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을 한 게 아냐, 동전의 양면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왔을 뿐
닳고 닳은 사람들,
그런 우리가 만나 사랑을 한다
닳고 닳은 눈가엔 주름이 패이고
손은 손대로 가슴은 가슴대로
그렇게 닳아있다
닳고 닳은 그대의 눈 속에 내가 비친다
뭐 그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지
닳고 닳은 만큼 그대는 나를 품어낸다
아팠다
내가 아니라 당신을 보면서
당신의 그 닳은 눈에 담겨있는 것들을 헤아리면서
나는 아파서
닳고 닳은 내 손으로 당신을 어루만졌다
닳고 닳은 사람
내가 당신의 인생을 안아줄 수 없었을 때,
당신이 나를 온몸으로 끌어안기 이전에,
천진한 아이의 새살을 돋아나게 할 수 없어
나는 그저,
당신의 닳고 닳은 상처를 어루만진다
우린 그저 서로의 닳은 몸을 쓰다듬는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가 있다. 그런 사랑을 한 적이 있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모순일까?
그는 나이가 아홉 살쯤 많았고, 매일밤 페트병 소주를 한 병 비우고 잤다. 신기한 것은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고,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시는데도 치아가 나보다 하얬다는 점이다. 꿈과 야망이 있었지만,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했고 나를 만났을 쯤엔 사회적 지위도 높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현재는 모르겠다.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미래가 빛났으며, 그는 늙었고 주행거리가 꽤나 차 있었다.
그렇다면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남자를 만났는지. 당연히 외모다. 그는 세월에 풍화에도 수려한 외모를 지녔었다. 좀 더 솔직해지면 욕망에 이끌렸다. 계산 없이 욕망에 가득 차 행동했고 결국엔 제어하지 못해 욕망에 종속되어 버렸다. 그가 가진 모든 게 좋았다. 성격도 말투도, 작은 행동 습관이 좋았다. 무엇보다 웃을 때 보이는 덧니에 나는 한 없이 빠져들었다.
그를 만나는 매 순간이 아팠다. 뭐 하나 풀리지 않는 그의 사업, 미래가 없는 우리 관계, 일에 밀려 항상 후순위인 내 지위까지. 그를 만나기 위해 나는 매일매일 가슴 한편을 도려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그가 내 품에 다 들어왔다. 온몸에 굳은살이 박여야만 그의 거친 손에 상처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일 년 넘게 답이 없으면서도 미래는 정해져 있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썩어 있고 패인 그의 마음이 내 밑바닥 전부를 품어줬기 때문이다.
항상 밤까지 일하는 그에게 수박 한 통을 사서 우리 집에 들러달라는 부탁을 한 적 있다. 밤 열 한시, 늦어도 열두 시까지는 오겠지 생각했고, 늦어지자 연락도 몇 차례 남겼다. 감감무 소식이던 그는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배신감과 외로움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너는 뭐 하는 인간이냐'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는 처음으로 갑갑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고 나지막이 말했다.'썅, 내가 뭐 놀고 들어왔냐'하며. 대부분 나의 연애는 여기에서 끝이 났다. 그는 달랐다. 아주 짧은 정적 후 손에 있던 수박을 책상에 내려두며 말했다. "수박 먹고 싶다면서, 잘라줄까?"
그때의 상황을 묘사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차오른다. 그리움의 눈물이 아니다. 온전히 받아들여졌던 그때의 경험이 나를 벅차오르게 했다. 감동의 눈물이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단절됐다.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고, 다시 붙잡으려 해 봤지만 그 이후로는 그를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수년이 흘렀다. 너무 아픈 사랑이었다. 너무 아픈 사랑이어서 사랑이 아니었다.
우리는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 동전의 양면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왔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데 급급했다. 외롭고 욕망에 가득 찬 나는 그의 몸과 헌신을 착취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는 나를 통해 자존심과 욕구를 채웠다. 우리는 서로를 추앙했다. 각자의 결핍이 분명했고, 그 결핍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을 서로가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만날 당시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이, 행동 하나하나가 그를 행복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스킨십을 좋아하던 그가 나를 품음으로써 스트레스가 풀리고 내일 다시 일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사실이 나를 벅차게 했다. 다섯 살 애처럼 말하고 행동해도 그저 귀여워해 주던 그가 내 옆에 있음이 당시 나를 살게 했다. 우리가 그 시절을 함께 할 수 있었기에 현재가 있구나 납득이 된다. 닳고 닳아서야, 나를 도려내고 파내서야 서로를 만날 수 있었던 게 우리의 사랑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