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츠와마유미
조용필 시대를 살았던 나는 그 당시에 그와 같이 활동하던, 체구가 작지만 성량이 대단했던 한 여자 가수의 노래를 유난히 거북해 했다. 싫어 하면서 닮아 간다고 군악대 들어가 군가 집체교육 받다 고참이 던진 수자폰 마우스피스에 머리통 깨지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나도 노래하면서 은연중에 #비브라토 오지게 쓰고 있었다는 걸.
요즘 거리에 난사되는 운동가요들 들을 때면 토할것 같이 속이 울렁거렸는데 가만 들여다 봤더니 역시 원인은 같았다. 격한 가사 내용조차 귀에서 밀어내 버릴 정도로 가창자들의 널뛰는 비브라토가 하나같이 일률적으로 예외없이 압도적이다. 그뿐이겠는가. 멀쩡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거리에서 목청껏 불러대는 찬송가에도 그 멀미나는 비브라토가 전혀 빈틈없이 꽉 들어차 있다. 그분들에게 노래 부를땐 반드시 인위적으로 굵은 떨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거라고 누가 다 모아놓고 가르치기라도 한 것 같다. 사실 나는 가끔 뮤지컬 가수들이 온몸을 다써 노래하는 걸 들을 때도 젖소들 배기량 출력 싸움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만 하다.
1980년대에 사춘기를 겪어낸 내겐 갈빗대 어디쯤에 박혀 들어가 같이 세월을 살아온 낙인같은 노래가 있다. 요즘도 어디선가 그 노래가 들려오면 속절없이 허리가 꺾인다. 가수가 스스로 감정을 다 드러내 자폭해 버리겠다는 식으로 극한을 노래하기 보단 누르고 감추려고 발버둥쳐 봤지만 어쩔수 없어 번져 나오는 한줄기 실핏줄 같은 감정까진 더 숨기지 못했다며 노래할 때 나는 감동한다. 아직도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픈 일본의 연가 '고이비토요'를 당대의 여가수 '이츠와 마유미'가 그리 불렀던 게 아닌가 싶다.
#고이비토요 #이츠와마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