고 거쳐가야 하는 것은 스스로이며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도움이 없으면 내 죽은 내가 저으면 된다.

  스스로 공부도 하고 책도 보면서 나를 좀 더 이해하고자 노력하다 보면 갱년기의 나조차 수많은 추억 중 하나로 남게 되리라 믿는다. 그때는 한 단계 더 성숙한 내가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있다.

  지금 나는 나의 슬기로운 갱년기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책 읽고 있는 와중에 자꾸 거슬림이 포착된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가 책 보는 사이를 틈타 TV로 유튜브를 돌려가며 보고 있다. 버럭!! 이 튀어나올 것 같지만 애써 심호흡을 해본다.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다르고 이론을 지키며 사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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