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작가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주제로 한 단편 19편, 시 26편, 동화 1편, 서간 1편, 단상 40편을 엮은 선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에서'을 읽고 느낀 인간 내면의 갈등과 삶에 대한 갈증과 애정을 통해서 내 삶의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작가의 힘을 기억한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의 제목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Wer lieben kann, ist glucklich)라는 다소 상투적이고 평범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주제이고 게다가 여러 단편들과 시 등을 선별하여 엮은 선집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린아이 시절부터 젊은 시절, 그리고 어느덧 중년을 살고 있는 나의 사랑이야기 들을 다시 한번 회상하고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눈부신 하늘빛으로 날아오르게 하고 암흑의 절망과 같은 깊은 심연으로 빠뜨리기도 했던 그 사랑들을 더 너그럽고 포용적인 자세로 바라보게 되었고 헤세의 글을 통해서 새로운 해석과 행복에게로 이르는 관용적인 자세를 기쁜 마음으로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그 감정들을 타인(작가)을 통해서 배우거나 얻는다는 것이 나한테는 좀 낯설기도 하고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세상을 보는 작가의 따스함과 애정이 곧 나에게도 있었음을 느끼고 그로 인해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사랑들에 대해서 내 감정에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이 책의 각 이야기들은 한편 한편 그 내용을 곱씹어야 할 정도로 사랑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주었기에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꺼내 소개하여 글을 읽을 다른 독자들의 기회를 뺏거나 하는 짓을 하고 싶지가 않다. 다만 그것들을 내 맘 속에 고이고이 간직하여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그때그때마다 사랑으로 속삭여 주고 싶을 따름이다.
1. 인생의 권태
나는 얼어붙은 호수에 에워싸인 듯한 고독을 느끼고 있다. 인생의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을 느끼고 있다. 잃어버린 청춘을 둘러싼 괴로움이 거세게 타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슬프다. 물론이다. 그것은 고통이다. 수치다. 모진 시련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사고다. 의식이다...~열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숙녀가 눈에 띄었다... 짧은 시간에 나는 별처럼 빛나는 그녀의 본성을 직감적으로 이해했고, 우아한 모습과 천진난만한 아름다움과 그녀의 몸놀림을 감싸고 있는 멜로디를 느꼈다. 조용한 기쁨과 감동이 내 심장의 고동을 경쾌하게 하고 재촉했다.
- 인생의 고독, 슬픔, 외로움... 그리고 자신에의 부끄러움, 수치스러움 속에서 운명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이성의 만남으로 고동친 적이 있던가? 그리고 나에게도 있던 그녀들의 빛나던 모습들과 그 시공간에 둘러싸인 그녀의 멜로디가 다시금 느껴지기 시작한다
2. 사랑의 모험에 대한 기대
나는 한 시간 동안 그대를 사랑했다... 나는 여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을 사랑하는 방종한 인간인 것이다. 우리 나그네들은 모두 그런 존재다
- 나그네와 같이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로서 바라봤던 여인들과 홀로 품었던 마음들이... 그것이 단지 사랑을 사랑한, 사랑만이 갈구되었던 책임이 결여된 방종과 같은 마음들이었을까? 아직도 문득 그 순간을 떠올려 보면 다시 영원히 뜨거울 것만 같은 강열함이 남아 있기만 한데...
3. 카사노바
그것은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아하고 은근하고 경박하며 약간 유희적인 소년의 사랑과 같은 연모라고 하더라도 카사노바적인 사랑은 루소나 베르테르에 비할 수 없이 감정이 셈세한 사랑처럼, 스탕달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정열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처럼 오늘날에는 이미 가치가 사라져 버린 것으로 여겨진다. 비극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도, 사랑의 기술이 능한 연인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다만 경박한 결혼 사기꾼이나 정신병자만 들끓는 것 같다. 오늘날에는 대단히 사려 깊고 지적인 재능이 있으며 생활력인 강한 남성이, 그 재능과 에너지를 돈벌이나 정치적 이념에 쏟아붓는 것을 정당하고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그 재능과 에너지를 여성이나 사랑을 위해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누구 한 사람 염두에 두지 않는다.
