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캇 리 Jul 19. 2024

임사 체험(臨死體驗)

   San Pedro로 가는 기차




내가 전직 기자 출신이고, 또 한국계라 유난히 북쪽 인사들과의 접촉이 많았다는 사실을 조금씩 다시 기억해 낼 때쯤 아내는 내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무려 14일 동안이나 혼수상태로 깨어나질 못했다고 얘기해 주었다.

좀처럼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모습에 병원 관계자들이 아내에게 연명 치료 중단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무의식 속에서도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난 갑자기, 아니 의료진의 말에 의하면 기적적으로 깨어나 병원에서 졸지에 Lucky guy로 불려졌다.

 

 어릴 때부터 마른 체격이었고  다른 지병이 없어 크게 병원 신세를 진적이 없었다특히 심장 쪽은 가족력도 없고  번도 이상증세를 느껴  적도 없었다하지만 중국감옥에서부터  몸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루 16시간 강제노동과 부실한 식사 탓인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고 취침 중에 일어나 화장실을  때에는 어지러움증이 심해 탈북자 출신 감방 동기 경철이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몸이 이상하다고 말해도 검사조차 해주지 않았고 변호사는 물론 바깥의  누구와도 연락을   없으니 치료는 고사하고 약조차 구할 길이 없었다.

 

삼촌얼굴이 조금 삐뚤어진  같은데요”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던 경철이가  말을 했던 다음 날이었던가? 

기본적인 난방장치도 없는 감방에서 '소케 바지라고 불리는 6.25  중공군이 입던 두꺼운    벌로 영화 20도가 넘는 만주의 강추위를 버티던 나는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그전부터 퉁퉁 부은 목은 그렇다 치더라도 온몸에 수시로 오한이 엄습하더니 새벽 행군  그만 다리가 풀려 버리고  것이다어지러움증 때문에 마치  취한 것처럼 땅이 치솟아 올라 엎드려 누운 차가운 아스팔트에 빰을 부치고 간신히 버티고 견디었다.  

 

아저씨  이래요괜찮아요? 경철이가 다급히 달려오는  쉽더니  경관의 고함소리가  귀를 때린다. 

 

싸비 치라이치라이  

 

욕설과 함께 일어나라 명령이 들리고 이내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녀석은 UFC 선수처럼간신히 팔꿈치와 무릎으로 몸을 일으켜 보려는 나를 향해 연신 발길 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렇게 쓰러진 나는 벽면의 페인트가  떨어져흉물스럽게 시멘트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음침한 폐건물 같은 의무대에서 하루의 휴식과   없는  알의 약을 얻어먹고는 다시 작업장으로 복귀해야 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아내의 권유로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았다고혈압과 당뇨 수치가 많이 높아져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심각한 문제는 없어 보였다다만 경철이의 말처럼 아내도 안면 비대칭을 지적했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쓰러지기 며칠  대만(타이완미디어와 인터뷰를  영상을 퇴원한 후에 인터넷으로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비대칭 정도가 아니라 말을  때마다 얼굴 한쪽이 심하게 뒤틀리고 찌그러져 흡사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듯했다마치 티베이 감옥에서 벌겋게 달구어진 도장으로 얼굴 한쪽에 흉측한 낙인이 찍힌  같은그런 기괴하고 낯선 모습이었다.  

 

 급성 심근경색이 정말 누구 말대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느 목요일 아침 집에서 갑자기 쓰려졌고 앰블랜스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2주간의 코마상태를 거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매일  옆을 지키는 아내 외에도 가끔씩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정신상태가 흐릿해서 인지 아니면 모두들 쓰고 있는 마스크 때문인지 누가 누구 인지 도대체 분간이 가질 않았다.

하루하루 머릿속의 안개가 조심씩 걷히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어머님형님그리고 목사님 모습 정도는 알아볼 때쯤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시 기억나는  하나도 없어그렇게 오랫동안  깨어났는데..."

 

 예전보다 훨씬 홀쭉해진 아내의 안쓰러운 얼굴을 바라보며 힘겹게 이렇게 말한 걸로 기억한다.

 

"... .....  페드로..... 가는... 기차"

 

사실 나는 아직도 그때 체험한 14일간의 여정이 사후세계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무의식  기억의 찌꺼기 들인  확신이 없다그래서 퇴원 후에도  번쯤 간증을 원하는 목사님의 부탁도 애써 외면해 왔다. 그리고  임사체험을 정확히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도 사실 역부족이었다내가 알고 있는 모든 형용사를 동원한다 해도 난생처음 보는 사물이나 현상의 상태를 정확히 표현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기억이 시간에 흐름에 따라 오염되어 부풀려지거나 변형되기 전에 최대 근사치라도 남겨 놓고 싶은 마음에 생각을 고쳐  꿈같았던 여정을 한번 적어 보기로 했다 

 

 

임사 체험()     

 

임사 체험(臨死體驗, 영어: near-death experience, NDE) 죽음에 가까워진 상태를 느끼는 체험이다. 임사 체험은 죽음 전에 일어난다고 주장되는 기이한 현상이다간혹 임사 체험과 유사하지만 다른 개념인 유체이탈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위키피디아)


시작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앞은  치도 보이지 않고 숨이 자꾸  올라왔다그래서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닷속에 빠져 있는   알았다하지만 이내 호흡이 편안해지고 머리  어둠을 뚫고 조각난 빛줄기들이 듬성듬성 내리쬐기 시작했다.

