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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 리 Jul 26. 2024

Dead Man Walking

              Life goes on


미국인들이 종종 쓰는 표현이 있다. 

SNS 채팅이나 전화 텍스트로는 줄여서 그냥 'LGO'라고 쓰기도 한다.


'Life goes on', 이 말은 한국말로 의역하자면  '뭐 어쩌겠어 그래도 살아야지' 정도로 해석될 것 같다. 같은 제목의 미국 드라마 시리즈도 있고 노래도 많다.

'살다 보면 원치 않는 불행을 만날 수 도 있겠지만 뭐 어쩌겠어 그래도 인생은 계속되니까 힘들더라고 이겨내며 살아가야지'라는 이 자조 섞인 표현에 요즘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내 아내인 것 같다.

하루아침에 간첩죄로 체포된 남편을 위해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그렇게 힘들게 옥바라지를 했는데 이젠 그보다 더한 남편 병수발을 들어야 할 처지다. 아내는 거기다 이미 막 고등학생이 된 막내 놈까지 돌보며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가장 신세까지 된 상태였다. 

체포당시 중국에 있던 재산은 모두 몰수당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돈도 중국 변호사와 옥바라지 비용으로 다 들어가자 아내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청소부터 공장일 등 하여간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데 했다. 결혼해서 한 번도 돈 걱정 없이 살아온 아내에게 남편도, 돈도 없는 세상은 아마 정글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중국 감옥에서 받은 편지에서 아내는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광야를 홀로 지나고 있는 기분이라고 당시의 심정을 내게 전해왔다.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남편을 먼 타국의 감옥에 두고 온 아내의 그 막막함과 두려움이 느껴져 참 미안하고 가슴 아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아내는 신앙의 힘을 빌려 그 힘든 시간을 잘 참고 견디어 주었는데 그만 이렇게 또 다른 암초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내가 눈을 뜨고 점차 상태가 호전되자 아내는 다시 일을 나갔다. 막내를 등교시키고 하루종일 일을 하고 또 막내를 하교시키고 지친 몸을 이끌고 매일 저녁 내 병실을 찾았다.  

침대 옆에 앉아 내 손을 꼭 잡고 꾸벅꾸벅 조는 아내의 안쓰러운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내가 깨지 않게 조심히 팔을 들어 예전처럼 아내의 머릿결을 쓰다듬어 주는 게 고작이었다.  


저녁 8시 방문시간이 끝나고 아내가 돌아가면 나는 나만의 심야 재활 운동을 조용히 시작한다.

아직은 혼자서 일어설 수 조차 없는 상태지만 최대한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침대에 누운 채 '무릎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안간힘을 써 가며 허리를 움직여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 보기도 한다.

저렇게 홀로 지친 아내를 두고 만약 내가 계속 침대에 누워 있게 된다면 그것은 아내에 대한 엄청난 배신이자 나 자신에게도 결코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될 것 만 같아 두려웠다.


병실의 밤은 의외로 조용하다. 하루종일 아프다며 'F' 자로 시작되는 욕설로 간호사를 쉴 새 없이 불러대던 커튼 너머 옆 침대의 백인 남자도 지쳐 곯아떨어졌는지 잠잠해졌고 천장에 매달린 tv에서만 간간히 대화 소리가 흘러나온다. 

내 마음 같이 움직여 주지 않는 사지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너무 용을 쓴 탓인지, 하루종일 에어컨이 작동하는 병실에서 난 혼자 뻘뻘 식은땀을 흘린다.

눈 안으로 타고 들어가려는 땀을 닦기 위해 침대옆 식판에 위에 놓인 작은 수건을 향해 손을 뻗어 보는데 잘 닿질 않는다.

숨을 한번 크게 몰아 쉰 뒤에 순간적 반동을 이용 최대한 상체를 일으켜 오른팔 팔꿈치를 재빨리 식판 위에 걸쳐 놓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 성공의 대견함을 채 느끼기도 전에 바퀴 달린 식판이 힘없이 '주르르'  후진을 하고, 이내 둘 곳을 잃은 내 팔꿈치는 아직 채 감각이 다 돌아오지 못한 성가신 짐짝 같은 상체를 이끌고 그만 바닥으로 동반 추락하고 만다.


둔탁한 타격감이 한순간에 얼굴 전체를 덮치고 난 순간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차가운 병실 바닥의 한기가 맞닿은 뺨에 느껴지고 웅웅 거리는 tv 소리에 정신이 돌아온다. 

얼굴은 느낌 그대로 병실 바닥에 내동댕이 쳐 친 듯 박혀 있었고 상체는 물에 젖은 스펀지 마냥 축 늘어져 침대와 바닥에 반반씩 걸쳐 있는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간호사 호출 벨을 찾아봤지만 이미 추락하고 만 나에게는 너무나 먼, 침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nurse! nurse! nurse!" 


