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모르는 정대만 같은 여자
나야 나, 나야 나
소박한 급여의 첫 번째 회사.
월급 떼먹은 두 번째, 세 번째 회사를 지나 취업한 네 번째 회사는 놀랍게도... 또 월급이 밀렸다. 와우!! 이 정도면 월급 못 받을 팔자인가!! 이것은 데스티니! 정말 굉장하구먼!
월급 떼이는 것도 경험이 쌓이니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이번엔 첫 달 밀리자마자 잽싸게 달아났다.
계속 이런 회사만 입사하다니. 한 번이면 몰라도 매번 이런 거면 내가 문제인가.
월급이 밀리거나 떼이지 않을 큰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직사이트를 살펴보니 좋은 회사들은 거의 서울에 있었고, 4년제 졸업한 사람만 이력서를 낼 수 있었다. 지금은 학력 제한 없는 회사들이 많지만 2000년대 초반엔 그렇지 않았다.
"4년제 졸업 안 하면 평생 돈 떼이는 회사만 가겠는데. 안 되겠어. 학교 가야겠다."
편입을 결심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먼저 부모님께 내 결정을 말씀드렸다. 그 고생을 하고도 애니메이션 학과에 다시 한번 진학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만화로 밥벌이가 되겠나? 다른 거면 몰라도 만화 하는 거면 학비 못 내준다. 니 돈 있으면 학교 가든지. 말리진 않을게."
계속 월급 떼이고, 받더라도 박봉이었던 걸 너무 잘 알았던 부모님은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포기할 거라 생각하셨단다. 하지만 나는 포기를 모르는 정대만 같은 여자였다.
아르바이트로 입학금만 모아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냈고, 프리랜서로 애니메이션 일을 해 용돈을 해결했다. 비록 그동안 월급은 떼였어도 일하며 쌓인 인맥 덕분에 프리랜서 일은 꾸준히 들어왔다.
부모님 돈으로 다닐 때와 내 돈으로 다니는 학교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예전엔 휴강하면 어깨춤을 추던 나였는데 이젠 휴강에 화가 났다.
내가 학비 버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휴강이라니! 악!!! 내 돈!!!
정말이지 열심히 살아낸 한 해였다. 진심이 통한 걸까. 이때부터 내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시던 부모님이 응원해 주시기 시작했다.
"포기할 줄 알았는데.. 이 정도 진심이라면 도와주는 게 맞지. 남은 학비는 우리가 내줄게. 열심히 해라."
눈물 콧물 쏙 빠지게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부모님의 지원 덕분이었는지 이즈음부턴 일이 술술 풀렸다. 부산에서 세 번이나 월급을 떼였던 터라 이번엔 부산 노노! 서울에 이력서를 냈고 운 좋게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입사하게 됐다. 부모님을 떠나 혼자 사는 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설레는 일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