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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마일리지, 5도권, ‘Marigold’

기타 여행_0006

by WaPhilos

아직도 몸 이곳저곳이 쑤신다. 뼈마디에 붙어있는 크고 작은 근육들이 서로를 붙들고 부르르 떨고 있는 듯하다. 움츠린 팔과 어깨를 펴자 작은 신음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올해 1월부터 혼자 시작한 러닝이 어느덧 ‘러닝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더니 이제 1개월에 100km 정도 뛰는 정도의 러너가 되어가고 있다. 그 부작용으로 2,3일에 한 번씩 작지 않은 근육통증을 겪고 있다. 그중에 놀라운 것은 신체의 다리, 복부, 가슴, 팔 등과 오장육부가 이상적인 러너의 몸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변화도 처음 6개월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듯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느 정도 중급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지속적으로 쏟아부어야 그다음 중급을 너머 중 상급으로 달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기타 연주를 배우는 것도 어느 정도 숙련이 되고 중급 수준이 되면 기타와 내가 일체가 되듯 기타의 넥을 더 자세히 쳐다보고 기타 줄의 긴장감을 손가락으로 더 감각적으로 느끼며 튕기어 현이 이루어내는 멜로디의 흐름과 감정선을 만들어 내듯 말이다.

기타를 들고 통의 울림을 나의 호흡과 같이 길게 얹어보고 기타 줄에 단단히 굳어진 왼 손가락 끝을 세워 누르고 반대 오른 손가락으로 줄을 감싸듯 당기어 멜로디의 감성과 강약을 고려하여 줄을 당기어 준다.

“비 내리는~ 거리에서~ 그대 모습 생각해~~”


capo 3의 ‘빗속에서’라는 곡이다. 곡 자체가 재즈 느낌의 곡으로 연주와 노래의 자유로움을 듬뿍 느껴진다. 마치 이곡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너무나 많은 장르의 자유롭고 풍부한 감정의 ‘빗속에서’라는 곡이 만들어질 것처럼 말이다. 슬프거나 행복하기만 한 곡과는 다르게 말이다.


긴 추석연휴가 지나고 수요일 저녁 오늘은 문화센터 한 선생 기타 교실이 있는 날이다. 6시부터 8시까지 있는 동호회 축구경기를 끝나고 바로 수업을 들으러 가야 된다.

“와 이렇게 갑자기 비가 쏟아지냐!~”

“상대팀은 다 나왔어요. 13명 정도, 우리는 11명 온다고 했는데 2명이 펑크를 냈네!”

추석이 끝난 다음 주 내내 하늘이 흐리더니 기어코 축구경기 바로 전부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쏟아붓기 시작한다. 예약한 경기장 사용료 환불이 불가한 시점이라서 양쪽 팀은 묵언의 합의를 이루고 빗속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다.

결국 2시간 동안의 우중 축구를 시원하게 즐기고 젖은 옷을 갈아입고 축구화와 공은 가방 안에 쑤셔놓고 문화센터로 달려간다. 이미 30분 정도는 늦은 시간이지만 한 손에는 통기타와 어깨 백팩에는 악보를 한가득 넣어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로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내가 뭐라고 했어.. 추석연휴에 이 ‘빗속에서’ 올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지?”


푸들 한 선생이 2명의 중학생, 초등학생 수강생에게 말하고 있다. 오늘은 나를 포함해서 참석한 수업생이 결국 3명인 모양이다.


“어째서 이렇게 늦었어요?”

“아 축구경기가 있어서요. 인원이 부족해서 빠질 수도 없고 그래서...”

“축구가 중요해서 기타 수업이 중요해요?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세요~~”

“하하, 당연히 기타 수업이죠!”


강의실에 앉고서 숨을 돌리고 보니 수업은 10여분이 남았다. 축석연휴 기타를 거의 손 놓고 있어서 손가락도 몽글몽글해지고 연주도 어색해진 것 같다.

“어떤 거 봐 드릴까요?”

