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실같은 이야기들과 이야기같은 사실들

끝까지 새옹지마

by duke j

(2024.5.10일 기록. 모든게 영화속 이야기 같아.)

어느 미공개 소설속 이야기다. 시장바닥에서 고생고생해 일가를 이룬 금융투자자가 평소 금융감독 기관이나 검찰에 불려 다닐때 조력을 얻던 한 변호사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예식장엔 당시 한직을 떠돌던, 이미 끈떨어진 걸로 알려진 공무원도 하나 초대받아 와 있었는데 아무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아 혼자 테이블에 쭈그리고 앉아 있길래 금융가는 와인 한병을 직접 들고가 옆에 앉아 술을 따라주며 먼저 인사를 건냈다. 그리 이어진 인연으로 지방 근무지 술집을 전전할 때도 공무원은 가끔 어린 금융가를 부르기도 하면서 지들끼리 나름 친교를 이어갔다고 한다. 세상일이 옛 새옹의 말 이야기 같아 한때 권부에 밉보여 찌그러져 있던 그 공무원은 정권이 바뀐 뒤에는 느닷없이 나라의 큰 일을 도맡아 처리해 가며 명성을 얻게 되고 결국 그 공무원 조직의 최고위직에 오르기까지 했다. 금융가가 기특한건 공무원이 세상의 실력자로 떠오른 이후엔 아예 스스로 연락을 끊고 자중했다는 점이다. 공무원의 행보에 자기와 같은 금융업자의 그림자가 어릿거리는 게 행여 방해가 될까 싶어서였다고 한다. 세상일은 이제 훨씬 더 오묘해진다. 어찌 하다보니 한때 주위가 무시하던 그 공무원은 결국 사람이 노력한다 해서 다다를 수 없는 궁극의 위치에까지 올라서기에 이른다. 금융가는 어느날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한 만찬에 참석해야만 했는데 그 만찬은 오랜기간 연락을 끊고 있었던 그 공무원이 준비한 거였다.

이후 금융가의 아들이 군에 입대해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군부대에 배속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평소 몸이 허약하던 손자의 자대배치 소식에 금융가의 어머니는 아들 앞에서 울음을 보였다. 그녀의 바람은 손자가 ktx가 서는 역 근처 부대에서만이라도 복무해 줬으면 하는 거였다. 금융가는 긴 망설임 끝에 공무원이 초대한 만찬에서 건내받은 군 관계자의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말 길게 늘어 놓다가 통화를 마칠 무렵에 할머니가 걱정하는 손자 얘길 잠깐 꺼냈다고 한다. 며칠뒤 금융가는 군에 있는 아들이 전화해 느닷없이 근무보직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해와 자못 놀랐다고 한다. 다 전적으로 미공개 소설속 이야기이고 이 소설이 정의로우냐 따위의 논란은 사양하겠다. 심지어 이 소설속 끈끈하게 이어진 공무원과 금융가의 정치적 성향은 아예 정반대란 사실도 난 잘 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영화 3편을 골랐다. 안봤으면 꼭 찾아보길 바란다. 드라마 상도에 보면 임상옥이 갑자기 생긴 거액을 일면식 없는 불쌍한 중국 기녀를 구하는데 몽땅 털어쓰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말한 소설 속 금융가는 학벌로 먹고 산다는 통상적인 의미의 고학력자는 아니지만 사람에 대한 안목과 장기적 투자에는 계산만 빠른 분석가들이 따라올수 없는 커다란 그릇을 가졌다. 애비가 그랬다면 오늘도 전차 안에서 수십 킬로그램 포탄을 옮기고 있을 내 둘째아들 놈도 좀 편한 보직으로 옮겨 탈수 있었을까.

ㅎㅎ 미안하다. 아들아.

(이 글 쓸 당시까지만 해도 뒤에 먼일 일어날 지는 상상도 안됐다. 끝까지 새옹지마다.)

#상도 #빌리엘리어트 #히든피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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