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에 진심인 도시
비를 맞고 아파서 누워있으면서 든 생각은,
'빨리 나아야 놀 수 있을 텐데'였다.
마치 어린 시절 공터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기 위해 밥을 마시듯 먹었던 감정이랄까.
바르셀로나는 그런 곳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왔다.
까탈루냐로 독립하고 싶은 사람들이 깃발을 잔뜩 내걸고, 어딜 가나 비둘기들이 모여있으며, 소매치기가 가장 많다는 곳이다.
그라나다에서 마드리드를 거쳐 오기까지 6시간 반이나 기차를 탔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꼭 봐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몬주익 분수쇼였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하루에 1시간 30분밖에 하지 않는 이 쇼는 '세계 3대 분수쇼'라고 불리며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물의 춤을 감상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며, 주말을 걸쳐서 바르셀로나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다.
스페인 사람들은 분명 3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 3대 분수쇼를 보고 나니, 바르셀로나에는 3대 야경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산 중턱에 있는 요새인 '벙커'와 산 꼭대기에 있는 유원지인 '티비다보', '몬주익 언덕'이다.
분수쇼에 만족한 나는 몬주익 언덕은 낮에 가보기로 하고, 벙커로 향했다.
벙커는 젊은이들의 쉼터였다. 버려진 요새가 하나의 문화 공간이 되었고, 다들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차분히 앉아 있거나 춤을 추고 있었다.
바로 앞은 펜스도 없는 낭떠러지였다.
이 날카로운 시멘트 바닥의 끝자락에서 술을 먹고 춤을 추다니. 젊음을 보여주는 행위예술 같았다.
사람이 몰리면 당연히 소매치기가 기승하기 때문에 카메라와 지갑을 동시에 신경 쓰느라 정말 지쳐버렸다.
숙소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고, 다음날은 조금 여유롭게 다니려고 했다.
숙소는 바르셀로나 중심인 까탈루냐 광장 바로 앞이었다. 어디로 가든 이 광장을 지나야 하는데, 숙소를 이곳에 잡아 무척 편리했다. 파리에 샹젤리제 거리가 있다면, 바르셀로나에는 람블라스 거리가 있다. 명품 가게들로 가득 찬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바다로 향했다.
바르셀로나의 개선문을 지나, 벨 항구에 도착했다. 벨 항구에 있는 다리는 도개교라서, 운이 좋다면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운이 좋았고, 다리를 건너 바르셀로나 수족관 언저리까지도 구경했다.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날씨며 잔잔한 바닷가며 완벽한 하루였다. 여유를 더 즐기고 싶어,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향하려는 순간, 부산 사투리가 들려왔다. 세비야에서 만난 남매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서로 괴성을 지른다.
남매는 자전거를 타며 놀고 있었다. 도보를 애용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좀 더 특별한 여행을 만들고 싶어 했다.
함께 다니자는 말에 준영은 나에게도 자전거를 타보라며, 누나의 자전거를 내게 내밀었다. 누나를 등 뒤에 두고, 준영은 카메라 가방을 매보고 싶었다며 내 짐을 가져갔다.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모셔두었던 액션캠을 준영의 가슴에 달아놓고, 우리는 한 시간 정도 바르셀로나를 누볐다.
지금도 시간이 되면 종종 꺼내보는 15분짜리 영상이 있는데, 이날의 온도가 잘 담겨 있어 볼 때마다 따뜻함을 느낀다. 마침 자전거를 반납하러 간 곳은 내가 머물던 숙소의 1층이어서, 우리는 역시 만날 운명이었다며 길가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이들은 바르셀로나를 끝으로 여행을 마무리한다고 했다. 앞으로 40일 정도의 일정을 남겨놓은 나에게 안전을 기원했고, 나는 다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