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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 리 Jul 12. 2024

어느 스파이의 죽음

메이요~ 꽁산당~ 메이요~ 씬 중궈~

"푸드덕, 푸드덕 "


어딘가에서 비릿한 냄새가 계속 나는 것 같더니 아니라 다를까 한 무리의 비둘기 때가 일제히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는 것 같다. 그리고는 병실 커튼 위에 빙 둘러앉아 누워있는 나를 마치 쏘아보듯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새벽안개가 조금씩 걷히듯 시야가 점차 밝아져 오자 나는 마주한 그 흉물스러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드디어 잠에서 깨어난다.

나를 14일간의 죽음 같은 긴 잠에서 깨운 것은 군데군데 털이 빠진 채 하나 같이 부리 바로 위에 커다란 눈이 한 개만 달려있는 기괴한 왼눈박이 비둘기들이었다.


식은땀으로 등과 얼굴이 온통 적셔진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미 죽어 누군가 내 시체를 이집트 미라처럼 꽁꽁 싸매놓은 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입에 씌워진 산소마스크를 시작으로 목, 배 등 몸 여러 곳에 연결되어 있는 이름 모를 병원 튜브를 보고 나서야 내가 살아있고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어딘가 세게 부딪친 후 '어질어질' 상황파악이 잘 안 되는 것 같이 내가 누군지 또 왜 이곳에 와 있는지는 좀처럼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매일 계속 내 손을 잡고 흐느끼고 있다고 것을 그리고 그것이 아내임을 알아차렸을 때 나의 기억의 조각들이 서서히 퍼즐을 맞춰어 가기 시작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선잠 속에서 계속 꿈속을 헤매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꿈이 아니라 내 기억의 파편들 속인 것 같다  


LA공항 이민국 카운터다.

한국 성모병원에서 찍은 미국이민수속용 흉부 엑스레이 사진이 담긴 노란색 봉투를 들고 이곳을 통과했던 아주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정확히 이해는 못했지만 까까머리 중학생인 나에게 넉넉해 보이는 몸집의 히스패닉계 이민국 아줌마가 웃으며 영어로 농담을 건넸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마 너도 이제 곧 핫도그를 먹으면 LA 다저스 야구 경기를 즐기게 될 거라는 그런 뜻인 것 같았다.


“Welcome Back Home!”


초췌한 모습의 남성이 미국여권과 함께 내민 비행기 티켓을 보던 동양계 이민국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귀환을 반겨 준다. 같은 까까머리 이긴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이미 중년을 훌쩍 넘어 보이는 모습이다.


그래, 이제야 생각이 난다! 

나는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분명 얼마 전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앙상하게 마르고 삐죽삐죽 머리카락이 삐져나온 초라하기 그지없는 까까머리꼴을 해가지고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몸은 어차피 반응을 안 해 어쩔 수 없지만 나름 돌아가기 시작한 머리를 힘껏 짜내여 또 다른 기억의 실타래를 찾아보려 했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것 같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급 피곤해지며 또 잠에 빠져든다.

내 몸에 부착된 수많은 장치들에서 울리는 알 수 없는 기계음들이 마치 나에게 최면을 거는 듯하다.  


! 얼! 싼! 이! 얼! 싼!

메이요~ 꽁산당~ 메이요~ 씬 중궈~ (有共党,有新中)

 

우리들은 구호에 맞춰 공산당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잘 나가는 신 중국은 결코 없었을 거라는 내용의 공산당 '자화자찬' 가를 힘차게 부르며 행진을 시작한다.  

코너 코너마다 서있는 초대형 간판에는 너무나 인자한 모습의 시진핑 주석께서 우리의 출근길을 배웅해 주신다. 그리고 그 위로는 시뻘건 바탕의 중국 오성홍기가 새벽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일본이 만주국 시대에 만들었다는 티베이 감옥이다.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폐교를 연상케 하는 다 쓰러져 가는 붉은 벽돌의 낡은 작업장이 보인다 

그  작업장의 화장실이 보인다. 화장실이라고 부르기에도 뭐 한, 그냥 창고 같은 공간에 시멘트로 대충 만든 긴 도랑이 하나 있을 뿐이다. 죄수들은 그 도랑 턱을 밟고 서서 혹은 밟고 안아 대소변을 처리했다. 배수기능이 없으니 도랑 안쪽에는 오물이 그대로 남아 구더기가 꼬물대고 악취가 진동했다. 나란히 벽을 보고 서서 소변을 보는 죄수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반대로 앉아 대변을 보는 죄수의 모습이 보인다. 