마치 터널 같은 그곳을 힘겹게 기어 나오는 순간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압도적인 스케일과 형언할  없는 색깔로 가득  초현실적인 풍경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하늘은 마치 허블 망원경이 수백 광년 떨어진이름조차 생소한 성운을 찍어 보내온 것과 흡사했다. 

특정색으로 형언하기에는 모든 색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화했고 순간순간 형광색으로 발현하는  같기도 했다. 

 생소한 하늘 아래에는 정말 비현실적으로  갯바위들의 모습이 나를 압도했다 갯바위들 사이로   없이 집채만  파도가 부딪치고 거대한 흰색 포말이 생겨 내가 걷고 있는 모래사장을 덮쳤다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얼굴에 닿는 시원한 물보라와 발가락 사이로 움직이는 모래의 감촉을 느끼면 느긋하게 모래톱을 걷고 있었다.

눈앞의 물보라 방물들이 모여 순식간에 사람의 형체가 되더니 ~나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는 어쩌다 비를 맞고  투명인간 같은  형체들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는데 눈에 익숙해지자 그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해   있었다.

 

천호동 우리  셋집에 살던 백승호.... 손가락 다섯 개가  붙은 합지증 환자 1학년 짝꿍 손문철 

 

아주 어릴  만났던 인물들이다평소 같으면 기억도 못해냈을  같은데 어찌  일지 그들의 얼굴은 물론 이름까지도 생생히 떠올랐다계속 밀려오는 파도에 물보라 인간들도 계속 생겨나고  찰나이지만 덕분에 한참 동안이나  기억 저편에 숨어있던 인물들과 재회한다.

 

마치 홍수에 침수된 자동차가 둥둥 떠밀려 오듯 갯바위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뚫고 무언가 모래사장으로 떠밀려 내려와  하니  길을 막는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기차다도대체  량이 묶어있는지 끝이  보여  수가 없었다.

구부러진  밀려온 기차 겉면의 커다란 흰색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San Pedro'  

 

그래내가 고등학교 등굣길에 매일 마주 하던 ' 페드로항으로 가는 화물기차였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끝도 없이 지나가던  기차 덕분에  심심치 않게 지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상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나는 스스럼없이 기차에 오른다.

 

기차가  곳에는 고풍스러운 철제 양문이 우두커니  있고   양문 끝에는 고개를 90도는 꺾어야 제대로   있는 커다란 석고상이  있다. 다윗과 마돈나의 나체 상이었다.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안다

건널목에서 나와 함께 San Pedro 가는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려주던  고등학교 친구 동현이가 묻혀 있는 곳이다.   

마치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지키는 파수꾼 같은 모습의 다윗과 마돈나 상을 뒤로하고  동현이의 묘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푸른 잔디 위에 작은 비석을 등진  앉아 있는 동현이가 보인다세상을 떠날  앳된  모습 그대로다.

 그제야 내가 만나고 있는 이들이 모두 망자들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는다.

 

묘지 저편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린다.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하얀 스타킹에 멜빵 반바지를 입은 어린 나의 손을  잡고 계신다.

 

Good morning son 

I am a bird Wearing a brown polyester shirt
좋은 아침이야 아들아. 

나는  란다갈색 폴리에스테르 셔츠를 입은


You want a coke

Maybe some fries, The roast beef combo's only $9.95
콜라 마실래아니면 프라이라도  먹을래? 

로스트비프 콤보도 고작 9.95달러 밖에 하지 않는단다.

  
어디선가 계속  폴즈의 Still Fighting It’이라는 노래가 들려오고 나는   장례식장 안에 홀로 서있다. 호화스럽게 보이는 마호가니 관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부터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불쑥 손이 하나 앞으로 들어오더니 육중한 뚜껑을 순식간에 열어젖힌다. 

열린 관 안에서 비릿한 냄새와 함께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나와 천장으로 치솟아 오른다.

모두 흉측한 모습의 왼눈박이 들이다.

텅 빈 관속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불쑥 들어온 손의 주인을 찾아 시선을 돌린다.


유난히 털이 많은 발등 부터 낡고 지저분한 붉은색 망토....

그리고 나의 시선이 멈친 헝클러진 그의 머리  

 

그래  사람을 이미 알고 있다내가 티베이 감옥에서 만났던 바로  사람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