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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사색

헤르만 헤세

by WaPhilos

언제나 그의 저서를 읽게 되면 세상에 대한 숨겨진 비밀을 누군가가 세월의 깊은 사고를 통해서 자기만의 책으로 몰래 적어놓은 것과 같이 느껴진다. 헤르만 헤세의 극적이며 절망적이지만은 않고, 지독히 홀로 외롭지만도, 피에 사무치게 고통스럽지도 않은 말들은 아마도 그가 살아내 온 삶을 통한 깊은 이해와 사색의 결과이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 이런 것은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걸!’ 하며 나의 모습을 돌아보거나 후회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하지만 저자를 통해서 안내되는 시간과 삶, 고통과 행복의 의미들을 이해해 보고 자신의 삶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좀 더 얽매인 삶의 굴레와 베일에서 좀 더 자유롭고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의 생각(사색)을 엿보고 닮아 가기를 원한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인 것 같다. 마치 나와 비슷한 고통과 슬픔을 가진 누군가의 경험담을 통해서 단순히 동정과 위로를 느끼는 것을 넘어 새로운 나의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키려는 욕망을 일깨우게 되니까 말이다.

여러 사색의 단편과 시로 엮어진 ‘밤의 사색’이란 헤르만 헤세의 저서는 풋풋한 어린 시절과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어 회상해보는 시간의 여러 단편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작가가 여러 개의 영혼을 거쳐 수많은 다른 인생들을 살아봤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그 단편 중의 일부를 공유하며 내 생각의 한 편을 놓아본다.

< 외로운 밤 >

인간은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걸까? 아이, 개구쟁이, 건강한 청년, 동물은 이런 무미건조한 일상의 순환을 괴로워하지 않는다.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아침에 즐겁게 일어나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그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이런 당연함을 잃은 사람은 눈에 불을 켜고 필사적으로 진정한 삶이 순간을 찾는다. 반짝 빛나는 짧은 섬광에 행복해하는 순간. 시간 감각을 잃을 뿐 아니라 모든 목표와 의미에 관한 사고가 삭제되는 그런 순간. 이런 순간을 창조적인 순간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창조주와 하나가 된 기분이 들고, 모든 일 심지어 우연히 일어난 일조차 깊은 뜻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 하루의 시간 중 아무런 고민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행복해하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아무튼 나는 삶을 행복으로 보지 않고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삶은 오로지 깨어 있는 의식을 통해서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태이자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대한 많은 행복을 얻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삶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최대한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고자 한다. ‘권태로운 삶’도 하얗게 불태우듯 살아내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려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또한 이미 결정된 것의 확고부동함을 잘 알기에 변하지 않는 선과 악에 저항하려 애쓰지 않는다.


-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어쩌면 그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에 지나친 마음을 두는 것 때문이 아닐까? 단지 언제나 삶이든 충만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깨어 있어 지나침이 없도록 말이다.


< 잠 못 이루는 밤 >

자신의 몸과 사고를 지배하는 방법을 가장 잘 가르치는 스승이 바로 잠 못 이루는 밤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부드럽게 감싸는 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외로운 시간을 정적 속에서 보내본 사람만이 따뜻한 시선과 사랑으로 사물을 가늠하고 영혼의 바탕을 보고 인간적인 모든 약점을 관대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잠 못 이루는 밤 그대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사색하여 삶을 이해하고 관대해 지기를 소망한다.

< 두려움 극복 >

인간 정신이 발명한 것 중 하나가 시간이다. 시간은 참으로 정교하면서도 묘한 발명품이다. 그것은 더욱 깊은 고통을 주고, 세상을 더 힘들고 복잡하게 만든다. 인간은 오직 시간 때문에 자신이 갈망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된다. 이 고약한 발명품 때문에! 자유롭고 싶다면 무엇보다 바로 시간이라는 목발부터 던져버려야 한다.

- 하루의 시간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며 시간의 흐름을 잡으려 돌아보고 하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자산의 모습 그대로 있기를 힘쓰고 느끼고 갈망하며 거스르려 하지 않는 마음이 나를 조금 더 고통 속에서 해방해 주지 않겠는가.


< 작은 기쁨 >

절제의 습관은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능력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능력은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려면 현대 생활이 왜곡하고 없애버린 적당한 명랑함, 사랑, 서정성이 필요하다. 주로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그런 작은 기쁨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일상의 곳곳에 무수하게 흩어져 있어서 일에 파묻혀 사는 수많은 사람의 둔감한 감성으로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 것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많은 이들이 갈구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하며, 많은 돈을 들여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가난한 사람들조차 가장 아름다운 기쁨을 맛보는 데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 나에게 기쁨이 되는 가족들과 내 주변의 숨 쉬는 자연과 책들과, 음악과 동물들의 작은 숨소리들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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