“아 이곡 연주를 하고 있는데요. 코드 연결할 때 기타 스트록을 어떻게 이동해야 될지 좀 어려워요. ‘Marigold’라는 일본노래인데요. D/F#에서 Bm7으로 넘어가는데 코드 이동할 때 박자가 빠르게 연결해야 해서요”


연결이 어려운 부분을 천천히 연주해 보고 옆으로 앉은 푸들 선생은 악보를 몇 초간 응시한 뒤 나의 연주를 멈춘다.


“D/F#랑 Bm7이 한 마디에 4박자를 8번 쳐 주는 건데 여기 D코드를 4번 쳐주고 5번째에 한 번 더 아래/위로 쳐주고 바로 Bm7코드 아래/위, 아래, 아래/위 이렇게 3번 쳐 주면 되죠!”


‘아 4박자의 8번 스트록을 5번, 3번으로 나누어주는 코드연결이었구나’

“그런데 코드 잡아보세요!, D/F# 치고서 약지를 2번 줄을 누른 상태에서 검지랑 중지만 위로 옮겨가면 되죠? 기본적으로 D코드는 6번 줄 무음으로 엄지를 올려놓아야 되니깐 넥에 엄지를 붙이고 Bm7으로 옮길 때도 검지랑, 중지를 동시에 옮길 때도 엄지를 때지 말고요”


그동안 코드를 연결하는 부분에 손가락을 전부 띄었다가 다시 잡기만 하거나 연습한 코드 손가락위치가 고정되어 연결할 경우에 다시 reset 되는 듯한 손가락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연결되는 손가락의 일부만을 옮기고 하여 빠르게 원하는 음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Bm7 잡을 때 항상 D코드를 검지, 중지, 약지를 이용하여 잡은 뒤, Bm7을 검지, 중지, 새끼손가락으로 잡았는데요?”


“그것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러면 코드를 다시 잡아야 되잖아요. 그리고 Bm7도 6번 줄은 무음으로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 기타 넥에서 엄지를 떼어내면 안돼요. 붙여야 한다고!~, 붙인 상태에서 2번 줄은 약지로 누르고 검지와 중지를 들어서 옮겨주고”


다시 왼 손가락들이 꺾이고 누르는 힘으로 비명을 지르려고 한다.

푸들 선생의 손으로 나의 손가락을 들었다 하나씩 옮기고 각도를 잡고 하여 겨우 모양을 만들어 냈다. 러너가 되기 위한 오장육부를 변화시켜야 되는 것처럼 기타 연주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연주해 내기 위해서는 나의 손가락을 틀어 비틀고 기타와 같이 붙어있는 ‘손가락 악기’처럼 변신시켜야 한다.

D/F#->Bm7 코드 연결에 대한 한 부분이지만 이 작은 단계 하나가 여러 개의 코드 연결에 대한 힌트와 기준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느덧 비 내리던 한 주가 지나가고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긴팔에 파카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워졌다. 구름도 많이 걷히고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눈부신 햇빛과 함께 가을을 데리고 왔다. 탈모로 숱이 듬성한 정수리 위로 모자나 비니를 씌어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결석한 여반장이 출석했다. 국악을 전공한 강사 정도는 알게 되었고 6개월 이상 수업을 같이 들어서 이제는 어색함이 좀 줄었다. 이어서 또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친구분 한 명도 출석이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전히 코드와 단순한 칼립소 정도의 곡 연주를 하고 있는 여반장과 친구는 추석이 후 만나 그동안의 여러 사소한 얘기를 나누는 듯하다.

반면에 지난 주말 시골 농사일을 돕느라 기타와 음악공부를 하지 못한 나는 또 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고 모르는걸 하나씩 알아가야 되는데 하는 조급함을 느낀다.

“아이고 힘들어, 날씨가 너무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 몸은 엄청 힘들어요. 그렇죠?”


1주일 만에 본 푸들 선생이 무거운 기타 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말한다. 그러고 조금 더 넉넉해지고 뽈록 나온 배와 굽은 어깨 목이 유난히 눈에 띈다.


