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마스크

1화 - 낯선 집

by 서편

소년은 소녀의 뒤를 따라 비에 젖은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걸음은 비틀거렸고, 눈은 자꾸만 흐려졌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했다.


이 골목, 이 담벼락, 저 가로등.


‘여기… 예전에…?’


아무리 기억이 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가슴이 조여왔다.

호흡이 갑자기 빨라졌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잠깐만요… 여기가… 여기가 왜…”


소년은 소녀를 향해 손을 뻗으려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잠깐, 여기 앉아요!”


소녀가 급히 달려와 그를 붙잡았다.

소년은 끝내 비에 젖은 채로 다시 쓰러졌다.


———


“으…”


소년은 눈을 떴다.

희미하게 퍼진 따뜻한 조명, 포근한 담요의 감촉, 그리고 낯선 천장.


‘여긴… 어디지?’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방 한편에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소녀가 그를 발견했다.


“아! 드디어 깼어요.”


소녀는 책을 내려놓고 다가왔다.

걱정과 안도, 그리고 어딘가 모를 반가움이 섞인 미소였다.


소년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아직도 몸이 무거웠다.


“기운이 아직 없을 거예요. 너무 무리했어요. 쓰러졌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는… 왜 쓰러진 거죠?”


“아까 골목에서 숨을 제대로 못 쉬셨잖아요. 혹시… 공황장애 같은 거 있으세요?”


소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공황장애? 아니, 그것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소녀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괜찮아요. 천천히 생각하면 떠오를 수도 있어요. 일단 몸부터 회복해요. 차 마실래요?”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방을 나서며 문득 말했다.


“아, 여기는 제 집이에요. 조금 놀랐죠? 이름은… 백가은이에요.”


소년은 다시 그 이름을 되뇌었다.


백가은.


또다시 어딘가 낯익은 느낌.

하지만 이번에도, 그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낯익은 느낌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이 집.

이 공간 어딘가… 익숙했다.


잠시 후, 소녀가 찻잔을 들고 다가왔다.

소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 때문에 긴장하는 것일까..?‘

소년은 생각한다.


“허브차예요. 심신 안정에 좋대요.”


소녀는 소년에게 심신의 안정에 좋은 허브차를 건넸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잔을 받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소녀는 살짝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에이~ 설마요. 만약 만난 적이 있다면… 우린 운명이겠네요?”


그녀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아마 제 얼굴이 흔해서 그렇게 느끼신 걸 거예요.”


소년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가요. 하하…”


잠깐의 정적.

소년은 그 분위기를 깨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까 읽고 계시던 책, 어떤 책이었나요?”


소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러더니 이내 조용히 일어나 책장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꺼내며 말했다.


“《종의 기원》이라는 소설이에요.”


소년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그 제목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종의 기원… 사이코패스 유진의 이야기…’

‘왜 하필… 그 책이지?’


그는 애써 표정을 숨기며 입을 열었다.


“아, 저도 알아요. 그 책… 예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소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곧이어 그녀는 왼쪽 입꼬리만 슬며시 올리며 말했다.


“아, 진짜요…? 그럼 전반적인 스토리도 알고 계시겠네요?”


소년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코패스인 유진의 이야기죠. 조용하지만 잔인하게 타인을 살해하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마치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입을 열 듯하던 그녀는, 이내 입술을 다문다.

뭔가 말하려던 것. 그러나 꿀꺽 삼켜버린 그것.


짧은 침묵이 흘렀다.

공기 속엔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는 그 순간, 소녀의 표정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을 읽었다. 하지만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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