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밤. 한 소년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살고 싶어… 난 살고 싶다고…”
힘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만큼은 확실했다.
“제발… 더 빨리… 조금만 더 버텨줘, 다리야…”
소년의 다리는 이미 부어올라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살기 위해, 그저 살기 위해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때—
“쿵!”
미끄러웠다.
빗물이 가득 고인 도로에서 중심을 잃은 소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얼한 손바닥, 시큰한 무릎.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서려 했다.
그런데…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가고, 의식이 흐릿해졌다.
그렇게 소년은 빗속에서 쓰러졌다.
⸻
“저기요… 괜찮아요? 눈 좀 떠봐요!”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소년은 어둠 속에서 떠다니듯 가라앉았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목소리에 이끌려 서서히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누군가가 보였다.
긴 머리카락, 걱정스러운 표정.
그를 내려다보는 한 소녀였다.
“여기가 어디죠…? 나는… 누구죠…?”
소년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도,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전봇대 근처에 쓰러져 있었어요… 괜찮으세요? 혹시 어디 사시는지 기억나세요?”
소녀는 신기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 이렇게 계시면 안 돼요. 비도 많이 오는데… 제 집이 가까워요. 같이 가실래요?”
소녀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소년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나랑 아는 사이인가?’
눈앞의 소녀는 자신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의심이 들었다.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걸요. 그리고, 제가 왜 이러고 있는지부터 알고 싶어요.”
소년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떨렸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소녀는 가만히 소년을 바라보다가, 곧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자기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백가은이에요.”
백가은.
소년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무언가 스치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이름.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녀는 계속 말했다.
“일단 여긴 너무 춥고, 비도 많이 오니까… 제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요? 따뜻한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면, 혹시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소년은 소녀의 말을 곱씹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비가 점점 거세졌다. 차가운 빗방울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을 스쳤다.
하지만 결국, 소년은 소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일단 비부터 피하는 게 우선이겠죠. 잠시만 신세 좀 질게요.”
소년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소년을 이끌었다.
“좋아요! 이쪽이에요, 금방 도착할 거예요.”
소녀와 함께 걸음을 내딛는 순간, 소년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소년은 소녀의 뒤를 따라, 빗속으로 걸어갔다.
에필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