주위의 소변이 모두 자신의 엉덩이로 튀는데도 아랑곳없이 볼일을 보고 있다.

204호실, 그 작고 낡은 방에는 마치 그곳에 너무 오래 있어 방과 함께 낡아 버린 듯 보이는 10명의 죄수가 있다. 그리고 방 입구 벽에는 그 죄수들의 프로필이 빛바랜 증명사진과 함께 붙어 있었다. 프로필에는 이름, 죄명 그리고 형기가 기재되어 있었는데 우리 방에서 아라비아 숫자로 형기가 적힌 수감자는 나 그리고 마약판매로 18년을 받은 내 수감동기 오현동, 딱 둘 뿐이다.  

그 외 모두의 형기는 숫자 대신 ‘사형집행유예’ 아니면 ‘무기’라는 한자로 적혀 있다.


가위에 눌려 간신히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꿈쩍도 안 하는 몸을 어떻게 던 움직여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안간힘에 입술을 너무 꽉 깨문 탓인지 입안에 피맛이 가뜩 느껴진다.

나는 이곳이 더 이상 중국감옥 아니고 그래서 새벽같이 작업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은 뒤늦게 인지하고 나서야 겨우 발작을 멈추었다. 

병원 측에서는 단순한 뇌전증(간질)으로 알고 그때마다 약을 투여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나의 발작증세는 중국 감옥에서 겪었던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꼬리 빵즈 새끼! 내가 조선말 하지 말라고 그랬지!”

 (꼬리 빵즈는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조선사람을 비하해 가리키는 말로 대충 고려의 거지새끼라는 뜻이 있는 비속어다)  

190cm가 넘는 거구 왕 경관의 주먹질이 바로 시작되고, 중국 감옥에서만 10년을 넘게 보낸 탓에 너무나 빈약해진 탈북자 철남 씨는 코피와 함께 채 삼키지 못한 밥풀을 입안에서 뿜으며 흙바닥을 긴다. 그 상황을 말리던 나에게 날아든 왕경과의 무자비한 전기봉의 타격감과 한껏 두들겨 맞고 쓰러진 나의 뺨 위로 느껴지던 그  축축한 땅바닥의 촉감과 내음. 


띠~즈구이~ (제자규)

  무  후~ 잉  우  환~  (부모님이 부르시면 ….)

  무  밍~ 씽  우  란~  (부모님이 명하시면 ….)


마치 전깃줄에 앉은 참새처럼 엉덩이만 살짝 걸칠 수 있는 뾰쪽한 벤치에 앉아 하루 종일 경관의 욕설과 폭력을 참아가면 공자 맹자의 책들을 외우고 또 낭독해야만 했던 지긋지긋했던 징벌방.

이런 모든 기억들이 꿈속에서 스쳐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발작이 동반되었던 것 같다.  


결코 유괘 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나는 매일매일 그렇게 발작과 더불어 조금씩 기억을 되찾아갔다.

갑자기 집과 회사로 들이닥친 중국 공안과 특무활동혐의로(스파이 활동) 체포되어 받았던 수많은 밤샘 심문들, 가족을 비롯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수감되었던 기약 없던 간수소 생활, 그리고 최고의 흉악범들이 모인 만주 티베이 감옥의 끔찍한 장면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의 기억은 마치 그 감옥의 담장을 넘지 못하는 것처럼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백내장 환자의 안구처럼 체포 이전과 출소 후 기억들은 모두 뿌옇게 토막 난 영상들로 순간순간만 떠올라 좀처럼 접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매일 밤 굳어 버린 내 몸을 주무르고 눈을 마주치며 계속 무슨 얘기를 걸어오는 그녀가 나의 아내임은 분명 인지가 되는데 그녀와의 어떠한 사소한 기억조차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안타깝게 그녀의 목소리도 마치 큰 종에서 나오는 진동음처럼 들려 전혀 주파수를 맞출 수가 없었다.  

누군가 며칠에 한 번씩 한밤중에 사람 키보다 훨씬 큰 기기를 끌고 병실로 찾아왔다.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기기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인공 투석기였다.

간신히 깨어나긴 했지만 혼수상태 기간이 너무 길어서 인지 여러 장기가 망가졌는데 신장도 그중 하나였다. 혈액의 노패물을 걸러내는 장기가 모두 망가졌으니 인공으로 걸려내는 수밖에 없었다. 쇄골 근처에 구멍을 뚫어 평균 4시간씩 피를 뽑아 노패물을 걸려내고 다시 주입시키는 과정인데 이 투석을 시작하며 난 늘 극심한 근육경련으로 다시 죽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했다. 

