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도 사랑할 줄 안다.

‘그녀의 손길’

by 서편

“쓰읍··· 후···”


오늘도 나는 담배를 피운다.

얼마 전, 스물여섯 번째 살인을 끝냈다.


피해자는 젊은 남자였다.

겉보기엔 멀쩡한 대학생이었겠지만,

속은 썩은 놈이었겠지.


사람들은 묻겠지.

‘그 사람을 왜 죽였어요?’

하지만 난 대답하지 않는다.


사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감정이 없다.

아니, 느껴본 적이 없다.


기쁨. 슬픔. 사랑. 기대. 희망.

그 모든 걸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두 가지.

분노, 그리고 절망.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내가 태어난 이 현실에 대한 절망.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는 늘 그랬듯,

사진 한 장을 현장에 남기고 사라졌다.

피해자의 신상, 유기된 장소, 그리고 내 사인.

그게 내 방식이다. 조용히, 정갈하게.


하지만···

이번엔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엔··· 좀 꺼림칙하군.”


경찰이 내 흔적을 따라잡을 리 없다고 믿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계속 뒷목이 서늘했다.

누군가 따라오는 느낌.

아니,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


그때였다.

어딘가서 들려온 ‘쿵’ 하는 소리.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업보는 돌고 돈다.”


정확히 그 순간,

눈앞이 어두워졌다.


**


며칠 뒤


TV 속 뉴스 앵커가 긴장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인천 부평구 부개동, 실종됐던 20대 청년 이민서 씨의 유기된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결정적 단서는··· 피해자의 사진과 정보가 담긴 ‘봉투’였습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콜라 한 모금을 마신다.

늘 그렇듯, 아무 감정도 없이.


“경찰은 해당 봉투에서 지문을 확보했고,

그 지문은 동일 인물로 여러 차례 확인된

정황이 있습니다.”


“···지문?”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콜라 캔을 놓쳤다.


“수사당국은 그가 자발적으로 보낸 것으로 보이는 이 봉투에, 장갑을 끼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진동을 울린다.


[비공개 번호]

‘사진 봉투 속 지문, 네 거더라. 김도윤, 너 끝났어.’


“젠장···”


나는 벌떡 일어났다.

한 번도 실수한 적 없었는데, 이번엔··· 실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적을 남긴 적 없던 나였는데,

그 사진 봉투 하나가 모든 걸 망쳤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곧이어 익숙한 목소리.


“김도윤!! 너 집 안에 있지?”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문 너머의 소리가 심장을 조여왔다.


문 틈으로 비치는 그림자.

그림자의 수는 하나가 아니다.


‘경찰이다···’


익숙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가 쫓긴다. 지금 이 순간, 진짜로.


나는 침착하게, 그러나 빠르게 움직였다.


서랍 속 비상 가방.

그 안에 현금, 가짜 신분증, 칼,

그리고 증거를 없앨 라이터 하나.


문이 흔들린다.


“도윤 씨, 협조해 주세요.

지금 이 문을 안 열면, 강제로 진입합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순간, 번개가 한 줄기 내리쳤다.


‘콰직!’


그리고—

모든 것이 흰빛으로 일그러졌다.


**


이슬비가 내리던 새벽이었다.

산자락 아래 흐드러진 풀잎 사이로,

약초가 몇 포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버지 약을 꼭 구해올게요···”


한설은 치마자락을 걷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의 기침이 심해졌고,

약초가 아니면 버티기 힘들었다.


작은 손에 들린 바구니가 절반쯤 찼을 즈음.

숲의 가장자리에 다다랐을 때였다.


무언가가 쓰러져 있었다.


“···사람?”


한설은 경계하며 다가갔다.

그 남자는 피투성이에 가까운 몰골로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숨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낯선 옷, 낯선 머리 모양, 낯선 분위기.


‘어디서 온 사람이지···’


심장은 두근거렸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한설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가 고통에 찬 숨을 몰아쉬는 걸 보자,

속으로 외쳤다.


“살아있어··· 다행이다.”


한설은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기였다.

열이 나는 듯 안 나는 듯, 모호한 감촉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 좀 차려요···”


한설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다시 한번 말한다.

그러나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미동도 없었다.

숨결만이 가느다랗게 이어지고 있었다.


“혼자 여기서 쓰러져 있던 건가요···?”


그녀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멧돼지나 도적이 나올지도 모를 산중.

더 두면 위험했다.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


한설은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작은 체구의 그녀에게는 벅찬 무게였지만,

그녀는 끝까지 남자를 끌어안듯 일으켰다.


“조금만 참아요. 금방··· 따뜻한 데로 데려갈게요.”


비는 여전히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


희미하게 퍼지는 풀냄새.

그리고··· 낯선 손길.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머리는 여전히 묵직했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어디지··· 여긴···’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흙길, 젖은 풀잎, 나무, 그리고—

내 어깨를 부축하고 있는 여자.

검은색 댕기, 소박한 옷차림, 그리고 단정한 눈매.


“···누구야, 당신.”


목소리는 갈라졌고, 내 자신조차 낯설게 들렸다.


