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자갈의 반짝임
니스는 짧지만 강렬했다.
언젠가 붉은 바다가 검은색이 되는 순간을 봤다면, 나와 같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짧았기에, 강렬했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했다.
바르셀로나를 지나 베니스를 가려고 했다. 유레일 패스를 60만 원에 사서 가져갔기 때문에, 기차를 이용한 여행을 추구했다. 혹자는 한국인은 유럽에서도 노동자 같다고, 누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여행을 하냐는데, 내 이야기였다. 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의 대전 격인 리옹을 거쳐 니스에 도달하기까지 7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오전은 이동의 시간이었다. (나중에 리옹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니스는 굉장히 작다. 니스의 중앙역 이름은 'Nice Ville'로, 도시보다는 마을에 가까운 느낌이다. 역에서 바다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며, 도시 중심부는 트램 2대가 다닐만한 너비로 널찍하게 펼쳐져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유럽의 돌길을 지나 100년도 더 된 호스텔에 도착했는데, 그 이름은 Villa Saint Exupery Beach Hostel. 우리말로 빌라 생텍쥐페리 비치 호스텔이다. 눈치챘겠지만, 유명 소설 어린 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의 이름이다.
호스텔은 100년도 더 된 수도원 교회를 리모델링하여 1층엔 펍과 리셉션, 위로는 객실인데, 스페인을 지나 처음 국경을 넘은 만큼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 우선 모든 화장실은 공용이었고, 샤워실은 화장실 안 쪽의 커튼을 치면 완성되었다. 즉,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사생활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참 개방적인 공간이구나 하며 짐을 풀고 바다로 향했다.
숙소 앞은 니스의 중앙광장 격인 마세나 광장이었다. 체크무늬 바닥에 붉은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약 10m쯤 피아노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돌아가며 연주했다. 우리나라에도 종종 피아노를 마주할 수 있지만, 3년 뒤에 다시 방문했을 때도 이 피아노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 누군가가 관리를 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며 나오던 청년과 당당한 걸음으로 피아노에 앉던 소녀의 손가락 춤을 즐기다가 바다로 향하던 발걸음을 이어갔다.
겨울에 여행을 하면 야경만 기억에 남는다. 해가 3시부터 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전에 부지런히 도시 이동을 하는데, 니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노란 하늘이 점차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5km나 이어진 니스 해변을 걸었다.
니스 해변의 가장 큰 특징은 동그란 자갈이 모든 해변에 걸쳐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서해와 달리 갯벌의 개념이 없고, 바다에 아주 가까이까지 보행로를 만들어 자갈들은 매 순간 파도와 싸워야 했다. 그래서 모든 자갈들은 자신을 뽐내며 둥글고 밝게 빛을 냈으며, 그것이 수 km에 달해, 해변이 반짝였다.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비수기 여행의 장점은 사람이 없는 관광지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넓은 해변에 앉아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옆에 앉아 알 수 없는 불어로 인사를 건넸다. 나도 목례를 하며 자연스럽게 우리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봤는데, 나는 이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라나다에서부터 연락을 이어갔던 형을 만났다. 신라면을 답례로 줬던, 엄마보다 5살 어린 그 형이다. 니스를 끝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기에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다. 숙소 1층은 투숙객이라면 외부인과 함께 들어와도 되는, 개방된 펍이어서 음식을 사서 그곳에서 같이 맥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메뉴는 치킨이었다.
숙소로 가기 전 해변에 있던 큰 언덕에 올라 마지막 저녁 공기를 마신 후, 내려와 치킨을 먹으며 유럽에서의 작별 인사를 했다. 이후에도 많은 인연을 만났지만, 당시에도 느낀 감정은 장기여행의 가장 큰 단점인 아쉬움이었다. 나는 여전히 남아있어야 하는데, 떠나는 이들의 배웅을 해준다는 것은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니스의 첫날밤은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