- 카사노바 같은 섬세하고 정열적인 사랑을 갈구하고... 나의 어떠한 에너지라도 나의 여인, 아이들, 가족들... 그리고 인연에게 더 바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4.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고 기쁨으로 넘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감정과 감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점점 확실해졌다. 이 지상 어딘가에서 ‘행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은 언제나 여러 감정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 한 사람의 인간이 여러 가지 강렬한 감정을 충분히 활용하고, 그것을 지나치게 좇거나 억누르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향수하는 곳에서는 도처에 행복이 있었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지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며 찬미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 돈, 권력 그리고 아름다움 또한 행복과 기쁨을 주지 못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듯이, 아름다움 자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나 자신다움) 자체를 사랑하며 찬미하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음을... 그 아름다움을 꿈꾸고 사랑하시길.. 행복하길...
외부에서 강요한 도덕과 의무의 가르침에 따라 살 때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내 마음 안에 존재하는 것을 느끼고, 마음속에서 만들어 내고 기르는 도덕적 의무의 이념에 따라 사는 것만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에게서 얻은 것이든 괴테에게서 배운 것이듯.. 그것은 계율이 아니었다. 애초 계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계율이란 인식하는 사람이 인식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전하여, 인식할 수 없는 사람이 이해하고 지각하는 진리다. 계율이란 잘못 이해된 진리인 것이다.
모든 예지의 근저에 있는 것은 ‘행복은 사랑에 의해서만 온다’는 것이다. 내자 지금 “네 이웃을 네 몸과 가이 사랑하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변조된 교훈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진리에 한결 가까울 것이다. “너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 사랑을 선행시키려 한 것은 아마도 근본적인 잘못이었을 것이다...
- 너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가 나 자신을 아끼고 바라보는 마음을 더 소중히 한다면 더 많은 여유와 기쁨으로 남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을 예수가 말했다. 석가모니가 말했다. 헤겔이 말했다. 제각기 자기의 신학 안에서 말했다. 누구에게나 이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 즉 그 사람의 영혼, 그 사람의 사랑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으면 변변찮은 수수를 먹고살든 사치스러운 쿠키를 먹고살든, 남루한 옷을 입든 보석으로 몸을 치장하든에 상관없이 세계와 영혼이 완전히 조화를 이루어 세계는 선한 것이며, 나무랄 데 없는 것이다.
- 이 순간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의 영혼이 조금 더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워진 것을 느낀다.
5. 단상 26
가장 위대한 것만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하찮은 것에 감격할 수 있는 사람보다 가난하고 열등하다. 사랑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합하며,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새로운 것을 함께 놓을 수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에 결부함으로써 시간을 극복한다. 사랑만이 인간의 확실한 지주가 된다. 사랑만이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는 까닭에 정당성을 가진다.
- 사랑은 어디에도 있고 정당하며 그렇기에 하찮기도 위대하기도 하다.
6. 단상 29
인생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희망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우리 자신이 줄 수 있는 만큼의 의미만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이 의미를 갖는 것은 다만 사랑에 의해서입니다.
- 인간의 영원할 것 같은 ‘나의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결국 사랑을 통해서 나의 인생에 큰 의미를 줄 수 있고 인생을 큰 의미를 찾을 수가 있지 않을까. 사랑하라 그리고 행복해라 그대들이여...
7. 단상 31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면.. 또는 자기 자신보다 이웃을 더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행복의 비밀, 더없는 행복의 비밀이 이 말 안에 담겨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은 너 자신이다!”(타트 트바므 아스이, 그것은 너다 ‘범아일여’)
- 돈과 권력이 있어도 남을 사랑하지 않으면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없고 남을 나보다 더 사랑하면 가련하고 열등감이 있고 자기혐오와 자학이 생길 수 있듯이.. 자기에게 타인에게 빚을 지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랑, 이것이 균형 잡힌 사랑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도서를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나의 생각을 더해 먼저 소개하는데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