목청껏 울부짖으며 애타게 간호사 불려보지만 바닥에 짓눌린 얼굴 탓인지 연 씬 타이어 바람 세는 소리만 나올 뿐  'nurse! '라는 제대로 된 외침은 내 머리에서만 빙빙 도는 듯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만 구조의 손길을 체념하고 그냥 넋을 놓고 천장에 달린 tv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내 자세 탓인지 화면의 인물들은 모두 물구나무를 선채 걸어 다니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비정상적인 화면의 구도와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에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고 나는 누구 보면 금방 숨을 거둔 시신 같은 그 낯 설고 이상한 자세로 잠이 들고 만다. 그리고 내 꿈은 언제나 그랬듯이 또 기억 속을 헤맨다.         

   


이번에는 내가 티베이 감옥으로 이감되기 전 일 년 넘게 지내던 중국 간수소다.


쇠창살 철문이 열리고 그가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 방 분위기는 싸해졌고 수감자들은 꽤 긴 시간 동안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가 우리를 이렇게 한순간에 얼어붙게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그가 입고 있는 노란색 조끼였다. 

이곳 수감자들은 보통은 푸른색, 환자는 녹색, 그리고 살인 그것도 의도적 살인 혐의로 잡혀 온 수감자들만 노란색 조끼를 입었다. 

그는 2명을 살해한 혐의로 잡혀온 탈북자였다. 그리고 우리를 한층 더 심란하게 만든 건 그가 차고 있는 무쇠로 된 족쇄였다. 재판 때 내가 찼던 것 과는 차원이 달랐다. 옛날 흑인 노예들의 발목에나 채워져 있을 법한, 그런 무지막지한 족쇄였다. 열쇠 구멍 자체가 없으니 채울 때도 풀 때도 ‘스레지해머’라는 큰 망치로 굵은 나사못을 때려 박고 때려 빼야 하는 그런 원시적인 형벌 도구였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커덩, 철커덩’ 하는 으스스한 소리가 났고 난 그때마다 오래전 봤던 쇼펜 주연의 <데드 맨 워킹>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Dead Man Walking’ 은 사형집행을 직감한 사형수가 형장으로 이동하는 그 걸음걸이와 시간을 하는 말이다. 구태여 직역하자만 ‘죽은 자의 걸음’쯤 될 가….

그는 그 영화 속 주인공 쇼펜처럼 사형수였다. 그리고 그 족쇄는 곧 죽을 자, ‘데드 맨’의 징표였다. 탈북을 한 그는 중국 국경 인근 농가에 들어가 도둑질을 하다가 발각되자 한족 주인 부부를 살해한 혐의로 이미 길림성 고등법원에서도 사형을 확정받은 상태였다.   

그의 남다른 외모도 우리를 얼어붙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모든 남자 수감자의 머리는 ‘빡빡이’에 가까웠지만 그의 머리는 장발이었다. 머리부터 얼굴 반쪽이 화상으로 심하게 일그러진 탓에 그는 긴 머리카락으로 그 흉터를 가리고 다녔다. 하지만 제대로 씻지 못한 탓에 그의 머리는 늘 기름이 끼고 떡 져 있었다. 냄새 또한 장난이 아니어서 그의 흉측스러운 몰골과 함께 다른 수감자들이 그를 기피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였다. 

탈북자가 영치금이 있을 리 없으니 샴푸는커녕 빨랫비누 한 장도 살 수 없는 게 그의 안타까운 처지였다.


마지막은 바로 그의 손이었다.

화상으로 인해 그의 손은 손가락들이 제멋대로 들러붙어 제대로 주먹을 쥘 수도 펼 수는 없는 어정쩡한 상태였다. 난 가끔 그가 그런 손으로 과연 두 명을 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많았다.


다른 방에서 함께 지낸 적인 있다는 왕 씨 아저씨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 너무 오래 있어 그런지 정신이 좀 오락가락해… 

가끔 자기는 인민군 소좌라고 할 때도 있고.. 하여간 행방이 없어 ….

성질 하나는 깐깐하지, 그러니까 다른 놈들한테 뭐 하나 못 얻어먹고 맨날 싸움질만 하지.

“불쌍한 놈이야, 돈 한 푼 없이 여기서 저렇게 오래 버텼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끔찍하고 힘들었겠는지 ….

안 된 얘기긴 하지만 어쩌면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쭈그리고 벽 구석에 앉아 있는 그에게 조심히 다가가 어제 영치금으로 구매한 세숫비누 한 장과 샹창(중국식 소시지)을 건넸다. 아무 말 없이 물건을 받으며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보는 그에게 'Life goes on'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건 같은데 세찬 흔들림에 나는 꿈, 아니 기억에서 깨어났다.



새벽에 나를 발견한 병원은 난리가 났다.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히 왔다 갔다 하더니 급히 연락을 받은 듯 새파래진 얼굴의 아내도 왔다. 


"왜 그랬어, 왜 그랬어!"


내게 질문을 하는 건지 아니면 타박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 손을 다시 꼭 줜 채 아내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위로 살짝 말려 올라온 담요 밑으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내 두 다리가 눈을 들어온다.

아무리 움직여 보려고 해도 오늘은 이상하게 발가락만 까닥까닥할 뿐이다.

순간, 나는 꿈속에서 그에게 못해주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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