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선, 가벼워집시다

by 교양있는 개구리


엔트로피 법칙을 따르는 사랑처럼 - 정주영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우린 더 혼란스러워질 거야

더 복잡해지고, 엉켜버리고 말겠지

벗어날 수 없는 법칙과 혼돈 속에서도

나는, 우리가 심각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령, 헤어지네 마네 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너한테 이렇게 말했지.

코가 막혀서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양치를 안 해서 입 냄새가 나니까 조금 멀리 떨어지라고

눈물 콧물에 화장이 번져 못나졌으니

눈을 좀, 덜 뜨라고 말이야.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너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

입냄새를 확인해 줄 테니 입김을 불어보라고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눈물 콧물 범벅 내 얼굴을 씻긴다며

짓궂게 내 손을 빼내었어


사랑할 수밖에.

엔트로피는 높아만 지는데 우리 사랑은 더 더 순수해져 가니까

굳은살 베긴 손은 너무 보드랍고 따뜻하기만 하니까

끝을 향하는 우주 법칙 속 너와 나는 더 더 가벼워진다.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고 쓴 시다. 책이 아주 감명 깊었다. 과학책이지만 시 한 편이 나올 만큼 내용과 문체가 수려하다. 엔트로피가 높아질수록 무질서해지고, 우리 지구(우주였나?)의 엔트로피가 극에 달하는 날 끝이 올 것이라는 말이 내게 와서 꽂혔다. 물론 지금은 내용이 거의 기억 안 난다. 더 자세한 설명은 불가능! 문과인 내가 이해하는 엔트로피에 대해서 설명해 보면, 엔트로피는 무질서, 혼란을 나타내는 단위이고, 에너지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 일방향으로만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전문가이다. 엔트로피 높이기 전문가. 집도 너저분하고, 회사 책상도 비슷하다. 내 이미지를 위해서 '원래 정리를 잘 못한다, 타고나길 섬세하지 못하다, 바쁘게 살아서 그렇다' 등의 변명도 덧붙인다. 많은 분야에서 엔트로피 상승에 힘써 왔으며, 그중 최고 분야는 연애였다. 이 시를 쓰기 전까지 1년 넘게 만나본 경험이 없었는데, 여러 사유가 있지만(이 또한 변명) 단시간에 엔트로피를 임계치까지 끌어올리는 재주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연인관계에서 엔트로피를 단숨에 끌어올리던 나만의 비법은 다음과 같다.

연애 초반부터 미친 듯이 달려들고 강아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애정을 퍼붓기

연락 안 되면 연인이 바쁘든 말든 징징거리거나 서운한 티 팍팍 내기

자매품으로 연락이 잘 안 되면 온갖 상상의 나래 펼치고 좌절하기

자매품의 자매품으로 상대방은 신경도 안 쓰는 사소한 변화에 의미 부여하고 또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불안해하기

서운한 이유 절대 말 안 하고 입 꼭 다물고 있으면서 상대방 미치게 하기

적어내려가면 끝도 없다. 여기서부터는 변명이 아닌데, 사랑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서툴렀다. 연인관계도 '관계'라서 시간과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사랑한다는 말만 갖다 붙이고 달려들면 그냥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이런 나를 다 받아주면서 가르친 게 바로 시에 나오는 인간이다.

(그는 좋은 선생이자 도반이었다. 잘 살렴.)


여러분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대화, '의사소통'이라고 단언한다. 소통에는 말뿐만 아니라 표정, 눈빛, 제스처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1:1 관계에서는 말이 가장 중요하다. 잘 듣고, 잘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엔트로피를 높이는 일 없이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다. 전문가로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한 번 올라간 엔트로피는 되돌릴 수 없다.'


연인관계에서 엔트로피가 임계치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의 경우엔 대화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면 이별이 왔음을 직감한다. 무거운 말들이 오가는데 의사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과 '대화 자체가 무거워지는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가령, '결혼과 육아, 대출 등' 현실적 문제는 무겁다. 하지만 한없이 가볍고 편안한 대화주제가 될 수 있다. 한편 '찍먹이냐, 부먹이냐'같은 분명한 합의점(반반)이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주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경험들이 다들 있지 않은가?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엔트로피 대폭발 경험'이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꼭. 나만 멸망할 순 없지.) 대화 무게는 주제에 달린 게 아니다. 순전히 듣고 말하는 우리에게 달렸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 가볍게 대화하는 법은 무엇일까? 관계 엔트로피를 높이지 않는 대화법! 간단하다. 표현이 솔직하고, 구체적일수록 대화는 하늘하늘해진다. 스크롤을 올려서 다시 시를 봐라.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외모 체크를 놓치지 않는 단정한 인간과 와중에 콧물까지 대신 풀어주겠다는 매너 있는 인간이 만났는데 엔트로피가 높아질 리가 있는지. 그걸 일일이 풀어서 말해주는데 말이다.


나는 여러분이 그냥 심플하게 사랑하면 좋겠다. 자존심을 부릴수록 언어는 만리장성이 되어 관계를 단절시킨다. 그러지 말자. 사랑하는 그이, 사랑 앞에선 가벼워지자. 바로 그때 여러분의 사랑이 우주법칙도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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