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 사랑_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저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오랫동안 서점에서 찾지를 못하였다.
역시 도서명 검색이 문제였던 것인지 도서의 제목은 한글로 번역되고 책의 제목 또한 ‘Narziß und Goldmund’ 원래 제목이 아닌 ‘지와 사랑’으로 출간이 된 것이 아닌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지와 사랑’으로 나르치스는 지(知)를 골드문트는 사랑(愛)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꾸어 준 것이다.
인간은 내적으로 지니고 추구하는 지성과 감성적인 사랑에 대한 욕망의 이중성을 ‘지(知)’의 나르치스와 ‘감성(사랑 愛)’의 골드문트를 통하여 두 인물의 어린 시절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의 만남과 오랜 기간의 헤어짐과 재회가 그려진다.
지적이고 경건하며 금욕적인 삶을 통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신의 뜻을 따르길 원하는 스승 나르치스와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기억하고 있고, 나르치스를 동경하고 금욕적인 삶을 소망하지만 이성과의 감정적인 만남과 이어지는 수도원을 떠난 세상 속에서의 방랑의 생활을 시작한 골드문트의 삶이 그려진다.
골드문트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 기억들이 새로운 연인들을 만나고 욕망하고 그 욕망으로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결정들을 하기도 하며 자기와 상대의 고통과 갈등, 절망, 외로움, 연민의 감정들을 겪어 나아간다. 자신 안에서의 사랑에 대한 여러 감정과 욕망의 모습들을 그림과 조각의 예술을 통해서 현실에 발현해 나아가는 골드문트의 모습을 어느덧 응원하고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어쩌면 골드문트의 모습은 나를 비롯하여 세상 속에 던져저 삶을 살아내고 있는 많은 독자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항상 사랑의 감정에 동요하고 욕망하고 지성의 것을 닮고자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신께서는 말하였다. 신은 전능하고 무한하고 세상과 모든 곳에 임하시고, 사람 하나하나에 임하시고 그 안에 성령으로 임하시며 그곳은 곧 성전이다. 세상 속의 골드문트의 모습은 사랑과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이며 욕망이고 불에 타 버리지만 다시 열정적으로 불붙는 끊임없는 사랑에 대한 것이다. 혹시 그런 골드문트의 사랑과 아름다움(자연)에 대한 욕망을 통해서 결국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인 사람이란 존재 아닐까?
인간 본연에 대한 지성(이성)과 성(사랑)에 대한 욕망의 이중성은 결국 현실(세상) 속에서 사랑과 감정(욕망)의 자연스러운 경험 등을 통해서 그 진실된 뜻(지성)을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신과 자신에 대한 경건하고 이성적이며 지적인 앎을 통해서만은 인간이란 존재는 그 지성을 이룰 수 없으며, 그 사랑에 대한 의미를 실현하고 느낄 수 없을 것이란 것이다.
종교적인 삶에 몸 담아 경건하고 사색적인 삶과 그 사랑의 힘을 믿고 있는 종교인의 삶의 가치를 어찌 가늠할 수 있겠으나 범인의 사람으로서 어찌 보면 그 숭고함을 추앙할 수만은 없는 마음이 든다. 어쩌면 그분들도 나르치스처럼 골드문트를 사랑하고 세상 속의 자연스러움과 사랑의 아름다움에 목마르지 않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53세의 헤세의 작품으로 원숙기에 쓰인 작품이지만 어쩌면 내가 읽은 데미안, 수레바퀴아래서 등에서도 보인 작가 본인은 비롯 인간 내면의 정신적인 구원을 갈구하고 있는 듯하다. 아래는 헤세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발표하고 나서 한참 후에 자신을 회상한 내용이다.
‘새로운 창작을 시작할 때에는 새로운 문제와 인간상을 내보일 작정이었으나, 막상 집필이 끝난 다음에 되돌아보면, 나의 장편은 대개 나에게 부합되는 몇 가지 문제와 인간상을 변형시켜 되풀이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골드문트가 수도원을 나와 세상 속에서 사랑과 고통, 살인 등의 일들을 겪어가며 그 속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곳곳에 있었다고 죽기 전에 고백하듯이 사랑을 갈구했던 인간의 본연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면이 시리면서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 또한 나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지와 사랑을 말하듯이 그것은 인간 본연에 나 자신에게 있는 모습이며 그 속에서 이성과 감성의 진실되고 올바른 모습을 찾아내어야 하는 현실에 우리는 놓여 있지 않을까?
골드문트가 끝내 사랑을 놓지 않고 죽음에 이르고 나르치스는 그런 골드문트 곁을 지킨다. 사랑의 시작과 그리고 끝이 그려진다. 하지만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통해서 자신조차도 신에 이르는 그 지성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어떤 것이 먼저이고 끝이 아닌 그것은 하나인 것이다. 신이 우리와 같이하듯이 신(그것은) 시작이고 끝이 되는 것이다. 결국에 하나인 것이다.
더 많은 글에 대한 소견을 늘여 놓아 독자분들의 자신만의 해석을 방해하고 싶지가 않다. 아래의 내용은 한글로 번역된 ‘지와 사랑’의 책의 일부 내용으로 그 내용에 대한 감회를 적어본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선에 대한 사랑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돼. 그게 그렇게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무엇이 선이지 그것은 계율 속에 씌어 있어 우리도 알고 있지만 하느님은 계율 속에 있는 게 아니야. 계율이란 건 하느님의 극히 사소한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아. 계율을 지킨다는 것이 어쩌면 하느님의 기로라는 더한층 멀리 떨어진 곳에 있게 되는 수도 있지.’
- 신의 계율을 지키고 말씀을 읽고 있으나 그것을 세상 속에서 사랑의 선으로 선의를 실천하는 것은 그 앎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니라. 밖으로 나가 그 선의를 이루고 사랑을 베풀기를 바랍니다.
‘나는 단 한 가지 면에서만 너보다 우월할 뿐이야. 네가 반쯤 졸고 있거나 아주 잠들어 버렸을 때도 나는 늘 깨어 있다는 점이야. 이성과 지성으로 심연에 존재하는 비이성적인 힘과 충동과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냉철하게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을 나는 깨어 있는 사람이라 부르는 거야. 넌 그걸 배워야만 해. 그것에서 우리 둘의 만남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어. 너의 경우에는 정신과 자연, 의식과 꿈의 세계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 감정에 충실하고 이성에 깨어있는 삶을 살아 내시길...
‘나르치스, 자네는 어머니가 없다면 어떻게 죽으려는가?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도 할 수가 없고 죽을 수도 없다네... 마지막 이틀 동안 나르치스는 밤낮으로 그 친구의 침대 곁에 앉아 친구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골드문트가 한 마지막 말들은 그의 가슴에서 불처럼 타올랐다.’
- 사랑이 없는 이성과 지성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사랑은 삶의 곳곳에 언제나 존재하고 그것은 생명이며 쾌락인 동시에 불안과 굶주림과 충동인 것이다. 나를 살아가게 하고 또한 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하느님이요 신인 것이다.
-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란... 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사랑이 충만한 충실된 삶을 기쁨으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그 시작과 끝인 신처럼, 그 신이 임하는 나 자신처럼 말이다.
- 남겨진 나르치스의 불꽃을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