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높은 도시 바르셀로나

몬세라트와 소년 합창단

by 양옙히

비를 맞고 아파서 누워있으면서 든 생각은,

'빨리 나아야 놀 수 있을 텐데'였다.

마치 어린 시절 공터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기 위해 밥을 마시듯 먹었던 감정이랄까.

바르셀로나는 그런 곳이었다.





IMG_5031_사본.jpg ▲ 구엘공원의 무료 산책로.

1시간이나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도착한 구엘공원에서 든 첫 번째 생각은 '큰일 났다'였다.

구엘공원을 감싸는 산책길은 무료인데, 내부로 들어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해 누가 앉더라도 편하다는 벤치에 앉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했다. 돈이야 여기까지 왔으니 얼마든 낼 수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나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입장을 위해 수 시간 기다려야 했다.


사실 산책길만으로도 구엘공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지만, 발길을 돌려 나만의 방법으로 길을 개척했다. 바로 망원렌즈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들어가지 못한다니, 밖에서라도 실컷 보겠다며 공원 곳곳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구엘공원도 티비다보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공유하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소리가 가까이 들릴 것처럼 선명했고, 공원의 상징인 도마뱀은 바다로 뛰어나갈 것처럼 굴었다.


IMG_5045_사본.jpg ▲ 구엘공원에서 바라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그렇게 가우디를 느꼈고, 기억했다.


다음날 날씨가 좋지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바르셀로나의 근교 도시인 몬세라트라는 절벽 도시를 구경하려고 했는데, 그곳에서 경치를 즐기기는 아쉽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몬세라트는 경치만 좋은 것이 아니라, 한번 결심한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몬세라트에는 한 수도원이 있다. 880년, 한 무리의 목동 아이들이 몬세라트 산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고, 마을 사제들은 이곳에서 마리아의 이미지를 발견해 훗날 11세기에 수도원을 만들어 순례자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빛을 발견한 목동 아이들을 기억하며, 14세기부터 음악 학교가 만들어졌고, 소년 합창단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었다.



IMG_5106_사본.jpg ▲ 몬세라트에 내리자마자 역 앞에서 찍은 사진.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2시간을 기차로 타고 가, 산악기차로 갈아타야 했는데, 이때 그라나다에서 예상치 못한 '약속된 역'에 내렸을 때 내게 귤 2개를 쥐어주었던 청년을 만났다. 참 이것도 우연이라며 산악기차에 나란히 앉았다. 정상에 내리자, 안개가 가득했다. 비도 쏟아졌는데, 앞은 낭떠러지기 때문에 한 신부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차놀이를 하듯 수도원으로 들어왔다.


나는 사실 성당도, 교회도 다녀봤고, 불교 학교를 다녔지만 신앙과는 거리가 멀어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수도원에 들어가는 순간 이래서 신을 믿는구나 싶었다. 그 옛날에 1000m가 넘는 절벽 위에 돌을 날라 이 건물을 짓고, 기도를 위해 오르는 마음에 신이 없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그만큼 수도원은 웅장했고, 엄숙했고, 화려했다.


IMG_5118_사본.jpg ▲ 수도원의 내부.
IMG_5123_사본.jpg ▲ 소년 합창단이 준비하는 모습.


▲ 소년 합창단의 모습.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려봤는가?

이날 나는 눈물이 나는 것을 힘겹게 참았다. 변성이 되지 않은 미성은 신을 찾아 수도원을 울렸고, 모든 이들의 입을 막고 박수 소리조차 낼 수 없게 만들었다.


합창단을 관리하는 역할이자, 관광객들을 맞이하던 한 관계자는 무려 4개 국어를 하며 관광객들을 환영했고, 합창단의 노래를 끝으로 바르셀로나로 조심히 돌아갈 것을 당부했다.

사실 내려가는 길에 날씨가 조금 개는 것 같아 청년과 함께 산을 반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는데 허탕이었다. 이런 고생을 해서였을까, 숙소에 돌아와서 엄청난 몸살 기운을 느꼈다.

그 높은 곳에서 비를 맞고 지난 여행의 피로가 누적되었던 것 같았다.


비를 맞고 아파서 누워있으면서 든 생각은,

'빨리 나아야 놀 수 있을 텐데'였다.

마치 어린 시절 공터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기 위해 밥을 마시듯 먹었던 감정이랄까.

바르셀로나는 그런 곳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방문했던 벙커, 티비다보, 구엘공원, 몬세라트 모두 높은 곳에 위치했다.

높은 곳을 좋아하면 정복 욕구나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라는데, 나는 그보다 다른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에 감동했다.

바다를 공유하고, 수 세기 동안 전통을 지키며 감동을 전하고,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도시.

내게 바르셀로나는 그런, 높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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