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장편소설
한강의 장편소설 중 ‘소년이 온다’ 다음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다. 역사적 사건과 그에 얽힌 사람들의 고통과 트라우마의 모습들... 보이지 않는 규범과 외력의 탄압 속에 희생되어 간 사람들을 글 속에서 그리고 한국이라는 현실 속에서 회상하여 그려보며 먹먹함을 느낀다. 그런 역사적 사건을 견디어내어야 했던 무기력했던 우리네 모든 사람들을 통해 인간 삶의 연약함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로 깨어있는 공동의식과 올바른 집단이성의 실현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소년이 온다’에서 ‘제주 4.3 사건’에 이르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서 그리고 광복 80주년을 막 지난 이 시점에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과거’를 바로 알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바른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말처럼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질문이 아닌 어쩌면 그러한 과거를 이겨내 온 공동체에 외치는 위로이자 외침일 것이다. 제주에서 학살되고 그 이후 전국에서 학살된 수 만 명의 사람들과 아직도 시신도 찾지 못하고 실종된 가족을 찾는 유가족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할 생존자들의 이야기...
그 생존자인 어머니와 딸 ‘인선’의 눈과 입을 통해 전해지는 과거의 진실들과 인선의 부탁으로 찾아 나선 곳에서 진실들과 마주하는 ‘경하’(주인공, 작가)의 이야기로 진행이 된다.
죽음과 같이 험한 인선의 집과 작업장을 찾아 나서며 어둡고, 춥고, 두려운 길을 통해 느껴지는 생사의 힘든 역사 속으로 휘몰아 들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처럼.. 결국 찾아낸 인선의 집에서 어둡고 춥고 축축한 곳의 죽고 산자들이 모여 떠도는 죽음과 현실이 간신히 이어진 공간으로 들어간 듯하다. 그곳에서 이미 손가락을 잃고 병원에 있거나 아마 죽었을지 모를 인선의 영혼과 마주하고 펼쳐지는 그날의 이야기들...
생사의 경계에서 결국 우리는 그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인간성의 한 면을 보는 것같다. 책의 제목처럼 ‘작별하지 않는다’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이어진 생과사의 경계에...아직도 실종된 생존자들과 작별하지 못한 유가족들의 외침과 같다.
아무쪼록 과거를 살아내 사라졌던 사람들과 그 들과 같이 생을 살아내고 있는 남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게 된 많은 독자들의 감상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소망한다.
‘..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건강해 보여도 방심할 수 없어. 아무리 아파도 새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횃대에 앉아 있대. 포식자들에게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견디는 거야. 그러다 횃대에서 떨어지면 이미 늦은 거래.’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