그녀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다가도,

곧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깨어나셨네요. 다행이에요.”


“···여긴, 어디야.”


“산중이에요. 약초 캐러 왔다가,

우연히 당신을 발견했어요.”


나는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고층 빌딩도, 차 소리도, 핸드폰 신호도 없다.

모든 게··· 이상했다.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지금··· 무슨 시대야.”


그녀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심스럽게 답했다.


“지금이요? 정확한 해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세도정치가 시작된 해쯤이라고 하더군요.

왜 그러세요?”


조선?


나는 웃음도,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건 꿈이 아니다.

정확히 느껴졌다.

이곳은 현대가 아니었다.


**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옷자락을 걷었다.

팔과 옆구리에 멍과 상처가 퍼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다 굴러 떨어진 사람처럼.


“상처가 깊진 않아요.

그래도 흙이 묻어서 덧날 수 있어요.

조금 따가우실 겁니다.”


그녀는 찬물에 약초를 씻어내고,

손끝으로 다정하게 상처를 닦았다.


나는 눈을 반쯤 뜬 채,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장은 이상하게도, 느리게 뛰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따뜻하지···’


그녀는 내 새끼손가락에 살짝 피가

배인 것을 보고 놀라듯 말했다.


“이런, 손끝이 다치셨네요.”


그녀는 급히 천조각을 잘라 그의 손을 감쌌다.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움찔했다.


“건드리지 마.”


“···죄송해요. 치료가 불편하셨다면···”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아냐. 그냥···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그녀는 그 말에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죠. 이 마을 사람들도 제 손길을 처음엔 낯설어하곤 했으니까요.”


방 안엔 약초 냄새와 조용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상처를 정리한 그녀는

조그마한 사기 그릇에 죽을 담아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배가 고프시진 않나요?

이건 어르신들께 자주 해드리는 죽이에요.”


나는 조용히 죽을 받아들었다.

한술, 두술.

놀라울 정도로, 삼키는 게 편안했다.


그녀는 내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 나라 분이세요?”


나는 숟가락을 멈췄다.


“나라?”


“예. 말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조선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해 보여서요.”


나는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라’라니.

뭐라고 해야 하지.


“···한국, 이라는 나라에서 왔어.”


“한··· 국? 처음 들어보는 나라네요.

그 나라에도··· 이렇게 비가 오나요?”


나는 피식 웃었다.


“비는 오지. 근데,

이렇게 대화가 통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이상한 건가요?”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게 아니라···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좀··· 꿈같아서.”


“그럼 이 꿈, 오래오래 꾸세요.

전··· 여기에 있어 줄게요.”


순간, 나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에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밤은 조용했다.

창 너머로 희미하게 빗소리가 들려왔고,

방 안엔 작은 등잔 하나만이

은은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팔을 베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미쳤지··· 내가 진짜 조선에 와버리다니.”


나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며 혼잣말을 뱉었다.


“그냥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고,

고통도 분명했다. 손등에 남은 상처도,

여전히 욱신거리는 머리도.


나는 고개를 돌려 방 한켠에 놓인 조약돌 무늬

그릇과 나무로 깎은 숟가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여자.”


묘하게 따뜻한 눈빛, 조심스러운 말투, 낯선데 익숙한 손길.


“왜··· 날 아무렇지 않게 도와주는 거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세상 누구에게도 믿음을 주지 않았던 나였기에,

이 낯선 친절은 오히려 불편했다.


“···이상하네. 여긴 모든 게 이상해.”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는 이불을 다시 얼굴 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쁘진 않아.”


한줄기 웃음이 흘렀다.

그건 어쩌면, 처음으로 느껴보는···

‘안도’라는 감정이었다.


다음 날, 조용한 아침.

나는 이불을 털고 일어났다.


어젯밤, 그녀의 따뜻한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낯선 감정이 불편하게 맴돌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이상한 곳, 낯선 시대.


도윤은 확실한 무언가를 잡고 있어야만 안심이 됐다.

나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를 뒤따랐다.


그녀는 오늘도 약초를 캐러 나가고 있었다.

고요한 숲길,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주머니 속 작은 스카프를 만지작거렸다.


‘지금이야.’


그 순간, 나는 조용히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모든 계획은 이미 머릿속에서 수십 번 그려졌다.

이제 실행만 남았다.


여기는 조선 시대.


이 세상에 CCTV도,

지문 감식도, 범죄 기록도 없다.

내가 저지르는 이 범행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녀 하나쯤 사라진다고,

세상이 흔들릴 일은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문득,

이 낯선 시대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이상하지?

전깃불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누구 하나 마스크도 안 쓰는 촌구석인데.


그런데, 오히려 숨이 트였다.

현대에선 매일같이 경찰이, 뉴스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찌르고 조여왔다.

숨을 쉬는 것조차 죄책감처럼 느껴졌고,

누굴 죽이든, 살든 결국엔 이 도시는 나를 죽이려 했으니까.


하지만 여긴—

조선은 나를 모르잖아.

내 이름도, 과거도, 기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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