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담으려면 먼저 그릇이 만들어져야 한다.
(2023.10.30일 기록)
#그릇
2000년대 초반에 투자회사의 재무분야 일을 전담해 맡아 하면서 작은 개인사무실을 운영하던 때가 있었다. 나나 내가 고용했던 여성직원 위주의 실무조직이나 다 업무능력이나 경험들이 일천했고 어설펐던 사회생활 초년시절이었다. 당시 내가 전담했던 금융투자회사 관리업무 외 주로 직원들이 실무를 담당했던 회계 외주업무의 클라이언트들을 생각해 보면 특별히 두어 단체가 떠오른다. 하나는 집단소송 분야를 전문영역으로 개척하고 있던 중견 법무법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매우 특별한 지역의 아동들에게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했던 비영리법인이었다. 이 둘과의 첫 인연은 작금에도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한 후배아이의 소개로 시작되었을 거다.
대법관 출신의 원로 법조인을 아버지로 두었던 그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는 시민단체 일을 하며 기득권 세력에 무력해야 했던 다수의 작은 피해자들을 위한 집단소송 영역을 개척해 이후 그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당시 강남역과 양재역 사이 어느 빌딩에 있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대표변호사 소개로 안광이 형형하던 그 시민단체 출신의 젊은 변호사와도 인사를 나눴었다. 곧 법무법인을 떠나 하버드로 유학을 갈 예정이라 했던 멀끔했던 그 변호사는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쌩뚱맞게도 나라가 다 아는 보수 정치인이 되었는데 한동안 잦은 구설수에 오르내리더니 지금은 제도권 정치를 떠나 극우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또다른 클라이언트였던 비영리법인은 당시 합정역 근처 어딘가에 사무실을 두고 (그게 정말 가능할까 싶었던) 북한의 아동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지원하는 어려운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집 일을 시작하고 몇달이 지났을까 재단의 이사장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해 인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당시 내가 관리를 전담하고 있던 투자회사가 제공해 준 아셈타워 사무실로 그 재단의 대표란 사람을 불러 만나보고 풍채좋은 벽안의 백인이 친교의 수단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었다. 그닥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수십년후 위기에 빠진 보수여당의 혁신위원장이 될거라곤 당시엔 전혀 상상이 안되었다.
내가 위 두 클라이언트를 아직도 아쉽게 기억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내게 실망하고 나를 떠났다는 사실 때문이다. 살면서 우선 생각해 둬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이 되고 무언갈 갖고 싶다는 목표와 갈망이 있다면 그걸 담아낼 만한 크기의 그릇을 내안에 먼저 만들어 놓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당시 내가 집중했던 업무영역은 큰돈이 눈앞에서 오가는 금융투자 부문이었고 부끄럽게도 그 두 클라이언트에 제공되던 회계서비스의 질적관리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었다. 두고두도 부끄러움이 남는 기억들이어서 되돌릴수 있다면 되돌려 그 인연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참여연대 #법무법인한누리 #유진벨재단 #김주영변호사 #강용석 #인요한
아들들에게 평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남들보다 조금더 빨리 가보려고 조급해 하지 말아라. 천천히 순서대로 조금 늦게 간다 해도, 나중에 끝까지 그길에 남아있는 애들은 거의 없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