“오늘은 질문 많이 해야 돼요? 이런 귀하고 중요한 시간에 각자 궁금한걸 뭐든 물어보세요. 제가 다른 강의도 가는데 거기는 나이 든 분이 매번 질문을 하는 거예요. 왜 밴드 연주를 할 때 키(key)를 올려주세요. 내려주세요 하는데 그게 어떤 거냐고? 왜 인이어?처럼 귀에 꽂고 연주를 하냐고 등등. 여기도 오늘 질문 하나씩 하세요. 너 질문이 뭐야? 코드 몇 개 연습했어?”

푸들 선생이 어린 남자학생 2명에게 물어본다.

각자의 연주하는 곡과 코드 그리고 연주법 등에 대해서 하나씩 질문들을 이어간다.

질문이 없었던 나는 연주하고 있던 곡의 코드 잡는 방법을 다시 한번 물어본다.

“D/F#에서 Bm7으로 이렇게 옮기는 걸로 연습하고 그다음에 A코드를 잡은 다음에요. 새끼손가락으로 2번 줄을 잡거든요?”

“그렇게 해도 되고 그냥 A코드에서 약지 손가락을 띄고 옆으로 밀어서 2번 줄 한 플렛 위를 잡으면 되지?, 뭐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데, Asus4 코드 다음에 D코드로 다시 넘어가니깐 Asus4 에서 약지는 안 옮기고 나머지 2 손가락을 옮겨서 D코드를 다시 잡으면 되니깐...”


지난주에 이어서 코드 연결에 대한 부분이다. 여러 방법의 코드 연결은 가능하지만 연주마다 곡마다 연결하는 코드마다 방법이 여러 가지가 생기고 다 괜찮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리고 Key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Key가 뭐지요?”

“열쇠?”

“Key는 조라고 해요. 다장조, 가단조 할 때요. 키보드 건반에 도레미파솔라시도의 건반은 몇 개? 12개지요? 미파, 시도는 반음이고 나머지는 음사이 검은건반이 하나씩 더해지니까요. 장조는 도레미파, 솔라시도처럼 미파는 하얀 건반 34번째와 78번째에 있죠? 이때는 장조의 밝은 느낌이 드는군요. 단조는? 라시도레미파솔처럼 23번, 56번에 반음이 있고 음의 색깔이 어때요? 슬프고 가라앉는 느낌이 들지요?”

이어서 기타의 스케일을 블록으로 나누어 장조의 스케일과 단조의 스케일을 연주하여 들려준다.

“멜로디를 연주하든 코드와 조성을 이해하려면 기타의 스케일을 음을 익혀서 외워야 돼요. 한 블록에도 같은 음이 2,3개씩 있으니깐 ‘5도권’ 들어보셨어요? 음악의 조(key)에 관한 건데 5도씩 올리거나 내려간 음의 관계를 보여주는 건데 한번 찾아보시고, 기타에서도 같은 음의 관계를 찾아보고 외워가면 되는데...”

5도권이라니 처음 듣는 말이다. 대기권, 성층권 다음이 5도권인가 싶을 정도로 닿지 않는 어딘가에 있어 나에게 별로 영향이 없는 것처럼 느끼고 싶다. 하지만 결국 기타 스케일을 익히고 나면 기타 플렛과 블록의 모든 음을 피아노 키보드 건반처럼 모두 외우지 않으면 중급 그 이상의 실력을 키우기가 힘들 것이다.

기타의 스케일을 다시 한번 찾아 눌러보고 다음 블록의 같은 음을 찾아 눌러본다. 그럴 때마다 다시 시작은 첫음으로 돌아온다 마치 ‘도’ 음을 기억하고 나머지 ‘레미파솔라시’는 첫음 ‘도’를 시작으로 그 위치를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첫음을 각 도, 레, 미, 파, 솔, 라, 시를 시작으로 각 모든 블록을 시작으로 하는 음을 외워야 할 차례다.


아니면 나의 손가락마다 위치센서를 이식하여 연주하는 곡의 모든 음을 기억해 낼 때마다 자동으로 옮겨가도록 해야 한다. 머리와 손가락이 모두 동시에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꾸준한 러닝 마일리지를 쌓지 않고 마라토너가 될 수 없듯이 필요한 기타 연습과 음악공부 없이는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그 어느 지점에서 깨어 다시 나의 몸을 실어 뛰고, 기타 줄을 튕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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