평소에는 별 감각도 없던 장딴지 근육들이 비비 꼬이면서 극심한 고통이 동반되었고 그 고통이 끝나면 나는 바로 녹초가 되어 죽은 듯 또 어지럽게 꿈속만을 헤매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주위 모습으로 보아 중국 침대칸 열차 안인 것 같다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하죠, 넉넉지는 않아도 둘이 먹을 만합니다.”  


말쑥하게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내 나이 또래 사내였다. 사투리를 사용했지만 중국에서 접하는 조선족 억양과는 또 달랐다. 그리고 난 그의 왼쪽 가슴에 달린 붉은 배지를 봤다. 오성기가 그려진 중국 공산당 배지가 아닌 북조선의 김일성 배지였다.

도시락을 양분해 뚜껑 위에 내 몫을 이미 차려 놓은 상태였다. 자신은 젓가락을 그리고 나에게는 삼각형 모양으로 접은 냅킨 수저집에 넣은 숟가락을 세팅해 놓았다. 

사양하기는 이미 곤란할 정도였다. 옛날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은빛 양은 도시락에는 삶은 달걀, 장조림, 멸치볶음 등 나에게도 꽤나 친숙하고 먹음직한 반찬들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라고 모르는 거 아니죠.

핵미사일 있다고 정말 우리가 쏠 수나 있겠어요.

그냥 이렇게 라도 해야지 앉아서 그냥 당할 수만은 없지 않겠어요”


식사를 끝내고 술을 마셨는지 제법 취기가 올라 혀가 살짝 돌아가기 시작한 그가 답답한 듯 그의 조국을 변호하고 나선다.


“잘 압니다. 우리도 우리가 사는 꼴 ….

그래도 사는데……뭐…. 밥 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는 거죠… “



순간 장면이 바뀐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 웅성 대며 모여있다. 

주위를 보니 미국의 어느 공항 터미널로 보인다.

유리문을 통해 터미널 밖에  K-9 셰퍼드를 끌고 다니면 수색을 하는 미국경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무리의 누군가가 "젠장, 19번 게이트!"라고 소리치자 무리의 사람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들쳐 매고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게이트를 빠져나와 미 국무국 요원들에게 둘려 싸인 채 터미널 밖으로 나가고 있다.

"조명록이 저기 있다!"는 누군가의 외침이 있자 사방에서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그는 터미널 밖에 이미 대기시켜 놓은 검은색 suburban 차량에 몸을 싣고 차량은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공항을 빠져나간다. 그 뒤를 또 다른 검은색의 차량들이 줄이어 쫓아 달리기 시작한다.

점점 멀어져 가는 차량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정정 차림의 동양인이 몸을 돌리면 고함을 지른다.


"이 새끼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한국인이다. 그리고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꿈속에서도 그가 국정원 요원임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순간 검은색 세단이 급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그의 앞에 정차하고 운전자를 힐끗 째려본 그는 바로 몸을 차 안으로 던진다. 세단은 그렇게 뒤늦은 추격전에 나서고 누군가가 남아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처음에는 선뜻 누군지 파악이 잘 안 되었는데 자세히 보니 젊은 날의 내 모습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젊은 나에게 누군가 담배를 권한다.


"미제 담배는 역시 말보로지!"


담배 한 가치와 건네주는 손만 보일 뿐인데 꿈속의 젊은 나는 그가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박 참사관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눈치다.  


요즘 꿈은 늘 이런 식이다. 분명 장면 장면은 너무나 상세히 기억이 나는데 중간중간 이가 빠진 톱니바퀴처럼 전체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질 않으니 나의 모호한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들의 말대로 난 미국 국적 스파이였을까? 

아니면 억울하게 누명을 쓴 희생자였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 병원에 이런 꼴로 누워 있는 걸까?

갑자기 수많은 의문점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가끔 꿈속에서 관자놀이 부분에 차가운 금속감이 실제처럼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순간 고개를 돌리면 무식하게 긴 총신을 자랑하는 44 매그넘이 나를 겨누고 있고 온몸이 얼어붙은 나는 힘겹게 그 악몽에서 깨어나곤 한다.

스스로 얼핏 봐도 몸에 큰 외상은 없는 걸로 봐 총상은 아닌 건 분명하다. 그리고 관자놀이에 매그넘을 맞았으면 이렇게 숨을 쉬고 있으리 만무할 테니 말이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잊으려고 그리고 내 잃어버린 기억의 또 다른 실타래를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불이 꺼지는 않는 이 병실에서 다시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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