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기 어려운. 오래된.
(2023.12.2일 기록)
대학시절 가난하고 초라했던 내가 도저히 이해를 못하던 애들이 있었다. 가만히 숨죽이고 있다 어찌 간신히 졸업하기만 해도 어느 단체든 회사든 맘대로 골라 들어가 나름 잘살수 있었던 성장의 시기였는데 굳이 반체제 데모에 열심히 뛰어들던 친구들. 모든 전공 수업마다 교실 맨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내 옆엔 체육 특기자로 경영학과에 들어온 명문고 출신의 건장한 럭비선수 애가 항상 함께였는데 시위가 치열해지면 그놈도 최루탄 가스에 뒤쳐진 애들 구하겠다고 뛰쳐나갔고 락밴드의 1년 선배이던 사회학 전공의 부잣집 형은 스네어 북에 줄을 달아 어깨에 메고 행진하는 시위대 앞열에 서기도 했다. 당시 시위 참여자를 잡아 가두던 닭장차 전경 버스에 한번 실리게 되면 진압 곤봉으로 얻어 맞아 몸이 상하는 건 물론이고 이마에 빨간 줄이 북 그어져 남은 삶 평생 남들 손가락질 받고 살아야 한다는 소리가 파다했다. 그런 절대 열세의 분위기 속에서 맨손으로 두드려봐야 미동도 하지 않을듯 견고했던 수십년 전통의 군인 통치체제에 맞서 보겠다며 객기를 부리고 나서는 그런 인간들은 도대체 제정신일까 싶었다. 차가운 현실 바닥을 맨발로 딛고 서있던 가난한 내게 정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추상적인 논의들은 다 사치에 불과했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건데 당시의 그 운동권 아이들의 앞날엔 일말의 희망도 엿보이질 않았다. 국가권력의 모반자로 낙인찍힌 그들은 평생 도망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하에 숨어 살아야만 할 것 같았던 시대였다.
비로소 늙어지니 그때 그리 어리석어 보였던 그 사람들 지금 어찌 살고 있는지가 다 드러나고 있다. 수십년전 당시 몇몇 선배들이 악기를 가지고 나가 취임식 행사를 지원했던 모교의 불온한 총학생회장이나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져 잡기만 하면 검이든 경이든 특진이 보장될 거라던 전국 대학연합의 수괴 학생운동가나 청년시절 유려하게 내지른 항소이유서로 독재정권의 시녀 역할하던 사법부에 소소하게 찬물이라도 끼얹어 보겠다던 수감 대학생이나 어느덧 대충 다 이 나라의 공고한 기득권자가 되어있다. 어떤 이들은 평생 반체제 데모만 해온 사람들이 이젠 나라 기둥을 다 빼먹고 있다고 질타를 하기도 하고 그간 도덕군자인양 행세하던 그들이 드러낸 몇몇 치부에 경멸의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애초부터 그 인간들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을 수단으로 하여 현재의 영광을 기도해 온 직업 선동꾼들이라 폄하하면서. 그런데 그때를 같이 살아온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 사람들 미래의 개인적 영욕을 일일이 다 치밀하게 계산해 보고 그게 이익이 될거라 판단해 눈앞의 불구덩이 속에 스스로를 내던졌던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나 혼자만의 안위에 몰입하고 눈앞의 성공을 도모할 때 그 친구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듯 보이던 거대한 바위벽에 말랑말랑한 지 대가리를 힘껏 부딪치는 객기로 아무도 예견할수 없던 지금 우리의 세상을 여는데 힘을 보태온 거다.
반독재 데모 경력 하나 만으로 여생을 잘먹고 잘살고 있다며 요즘 욕 얻어 처먹고 있다는 사람들. 적어도 평생 사적 이해타산 만으로 살아온 내가 그이들에게 감히 머라 말할 자격이 있겠나. 같은 시기를 달리 살아온 옛 친구들에 대한 그간의 내 마음의 빚이 이젠 좀 덜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반체제데모 #반독재데모 #학생운동 #기득권 #학생시위 #반체제시위 #반독재시위 #반독재민주화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